박근혜 후보는 1987년 제13대 대선에 출마했던 사회민주당 소속 홍숙자 후보와 1992년 제14대 대선에 무소속으로 출마한 김옥선 후보 이후 등장한 세 번째 여성 대통령 후보이자, 통합진보당 이정희 후보와 진보정의당의 심상정 후보와 함께 세 명의 여성 대통령 후보 중 한 사람이다. 그럼에도 최근의 새누리당 박근혜 대선 후보의 여성성을 여성 대통령이 한국 '정치 쇄신' 및 '글로벌 한국'의 상징이자 '여성 혁명의 출발'이 된다며 '여성' 대통령 후보로서의 지위를 독식하고 있다.
다른 시각에서 박근혜 후보를 둘러싼 여성성 논의는 그 동안 남성이 독점해왔던 한 나라의 대표 자리를 여성이 차지한다는 것이 갖는 유의미성과 그에 내재한 모순성을 드러낸다. 즉 공적 정치 영역인 선거 과정에서 '여성임'은 드러내거나 드러내지 않거나 지워질 수 없는 차이의 기표가 되며, 여성은 여전히 남성에 대비되는 타자로서 '여성'임을 확인해주는 징표가 되는 한편 ,'여성'됨의 기준에 대한 문제제기는 대표성의 위기가 성차(性差)를 통해 더욱 심화되고 있다는 것을 드러낸다.
며칠 전 문제가 되었던 황상민 교수의 박근혜 후보는 '생식기만 여성'이라는 발언을 편파적으로 해석하자면 궁극적으로 남성과 여성의 차이는 생식기 외의 차이가 없다는 것으로 이해될 수 있다. 그렇다면 왜 그토록 여성이 유력한 대통령 후보로 등장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던 것일까? 황상민 교수의 논리를 따르자면, 여성의 생식기를 가진 사람이 그 생식기에 맞는 구실을 해왔기 때문일까? 박근혜 후보는 의도적으로 여성 후보로서 전면적으로 등장하며, 그러나 의도하지 않은 방향으로 2012년 한국에서 지금까지 간과되어 온 성차의 정치적 구성성을 정치적 논쟁의 핵심으로 불러오고 있다.
새누리당의 '여성' 공세가 지속되자 야권 측은 박근혜 후보의 '여성성'을 문제 삼으며 후보자의 대표성에 대해 문제제기 하고 있는데, 박근혜 후보의 여성성을 부정하는 논리를 보면 우선 박근혜 후보가 지배적인 여성의 생애주기를 경험하지 않았기에 그의 특권적 삶이 일반 여성의 삶을 대변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민주당 정성호 당 대변인은 논평을 통해 "박 후보는 출산과 보육 및 교육, 장바구니 물가에 대해 고민하는 삶을 살지 않았"으며, 더 나아가 박광온 문재인 후보 대변인은 "박 후보는 박봉과 임금 차별로 힘겹게 일하는 직장여성의 애환을 체험해 본 적도 없고, 가정주부의 삶도 모른다. 오로지 공주로서 떠받들어지는 삶만을 살았을 뿐"이라면서 "박 후보를 규정하는 것은 여성의 정체성이 아니라 공주의 정체성, 귀족의 정체성, 특권의 정체성"이라고 비판한 바 있다.
여성학자들도 그와 비슷한 논리로 박 후보의 정체성을 "공주"로 명명하고 그의 여성성을 부정한 바 있다. 여성학자 권인숙은 박 후보가 "애초부터 여성 대중의 삶은 국가의 도구 또는 자신의 집권 수단 이상으로 사고하기 힘든 사람"이기 때문에 여성대통령으로 인정하기 힘들다고 토로한 바 있으며, 여성학자 정희진은 "여성이 아니다. 주민등록번호 뒷자리 첫 숫자가 '2'라는 사실 외에는, 여성과 가장 거리가 먼 여성이다. 그는 여성도 국민도 대변하지 않는다. 그의 몸은 '아버지 박정희'를 매개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이러한 비판은 박근혜의 특권적 삶에 기초한 생물학적 '여성'을 사회적 관계로서의 '여성'으로부터 분리하고자 시도로 읽혀질 수 있지만, 생물학적 여성과 사회적 관계로서의 여성이 철저히 구분될 수 있다는 것은 허구적 가정 위에 서 있다.
그 둘 간의 관계는 끊임없이 서로를 불러내며 '여성'의 타자성을 재확인시킨다. 그 결과 여성의 대표성을 '결혼-임신-출산-양육'이라는 지배적인 여성의 생애주기 각본과 역할 수행 여부의 문제로 판단한다는 점에서 문제적이다. 그런 점에서 "여성을 대표할 수 있는 '여성/시민됨'이 어떤 기준을 중심으로 구축되는가"에 대한 질문은 여성 대표성의 문제에 핵심으로 자리잡는다.
다시 말해 정희진이 박근혜의 '여성/시민됨'의 부정을 통해 여성/시민의 비균질성을 드러낸 것과 마찬가지로 그에게 대표할 것은 요구하는 '여성' 또한 동질적인 집단이 아님을 주지해야 한다. 그리고 위의 평가들은 태생적 신분의 관점에서만 박근혜를 고찰함으로써 그를 '독재자의 딸'이나 '박정희 전 대통령의 후광효과'로만 위치 짓는 것과 같은 맥락을 가지며 박근혜 후보가 한 명의 정치인으로서 집권 여당의 대선 후보가 되기까지의 역사적 과정을 삭제함으로써 오히려 그의 여성 주체성을 폄훼하고 더 나아가 그의 행위성을 부정하는 결과를 낳는다.
그리고 더 나아가 박근혜 후보가 여성 유권자들로부터 더 큰 지지를 받고 있다는 사실에서 그 '여성'대통령 후보와 유권자들의 '여성'과의 관계를 논의에서 배제함으로써 박근혜 후보에게 자신들의 이해와 욕망을 투영하는 여성 유권자들의 이해관계를 여성 일반의 이해에서 배제시키는 오류 또한 범할 수 있다.
박근혜는 어떻게 여성 '대통령' 후보가 될 수 있었나?
박근혜의 정치 인생은 어머니 육영수가 암살당한 뒤 유학지 프랑스 파리에서 황급히 불려와 어머니의 자리를 대신하며 시작했다. 그는 그 후 5년간 국가 주요 공식행사에 참석하여 외국사절을 영접하는 영부인의 대리 역할을 맡았을 뿐 아니라, '대한구국선교단'(1975년), '구국여성봉사단'(1976년), '새마음봉사단'(1978년) 등의 조직의 명예총재직과 이후 총재직을 맡으며 당시 유신체제의 근간이 되었던 대중동원에 적극적인 기여를 했다.
특히 "물질주의 사고방식으로 인해 무너진 우리의 아름다운 전통을 되찾고 튼튼한 복지국가의 기반을 마련하자는 새마음 갖기 운동"은 박근혜에 의해 주도적으로 출범하였고, 1977년 1월 새마음 갖기 운동의 발족식을 필두로 범국민적으로 국민총화운동의 지도자가 되었다. 그는 그 해 3월 17일 새마음갖기범국민궐기대회 격려사에서 "정신문화의 기반이 다져지지 않아 우리 고유의 전통인 총화의 정신이 흐려지고 있다"면서 "충효를 기본이념으로 하는 새마음갖기운동이 어느 단체나 지방에 국한되지 않고 국민전체의 국민철학으로 심어져 나갈 때 이 땅은 이상적 복지국가가 될 것"이라고 강조, 새마음운동을 통해 갈등과 위기에 봉착한 유신 체제를 안정화하기 위한 국민정신개조운동을 이끌었다.
이러한 박근혜의 활동은 그를 '유신공주'라는 피동적 위치가 아닌 그 유신 체제를 유지하는데 일임했던 주요한 적극적 행위자로 보는 것이 마땅하다고 반증하며,"어머니를 비명에 보낸 22살의 처녀가 택한 이 선택에 대해 40년이 지난 지금 책임을 묻는 게 가능한 일일까? 그것도 '유신의 본체로'?"라는 정치평론가 고성국의 질문에 '그렇다'라는 답을 이끈다.
(이 점에서 만약 박근혜 후보가 여성으로 대표성을 갖고자 한다면 우선적으로 그 자신이 독자적으로 이끌었던 구국여성봉사단 및 새마음봉사단 활동에 대한 평가를 받아야 하며, 유신 체제의 유지를 위해 동원했던 여성의 도구화에 대한 해명과 사과가 뒷받침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를 바탕으로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의 대표로서 민주주의 제도를 정착시켜야 할 의무를 어떻게 여성의 대표성을 진작시킬 것인가에 대한 구체적인 답변이 있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1998년 4월 한나라당의 후보로 대구광역시의 국회의원 보궐선거에서 당선되어 본격적인 정치인의 경로를 걷기 시작한 이후, 비록 그는 박정희의 딸이자 미혼의 여성 정치인이라는 점에서 많은 주목을 받았지만 그의 정치적 기반이 탄탄했던 것은 아니다. 즉 현재 박근혜 후보의 영남 보수층 중심의 지지기반은 일순간 아버지의 후광으로 얻어진 선물이 아니라 2002년 한나라당 탈당과 복당과정, 2004년 탄핵 이후 구원투수로 등장하여 당 개혁을 무기로 당을 장악하는 과정과 그 이후 노무현 정부와 국가정체성 이슈를 매개로 전면전을 전개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얻은 정치투쟁의 결과로 얻어진 것이다.
박근혜는 자신의 힘으로 당 대표가 된 것은 아니었지만 국가보안법과 사학법 등의 보수 기반을 훼손하는 그 어떤 것에 대해서도 단호하게 대처함으로써 중도개혁 이미지의 제3후보에서 강력한 리더십을 지닌 보수층의 미래권력으로 변모했다. 그런 점에서 박근혜 현상과 대통령 후보라는 그의 현재 위치는 박정희로부터 독립된 '박근혜 변수'에서 찾아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과정에서 박근혜는 대선 후보로 당선되기 전까지, 다시 말해 당내의 유력 남성 후보들과 경쟁에서 승리하기 전까지는, 동등한 정치인으로 인정받고 안전한 위치를 점하기 위한 자기 관리를 하는 전략으로써 여성임을 내세우기보다 신비주의적인 '탈성화' 전략을 택했다. 그러한 전략으로 박근혜는 우선 자신의 말을 하지 않는 화법을 사용함으로써 그 자신의 욕망이나 주관을 드러내지 않고 그를 통해 모호함과 막연함을 남겨둘 뿐만 아니라 언어 책임의 소재도 불분명하게 하기도 한다. 이러한 화법을 통해 그는 자신의 존재를 진흙탕 정치로부터 분리해내는 효과를 만들고 동시에 자신이 책임져야 할 문제에서 스스로를 면책하는 결과를 의도하기도 한다.
이에 더해 이러한 비주권적 주체성을 통한 신비주의적 전략은 그는 특권적인 태생에 더해 일반인이라면 감내하지 못할 고통을 극복한 자로서 그 스스로를 성녀(聖女)로 재현함으로써 강화된다. 그 결과 그는 스스로를 대중이 함부로 범접할 수 없는 존재이자 다른 일반 정치인들과는 차원이 다른 특별한 존재로 만든다. 이러한 성녀의 이미지는 생물학적 여성으로서 그 존재를 희석시키고, 오히려 비범한 능력을 가진 존재로서 보편적 대표성을 획득하는 탈성화 효과를 낳는다.
그리고 박근혜는 이렇게 자신의 숙명을 대하는 종교적 태도를 아버지와 이후 추상적인 국가와 국민으로 채워진 정치적 소명으로 탈바꿈하여 그가 가지고 있는 정치적 권력 의지와 욕망을 감추는데 기제로써 활용하며, 아버지의 명예와 국가의 대의를 위해 희생하는 정치인으로 스스로를 각색해 해왔다. 그리고 박근혜는 새누리당 대선 경선에서 승리한 이후부터 본격적으로 타 대선 후보와의 차별성을 '여성'으로 부각시키는 전략을 취해온다.
▲새누리당 대선후보로 확정된 직후의 박근혜 후보. ⓒ프레시안(최형락) |
박근혜의 지지자들
2012년 10월 2일 <동아일보>와 리서치앤리서치가 공동 수행한 대선후보별 주 지지층을 보면, 박근혜의 주 지지층은 성별로 여성 39.9%, 연령별로 50대 50.5%, 60대 65.4%, 그리고 직업별로는 농림어업 55.5%, 블루칼라 47.0%, 가정주부 52.4%로 나타난다. 그리고 학력별로 봤을 때 중졸 이하가 59.9%, 소득별로는 200만원 이하가 56.1%를 차지한다고 나타남으로써, 박근혜의 주요 지지층은 나이든 연령대와 여성, 서민층, 즉 정치적으로 소외받고 권력 구조에서 배제된 집단이라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 현상을 한국 보수의 고질적 특성이나 박근혜가 내세운 귀족적 포퓰리즘 전략의 성공으로도 해석할 수도 있겠지만, 그의 주 지지층이 민주화 과정에서 참여할 채널이 상대적으로 제한되었다는 점을 염두에 둔다면 이를 '대중들의 봉건성'으로만 치부할 문제가 아니라 이는 한국 민주주의의 결핍(deficit)이자 대표성의 불일치성의 문제로 인지되어야 한다.
특히 박근혜가 유세장에 나타나면 구름처럼 몰려들며 먼발치에서 어렴풋이 얼굴이라도 보려고 까치발을 하는 이들은 대체로 나이든 여성이다. 그의 핵심적 지지층인 50~60대 여성의 '여성'됨은 낮은 학력의 저임금 노동자 혹은 무임금 (가사) 노동자로서 여성 문제가 여타의 사회적 불평등의 문제와 교차한다는 것을 보여주면서, 또한 자신의 이해가 저대표되는 계층이라고 할 수 있다.
필자는 그들의 박근혜에 대한 정치적 의사를 듣고자 면접의 방법을 사용했다. 하지만 그 세대의 여성들을 '정치'에 관한 주제로 인터뷰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그들은 정치적 견해를 피력하는데 익숙하지 않으며 정치를 '주지 (主知)'의 대상이 된다고 여기기에 스스로의 정치에 대한 '무지(無知)함'을 이유로 인터뷰에 불응하려는 경향이 강하다. 결국 면접의 용이성과 편의성을 위해 필자가 평소 친분이 있어온 전국여성노동조합 서울지부에 소속된 서강대학교 청소용역분회의 조합원들 중 다섯 명을 대상으로 10월8일~10일 사이에 면접을 진행했다.
박근혜에 대한 평가는 그에 대한 지지 의사에 따라 구분되지만, 그를 정치인으로 보는 가장 우선적인 요소는 '여성' 후보라는 점이고 그 점에 있어서는 모두가 환호한다는 점에서 특이할 만하다. 이는 박근혜 지지 이유를 묻는 2011년 1월 17일 중앙일보와 2011년 2월 24일 여론조사의 결과에서 각각 '최초의 여성후보라서'(18.3%), '여성 대통령 나올 때라서'(여성이라서)(17.5%)라는 답변이 1위를 차지했다는 사실과 일맥상통한다.
면접자 C와 A는 비록 정당의 문제로 박근혜 후보에게 투표할 의사가 없음에도 불구하고'여자로서 대통령'으로 나온 박근혜에 대해서는 높이 평가한다. 그리고 그 이유로 '여자를 너무 억누르고 살았'던 젠더불평등의 보상을 박근혜 후보로부터 찾는 듯하다.
"나는 별로 좋아하는 편은 아니에요. 난 이번에는 문재인이 좋다고 생각해. 박근혜는 별로…. 아버지 때부터 독재를 해와서 그렇지, 여자로서 대통령 나온 거는 좋아요. 여자를 너무 억누르고 살았잖아, 여태까지는. 근데 피는 편이 아니에요? 근데 한나라당이기 때문에 정치를 너무 오래 하기 때문에 싫어, 여자로서는 좋은데, 한나라당이 정치를 너무 독재주의를 많이 하는 편이라 싫어." (면접자 C)
"여자가 대통령으로 나온다는 게 우리나라가, 내 생각은 그렇거든요. 우리나라가 이만큼 컸구나, 남자를 제끼고 여자가 대통령으로 나왔다는게, 다음을 두고 봐야겠지만 지금 현재로는 굉장히 자랑스럽죠. 여자도 할 수 있고, 여자나 남자나 동등한 시대가 왔구나. 여자라고 소외되지 않고 여자도 이렇게 나라일을 할 수 있는, 나는 그것을 가지고 여성으로 봤을 때 좋다는 거지." (면접자 A)
면접자 B는 전형적인 TK 사람으로 '민주당은 한 번도 찍어보지 않았다'고 고백하면서도 그에 대한 우선적인 평가는 '똑똑하고 용기있는' 여성으로서 박근혜에 대한 호감을 표한다.
"저는 박근혜 좋아해요. 이때까지 나오는 중에는 여자로 치면은 똑똑하게 잘 이루어 안 나가겠나, 그리고 딴 사람에 비해 욕심은 없잖아요? 그래서 우리는 그 교수님(안철수 후보 : 편집자)이 조금 있다 다음에 나오시면 좋겠다 싶더라구요. 그 분(박근혜 후보)이 욕심스럽게 안 하고 여자로서는 용기가 괜찮다구. 여자로서는 용기가 대단하다." (면접자 B)
면접자 D도 B와 비슷하게 여성 박근혜의 주관과 능력을 높이 평가하며 지지의 의사를 표한다. 그는 박정희의 공과에 대해 객관적으로 시각을 유지하면서 박근혜의 위치를 아버지와 분리시켜 박근혜를 그의 영부인 대리 역할로서 수행한 국정 경험과 일반 여성과 차별되는 그의 독자적인 능력을 중심으로 평가한다.
"내가 생각할 때는 여성으로서 참 자기주관이 뚜렷하면서 해나가는 거는 칭찬할 만하다 이렇게 생각을 하구, 박근혜는 여성으로 대단하다고 봐. 같은 여자라도 다 다르지. 이조시대에도 똑똑한 사람들은 할 일을 다했더라구. 남자나 여자나 자기가 뚜렷하거나 그러면 다 할 수 있어. 자기가 할 수 있는 능력이 있으니까 하는 거지. 같은 형제라도 못하잖야? 그래도 우리가 봤을 때는 능력이 있다, 좀 평가해줄 수 있지." (면접자 D)
면접자 E는 특히 육영수 여사에 대한 각별한 애정과 애틋한 그리움을 표하며 박근혜 평가의 운을 떼는데, 그는 지금까지 지지하는 정당과 정치인이 없었지만 박근혜에게 처음으로 지지의 마음이 생긴다면서 그가 '여성' 대통령이기에 기존의 남성 대통령과 다른 모습을 보여줄 것을 기대한다. 즉 박근혜의'여성'임은 기존의 정치와 구태 정치인에 대한 불신과 불만이 고조되고 있는 현재 그들과 변별해주는 중요한 하나의 요소가 되며 박근혜가 정치쇄신의 주역일 될 것으로 기대된다.
"첫째로 여자가 나온다니까 좋아요. 세계적으로나 한국에서 여성 대통령이 나온다는게, 좋지 않아요? 여성 대통령으로서 우리나라에서 나온다는 게 여지껏 대통령으로 나와도 공약을 그렇게 하지 않았는데 대통령 나설 때만 진짜 국민들 너무 너무 잘 살게 해줘. 그런데 그게 아니야, 되고 나면. 되고 나면 다 비리가 있고 정직하지들 안해. 여성대통령으로 나와서 한 번 그런 거 없이 진짜 공약대로 그렇게 한 번 했으면." (면접자 E)
면접자 D도 면접자 E와 마찬가지로 여성 대통령 박근혜가 여성으로서 꼼꼼함과 더불어 결단력 있는 정치인으로서 '획기적인 뭔가'를 함으로써 '여자로서, 여자도 못할 것이 없다라는 걸' 보여주길 기대하고, 박근혜가 그러할 것이라는 점을 '지금까지 내려오면서 실천한' 것을 바탕으로 전폭적인 지지를 표명한다.
"나는 지지할 거야. 하여튼 당과 이 모든 것을 떠나서 자기가 공약대로 할지는 모르지만 현재로서 지금까지 내려오면서 실천한 게 있잖아. 여자는 조금 섬세한 면이 있잖아요? 어떤 때는 생각이 좁을 때로 있고, 내심 꼼꼼한 것도 이렇게 한데 또 정치라는 것은 때로는 박력도 있어야 되고, 또 뭐야 자기가 모든 것을 일으켜야하는 강권적인 문제도 때로는 생긴단 말이에요. 근데 여자이기 때문에 못해 이럴 수도 있잖아? 근데 요번에 만약에 박근혜씨가 된다면 획기적인 거 뭔가를 했으면 좋겠다 하는 것도 생각이 들어. 여자로서, 여자도 못할 것이 없다라는 걸 보여줘야지." (면접자 D)
요약하자면, 면접자들의 공통된 여성 대통령 후보로서 박근혜를 선호한다는 것은 여성으로서 그네들의 삶이 고단함에 대한 보상심리가 투영되는 것이자, 기존 남성 정치인들과 차별되는 그의 '여성'됨에 빗대 정치개혁의 기대를 시사하는 것이다.
또한 박근혜에 대한 '앎'은 박근혜 만남 이전의 만남이 존재한 그의 부모에 대한 기억일 수도 있으나, '여성'이 재현되는 방식에 대해 자기 경험을 투영하여 형성된 것으로 보여진다. 이는 여성 유권자들은 보편적 대의를 추구한다고 재현되는 추상적인 개인, 남성과 대비해 특수적인 이해를 대표하는 구체적 사람, 여성으로서 박근혜를 인식함으로써 대표자의 생물학적 '여성'그 자체가 그들에게는 앎의 대상이 되고, 그 결과 여성 대표자는 여성임 그 자체로서 추상에서 구체로 미끄러지는 것을 역설한다고 볼 수 있다.
박근혜는 여성을 대표하는가?
남성 지배적인 정치 영역에서 박근혜는 절대적인 성적 소수자였으며 그는 자신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여성' 정치인의 표상이 되었다. 남성적 정치문화의 외부자로서 남성 중심의 네트워크에서 소외받고 사회적 권력 엘리트로부터 '여성'으로 호명받았다는 점에서 박근혜 그 또한 여성 정치인이 지니는 불이익을 경험했다고 볼 수 있다.
특히 여성이 밤의 정치나 인맥 정치에서 열세라는 점 때문에 박근혜 또한 "남성 중심적 권력구조가 강한 한국사회에서 파워 엘리트들 간의 뒷거래"에서 상대적인 불이익을 경험했을 것이며, 이러한 여성 정치인으로서 겪는 불이익은 구태 정치에 대한 불신이 강한 현 시기에 오히려 박근혜에게 유리하게 작동한다.
앞서 면접자 E와 D의 말에서 본 것처럼 여성 정치인이 기존 권력망의 경계 외곽에 존재한다는 점을 인지하는 것이 여성 정치인을 남성 일반 정치인으로부터 구별짓게 하고, 그 결과 대중의 시선에서 지도자의 젠더 교체가 정치 쇄신으로 인식된다고 볼 수 있다.
이런 유권자의 인식을 바탕으로 새누리당의 박근혜 후보 측은 연일 여성대통령론을 강조하기에 여념이 없다. 새누리당 중앙선대위 김무성 총괄선대본부장은 "여성 대통령은 국민들로부터 혐오의 대상이 되고 있는 우리 정치에서 최고의 쇄신"이 된다고 강조하고, 안상수 새누리당 선거대책위원회 의장은 "우리 여성들이 (평등 순위에서) 100위권 왔다 갔다 하는데 대통령을 여성으로 뽑으면 반전이 될 수 있을 것이다"며 "여성이 대통령이 됨으로써 우리나라가 외형도 외연도 발전이 되고 내실도 기해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이에 더해 새누리당 중앙선대위의 김성주 공동선대위원장은 "헌정 사상 첫 여성대통령은 여성혁명의 출발점"이라며 여성 대통령이 현재 한국의 젠더 불평등을 역전시키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100여 년 전 우리 여성들에게는 참정권조차 주어지지 않았었습니다. 현재 세계의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다양한 영역에서 과거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여성들이 그 역량을 발휘하고 있고 미래에는 더 많은 여성들이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될 것입니다. (…) 하지만 여전히 우리가 가야할 길은 멉니다. 전 세계 의회에 진출해 있는 여성은 19.3%에 불과하고 대부분의 여성은 일과 가정의 양립을 힘들어하고 있습니다. (…) 저는 이 문제가 단지 여성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 모두의 문제이고 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여성을 위한 길이자 우리 사회를 발전시키는 길이라고 믿습니다." (박근혜 후보의 2012년 9월 17일 제33차 세계여성단체협의회 세계총회 축사 중)
위의 여러 발언들과 연설문에서 보듯이 박근혜 후보의 적극적인 '여성성'전략은 단지 여성 대통령을 통한 정치쇄신과 동시에 양성평등을 위한 과제로 내세우며 여성운동과 여성주의를 정치적 수사로 활용하고 있다. 이에 대해 진보정의당 심상정 후보는 이러한 박근혜 후보측의 여성 대통령론이 "그동안 권위주의와 가부장제와 싸워온 다수의 여성을 모독했다"고 평가하고 민주당 서영교 원내부대표도 당 고위정책회의에서 "박 후보가 16년간 국회의원으로 있으며 발의한 법안이 모두 15개로 이중 여성을 위한 법안은 1건도 없다"고 비판한 것처럼, 이러한 여성 대통령론은 기존의 여성운동과 여성주의를 정치적 수사로 전유하고 여성의 상징적 대표성에 대해 과도한 의미 부여를 함으로써 마치 여성 대통령이 젠더 불평등을 일시에 소거할 듯한 젠더 착시 효과를 만들어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별을 끊임없이 환기시키는 언어 강박이 만연하고 성차가 과잉되어 있는 한국 사회에서 박근혜는 최초의 집권 여당의 여성 대통령 후보가 되었다는 것과 그것이 자신이 여성이자 동시에 여성으로만 갇히지 않는 성차를 빗겨가는 젠더전략의 결과로서 박근혜의 상징적 여성 대표성은 주목받을 만하다.
물론 그가 박정희 전 대통령의 딸로서 지니는 특수한 위치로 인해 이러한 젠더 전략은 다른 여성 정치인들에게는 모방되기 힘들다는 점에서 일회적인 사건으로만 끝날 가능성이 높지만, 앞서 본 바와 같이 여성 대통령 후보인 박근혜를 통해 한국 사회에 오랜 기간 누적된 젠더불평등에 대한 불만이 대선 과정에서 정치적으로 표출되고, 지금까지 남성들에 의해 독점되어 온 정치권력이 상징적으로 도전됨으로써 여성 대표자의 유의미성과 한계가 정치적 논쟁으로 불러오고 있다는 점은 간과할 수 없는 중요한 사실이다.
특히 유력한 여성 대통령 후보의 존재는 여성 지도자에 대한 유권자들의 심리적 저항감을 무력하게 하는 효과를 갖고 있는데, 이는 박근혜 후보에 대한 '여성'비판은 후진적이라는 인상을 주는 역전적 상황이 연출되는 것에서 확인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분단 현실을 체험하지 않고, 국방을 경험하지 않은 상태에서 단순히 여성이라는 이유로 리더십을 갖기에는 어려움이 있다"며 여성 리더십의 시기상조를 말한 새누리당 이재오 의원이나 "대한민국 남자, 문재인"이라는 박근혜의 여성에 대비되는 남성의 기호로 자신을 홍보하려 했던 민주통합당 후보 문재인은 기존의 성역할과 남성권력의 현상유지를 강조한다는 비판에 바로 철회해야 했다.
뿐만 아니라 박근혜 후보는 2004년 민주당의 이미경, 김근태 의원과 한나라당의 이부영 의원 등의 여야 국회의원 52명 등과 함께 여성관련 대표 법안인 '호주제 폐지' 법안을 공동발의한 바 있고, 2004년 7월 당 대표 취임 초기 여러 반대에도 불구하고 당사에 어린이집 설치를 이뤄냈으며, 2008년부터 시행 중인 성폭행범 위치추적을 위한 일명 전자발찌법의 시행에서도 주도적 역할을 한 것으로 미루어, 박근혜 후보의 활동이 부분적이나마 여성의 실질적 대표성을 갖고 있다는 점을 부인하기 힘들다.
이런 점에서 여성 정치인의 여성 대표성은 생물학적 여성이라는 점이나 일부 여성관련 법안의 발의로만 재현될 수 없다는 것을 반증한다. 즉, 여성의 대표성은 여성으로 드러나지 않는 보편적 의제들이 지니는 성평등성과 민주주의 가치의 실현 정도에서 찾아질 수 있다는 점에서 새롭게 정의되어야 한다는 것을 박근혜의 여성 대통령론을 통해 학습할 수 있다.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측은 여성 대통령론을 통해 20~30대 여성을 공략하고 야권의 단일화 논의를 무마시키고자 한다. 이러한 박근혜 후보의 '여성'정체성 강조는 여성의 범주를 사회적 맥락에서 탈각시킴으로써 젠더불평등의 문제를 생물학적 성차의 문제로만 갇히게 하고 젠더의 문제를 비정치적인 영역으로 밀어넣는다.
그러나 그 결과 박근혜는 생물학적 여성으로만 귀결되고자 하고, 이는 사회적 관계에서 구성되는 '여성'의 문제를 대표하지 못하여 여성대표자로서 부정당하는 역설적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앞서 면접자들로부터 확인했듯이 박근혜 후보의 여성으로서 갖는 상징적 대표성이 자동적으로 지지의 행위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점은 여성 유권자들이 여성 박근혜 후보가 갖는 한계를 이미 인지하고 있다는 점을 역설한다.
만약 박근혜 후보가 자신의 여성 대표성을 확대하고자 한다면, 여성 인재를 정부 요직에 참여시키고 기업 내 고위직 비율을 높이기 위한 방편을 마련하는 것뿐만 아니라 근본적으로 여성에 대한 폭력, 여성 고용 차별, 여성 비정규직, 여성 실업, 여성 빈곤 등의 문제들을 해결하고 박근혜 자신처럼 비혼 여성도 경제적·사회적·정치적 독립을 영위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는 방안들을 정치 쇄신에 중요한 과제로 제시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 과제는 남성 후보들에게 해당되는 보편적 대표성의 문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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