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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의할 줄 모르는 바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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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의할 줄 모르는 바보들'

김민웅의 세상읽기 <127>

"내가 무엇을 알고 있는가?(Que sais-je?)"라는 서문과 함깨 "확신하고 회의하지 않는 것은 어리석은 바보뿐이다"라는 경구.

이 말은 오늘날 '에세이'의 원조가 된 <수상록>의 저자 16세기 인문주의자 몽테뉴가 남긴 것입니다. 이어 그는 다음과 같이 언급하고 있습니다. "이 산맥의 이쪽에서는 진리가 되는 것도 반대편의 세계에서는 오류가 될 수 있다." 세상에 대한 전체적인 이해를 편견 없이 균형 있게 하려 했던 인물다운 발상과 논법이었습니다.

오늘날에 와서는 이러한 주장과 견해가 그리 색다를 것 없을지 모르나 16세기 당대에 있어서 종교적 도그마에서 벗어나 개인의 발랄한 자발적 생각을 내세우고 표현하는 것은 아직도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게다가 여론의 공적 논쟁을 전개할만한 언론을 비롯한 다른 대중매체의 존재가 제대로 없는 상황은, 이와 같은 지적 회의와 진리에 대한 검토를 어렵게 하고 있었습니다. 사실, '에세이'라는 말은 "새로운 시도를 시험해보다"라는 뜻을 가진 말에서 기원한다는 점에서 몽테뉴의 저술활동은 당대의 기존상식에 도전하는 일이기도 했습니다.

몽테뉴의 서재는 당시로서는 대단한 수인 1000권이 넘는 장서로 꾸며져 있었다고 하는데, 시대와의 새로운 대화를 나누기 위해 한 자유로운 인문주의자가 성장하는 현장이기도 했습니다. 거기에서 그는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고전을 숙독했고 인생에 대한 여러 가지 독백을 쏟아놓았습니다. 그것은 종교적 교리로 굳어져버린 사유방식에서 해방되는 사건이기도 했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하기도 했습니다. "우리의 영혼이 긴장되어 있지 않은 가장 자유로운 태도가 제일 아름답다. 가장 좋은 일이란 무리한 노력이 가장 적은 일이다."

그 자신이 법률가로서 치열하게 살아 왔던 인생역정을 돌아보면, 인생의 아름다움을 결국 어디에서 찾아야 하는가에 대한 성찰의 단면을 볼 수 있게 됩니다. 게다가 그는 프랑스 정치의 한 복판에서 대립과 갈등을 겪어 왔기에 그의 이러한 말은 더더욱 의미 있게 다가옵니다.

자신의 견해만이 옳은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산맥 저 편의 현실에 대해서는 무지하다거나, 또는 자신의 확신이 혹 불확실한 근거를 가지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 자들이 시대의 주도권을 잡으려는 것에 대한 몽테뉴의 비판이기도 했습니다. 그에 더하여 욕심과 집착에 매몰되어 무리한 긴장을 스스로 자초하면서 명성과 지위를 얻으려는 것에 대해서도 몽테뉴는 자성을 일깨우고 있는 셈이었습니다.

사실 몽테뉴의 에세이는 자신을 향한 고백이기도 했습니다. 루소가 훗날 자기를 깊이 돌아보면서 자유롭고 진지하며 그 영혼이 아름다운 인간에 대한 성찰을 쏟아놓기 200년 전에 이미 몽테뉴의 존재가 있었던 셈이었습니다. 이러한 몽테뉴가 있었기에 프랑스는 사상적 자유와 지적 쾌활함, 그리고 정치적 논쟁의 수준을 역사 속에서 성취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 몽테뉴가 했던 말 가운데 이런 대목이 있습니다. "문체, 그것은 곧 그 사람이다.(Le style, c'est l'homme.)" 다시 말해서 그 자신이 묘사하고 있는 것은 곧 그 사람 자체를 드러낸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말하는가가 바로 그 사람 자체를 보여준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말해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을 하고 그로써 자신의 세계를 세상에 보여 나가는 노력의 소중함과 의미를 갈파한 당대의 문필가다운 통찰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프랑스 문학의 발전이 이루어진 밑바닥에 흐르는 생각의 씨앗을 보는 듯 합니다.

오늘날 우리의 현실을 보면, 자신이 서 있는 산맥의 논리만 진실이라고 강변하거나 자신의 확신에 대해서 회의할 줄 모르며 자유롭고 아름다운 영혼을 가지고 말하는 방식에 관해 진지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은 채, 말이라고 그냥 쏟아내는 이들이 지도자연 하고 있는 것을 무수히 목격하게 됩니다.

몽테뉴의 <수상록>이 그저 300여 년 전의 정신사적 유물로서만 그칠 일이 아닌 듯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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