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문재인-안철수 정치쇄신 논쟁, 핵심에서 빗나갔다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문재인-안철수 정치쇄신 논쟁, 핵심에서 빗나갔다

[기고] "국민이 바라는 건 제도개혁 아닌 정치문화 개선"

지역구 의석은 200석으로 줄이고, 비례대표 의석을 100석으로 늘리자는 민주통합당 문재인 대선후보의 정치개혁안이 나온 직후, 한발 더 나아가 국회의원 수를 200석으로 줄이자는 무소속 안철수 후보의 '파격 제안'으로 정치권, 언론, 각 선거캠프가 뜨거웠다. 반(反)정치 정서에 기댄 포퓰리즘이자 아마추어리즘이라는 공격이 거세게 일었고, 이에 대해 안철수 후보는 '기득권의 저항'이라고 맞섰다.

정당정치를 강조하던 민주당마저 반 정당정치적 '정당공천제 폐지' 안을 내세우며 정치쇄신안 논쟁은 점입가경의 상황으로 가고 있다. 단일화를 앞둔 상황에서 문 후보와 안 후보 진영 사이에서 적절한 수위 조절을 할 가능성도 적지 않지만, 정치 불신이 분출하며 새정치에 대한 기대감이 만들어낸 '안철수 현상'이 지속되는 한 정치쇄신은 이번 선거의 최대 쟁점 중의 하나가 될 수밖에 없다.

정치쇄신논쟁, 찻잔 속 태풍으로 끝나는 이유

일단 여론은 안 후보의 손을 들어주고 있다. 동아시아연구원과 한국리서치가 지난 27일 실시한 조사에서 "지역구 의원을 200명으로 줄이고, 비례제 의원을 100명으로 늘리는 안"이 정치발전에 얼마나 중요한 문제라고 보는지 물어본 결과 응답자의 49.0%만이 중요한 문제라고 답한 반면, "국회의원 수를 200명으로 줄이자는 안"에 대해서는 무려 71.9%가 중요한 문제라고 답했다. 그렇다면 대중적 인기가 약한 문재인 후보의 정치개혁안은 폐기되어야 하고, 안철수 후보는 자신의 정치개혁안에 대한 대중적 지지가 모인 것으로 봐야 할까? 대답은 둘 다 아니다.

국민들이 이슈에 반응할 때는 이슈의 특성에 따라 다르게 반응한다. 사안이 의미하는 정치적 상징이 비교적 명료하고 정치적 목표와 관련된 이슈들이 널리 알려져 있을 경우 국민들은 자신의 생각을 쉽게 정리한다. 카마인즈와 스팀슨(Carmines and Stimson)의 고전적 정의에 따르면 이슈는 특성상 소위 '쉬운 이슈(easy issue)'와 "어려운 이슈(hard issue)"로 구분된다.

쉬운 이슈는 기술적이거나 실천적 수단과 관련된 이슈보다는 상징적 목표와 관련된 이슈, 오랫동안 국민들의 관심을 끌어 온 이슈다. 반면 목표를 실현하기 위한 수단과 방법론, 전문적 지식을 요하는 문제, 생소한 것은 '어려운 이슈(hard issue)'다. 카마인즈와 스팀슨은 유권자들의 표심을 움직이는 것은 어려운 이슈가 아니라 쉬운 이슈라고 주장했다. 정치개혁이라는 목표를 실현하기 위한 제도디자인 논쟁은 유권자들에게 어려운 이슈다. 따라서 문 후보의 안은 애초부터 국민들로부터 다수의 지지를 받기 힘든 방안이었던 셈이다.

반대로 안 후보의 현재 지지를 '안철수 개혁안'에 대한 정치적 지지로 봐야 할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국민들 스스로도 우리 정치의 문제가 국회의원 수가 너무 많아서 발생한 문제라고 생각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국회의원 수를 줄이는 것이 중요하다는 인식이 압도적으로 많다는 사실에서 주목해야 할 점은, 국민들이 바라는 정치쇄신에 대해서는 둔감할 뿐 아니라 아무런 답을 주지 못하는 정치권에 강한 징벌 의사를 갖고 있다는 점이다. 통쾌감에 박수는 칠 수 있지만, 의원 수를 줄인 것으로는 절대 만족하지 못할 것이다. 당장 국회의원을 줄인 후 하고자 하는 '다음 스텝'이 무엇인지 묻게 될 것이다.

3김 시대만도 못한 정치, 무엇이 문제인가?

문제는 이번 논란이 되고 있는 '정당공천제 폐지', '국회제도 개혁,' '국민공천제' 등이 국민들이 바라는 정치쇄신의 방향과 거리가 있다는 점이다. 대체로 문재인 캠프, 안철수 캠프의 정치개혁안은 주로 제도개혁에 맞춰져 있는데, 유권자들의 정치적 불만은 정치적 현상을 만든 유권자들의 정치적 불만과 욕구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느낌이다.

최근 한 주간지의 의뢰로 진행한 40대 표적집단토론(FGD)은 이러한 심증을 굳게 한다. 국민들이 혐오하고 있는 '정치' 개혁의 대상은 제도보다는 정치권의 '행태'와 '문화'에 집중되고 있다. 필자가 보기에 국민들이 바라는 정치쇄신은 '유권자의 지지율과 의석수의 비율을 일치시키는 대표성' 문제 같은 학구적 문제 진단에 있지 않다. 이러한 문제는 설사 국민들에게 인기는 없더라도 국민의 권한을 위임받은 정치권이 잘 가다듬고 또 가다듬어서 국민들과 잘 소통하며 추진해나가야 전문적 위임정치의 영역이다.

정작 국민들이 자신의 자녀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다고 하는 정치의 모습은, 법을 만드는 입법기관에서 예산안 통과의 법적 기한을 아무렇지도 않게 넘기는 파행이 자연스러워지고, 이 과정에서 여과 없이 전달되는 욕설이나 폭력의 만성화 등이다. 언제 우리 정치권이 고상하고 세련된 정치문화를 가진 적 있냐고 되묻는다면, '틀린 말은 아니지만 지금 이 문제를 바라보는 국민들의 시각은 과거 여느 때와는 확연히 다르다는 점을 간과한 질문'이라고 답하겠다.

해도 해도 너무 하다는 인식이 지배적이고, 갈등을 정치적으로 대변하는 기능 못지않게 이를 조정하는 정치 본연의 기능이 잘 작동하지 않는 수준이 아니라 아예 마비되었다고 보는 인식이 지배적이다. 정치행태의 차원에서 보면 '부정의한 정치나 비민주적인 정치' 보다는 '정치의 공백상태'에 대한 혐오가 한계에 도달한 상황으로 보인다.

과거에는 '날치기하는 다수당'의 횡포에 대비되는 힘없는 야당에 대한 우호적 태도 때문에 야당의 '물리적 저지'가 어느 정도 정당화되었다. 그러나 정권교체기를 거친 지금 똑같은 현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졌다. 야당에 주던 도덕적 '어드밴티지'가 사라진 것이다. 새누리당이나 민주당이나 당리당략이 우선이라고 보기 시작했고, '네가 하면 불륜, 내가 하면 로맨스'라는 이중 잣대에 염증이 나기 시작했다.

더구나 민주주의적 공간이 훨씬 제약받고 거리 정치가 위력을 떨치던 3김시대에조차 몇몇 굵직한 사안을 제외하면 설사 날치기·의원빼가기 편법이 작동했을지언정 국회 일정이 정치권 스스로에 의해 무력화되는 일은 찾기 힘들었다. 지난해 실시한 한 여론조사에서는 현재의 정치수준이 3김시대 보다 나아졌다는 인식에 동의한다는 비율은 30.8%, 동의하지 않는다는 응답은 무려 61.1%였다.

야당은 유신시대로의 회귀에 대한 위기의식을 이야기하지만, 적지 않은 국민들은 3김시대 만도 못한 정치의 공백상태를 걱정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을 이해해야 참여정부 말기 정권심판론보다 높은 현 정부에 대한 불신 속에서도, 어떻게 민주당·야당 후보가 아닌, 출마선언도 하지 않았던 무소속 안철수 후보가 박근혜 후보와의 경쟁을 이끌어왔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국민이 바라는 정치쇄신은 '정상화'

결국 국민들이 바라는 최대의 정치쇄신안의 핵심은 새로운 제도도입이나 디자인 쪽 보다는 "정치정상화"다. 이러한 점에서 굳이 제도적 차원의 개혁이라면 지금 논의되고 있는 대표성 강화(지지율과 의석수의 일치)보다는 정부와 정당이 국민의 이익을 책임지고 실현하는 책임성(accountability)을 강화할 방안에 더 관심을 보이고 있다는 점도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아마 이 시점이면 각 선거캠프나 정당에서는 유권자들의 민심을 읽기 위한 각종 여론조사 등이 이루어질 터인데, 비례제 확대보다는 정책의 일관성과 책임성을 실현할 방안으로서 4년 대통령중임제 개혁안에 더 많은 관심과 지지가 모이는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극단적으로 얘기하면 국민들이 바라는 정치의 핵심은 도덕적으로 깨끗한 정치나 비례제 얼마 늘리는 개혁이 아니라 일하는 정치, 실력으로 책임지는 정치에 대한 갈망으로 봐야 한다는 것이 각종 여론조사를 통해 얻은 결론이다.

필자 개인적으로도 안 후보의 최근 정치개혁안 시리즈는 정당정치에 대한 반감에 기댄 측면, 그런 것을 부추기는 요소가 있다는 점에서 선뜻 동의되지 않는다. 국민들 차원에서도 국회의원 수를 줄이는 것은 잘못한 정치에 대한 징벌적 의미에서 당장 박수를 박을 수 있지만 한국 정치를 개선할 실질적인 솔루션으로 인정받기는 힘들 것으로 전망된다.

그렇다고 문재인 후보 진영에서 안 후보를 '정당정치의 ABC'도 모르는 아마추어리즘으로 비판하는 것도 국민들 시각에 좋아 보이지는 않을 것이다. 안철수 후보의 문제제기가 황당하다는 평가를 하면서도 황당하다는 점을 입증하거나 더 나은 대안을 내놓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더 근본적으로는 자신들이 강조한 정당정치가 마비되었다고 느끼는 국민들한테는 정당정치를 망쳐놓은 공범자 중의 하나가 훈계하는 듯한 느낌을 줄 것이다.

아마도 국민들에게 가장 지지받을 쇄신안은 최근 안철수 후보가 내놓은 청와대 이전, 국회의원 수 감소, 아니면 문재인 후보의 비례제 개혁 같은 것 보다는 아마 안철수 후보가 출마선언 당시 내놓았던 "통합을 통한 일하는 국회" 쪽일 것이라고 판단된다. 안철수 후보는 정작 국민들이 갈구하는 정치쇄신의 지점을 정확히 짚으면서 대권경쟁에 뛰어들었지만 그 이후 행보는 그 출발점에서 벗어나고 있는 인상이다.

싸우기만 하는 것이 아닌, 생산적 조정과 의사결정을 하는 통합의 정치라는 최대의 정치쇄신안은 안 후보가 선점한 셈인데 문제는 이를 실현하려면 정치적 힘이 필요하다는 것을 적지 않은 국민들이 감각적으로 느끼고 있다. 당위론적 정당정치의 중요성이나 '무소속 대통령 한계론'이 국민들에게 먹혀서라기보다는 실제로 자신이 말한 과제에 대한 이렇다 할 추진력과 실력을 보여주지 못한 점이 안 후보의 지지율 우위에 불안해하는 이유일 것이다.

이 문제에 대한 답을 주지 못하는 한 국회의원 수를 줄이는 개혁이든 비례제 확대 개혁이든 국민들의 관심을 끌지 못하고 '그들만의 논쟁'으로 끝날 가능성이 높다. 물론 비례제 확대도 국회 개혁도 국민들의 관심과 지지는 낮을지언정 매우 중요한 정치개혁 과제이며, 국민들이 바라는 정치 '행태'의 변화와 개혁은 민주주의 본연의 체제를 발전시키는 데 핵심과제는 아닐지 모른다.

그러나 한국정치의 수준을 한 단계 성숙시키기 위해 제기되는 제도적 디자인과 개혁과제에 대한 동력을 얻기 위해서라도 각 후보 진영과 각 정당은 지금 국민들이 바라는 그 지점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그로부터 개혁의 동력을 얻어야 정말 우리 사회를 근본적으로 개혁해나갈 추동력을 할 수 있을 것이고, 선거에도 승리할 수 있을 것이고, 차기 정부도 성공하지 않을까 싶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