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당과 시민·사회 진영은 '재계의 압박과 엄살이 도를 넘었다'며 반발하고 있다. 민주통합당은 이날 경제 5단체를 만난 새누리당을 상대로 '입법 로비에 휘둘려서는 안 된다'는 우려를 표했고, 경제민주화국민운동본부 등은 경제 5단체 해체와 정치권의 입법 노력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경제 5단체는 전경련, 한국경영자총협회, 한국무역협회, 대한상공회의소, 중소기업중앙회다.
'입법 로비' 먹혔나?
재계가 이날 국회를 방문해 특히 언급한 법안은 60세 정년연장법과 하도급법, 유해화학물질관리법이었다. 이들 법안은 당초 29, 30일 양일간 열리는 국회 본회의에서 상정·처리를 내다보고 있었다.
하지만 경제5단체 방문 이후 하도급법 개정안은 본회의 전 마지막 관문인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여야 이견으로 의결되지 못했고, 유해물질관리법과 60세정년연장법은 법사위에 상정조차 되지 못했다. 재계의 방문이 단순한 '항의'성 방문이 아니라, '입법 로비'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이동근 대한상공회의소 부회장은 이날 새누리당 이한구 원내대표와 나성린 정책위의장 대행을 만나 "국회 환경노동위원회나 정무위원회 등에서 기업에 부담을 주는 법안이 충분한 논의를 거치지 않고 상정된 경우가 있다"며 "여당에서는 이런 법안들이 기업에 부담을 주지 않는 쪽으로 가도록 추진해 달라"고 요구했다.
그러면서 이승철 전경련 부회장은 특히 정년연장법과 하도급법으로 인한 기업 피해를 언급했고, 송재희 중소기업중앙회 부회장은 유해화학물질관리법에 대한 기업 부담을 주로 호소했다.
이에 이한구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기업들이 예전과 달라진 분위기 때문에 투자를 주저하는 듯한 성향이 나타나고 있다"며 "기업들이 하는 투자이기 때문에 외부에서 하라마라 할 수 없지만 기업들이 위기에 대한 불확실성에 대해 적게 가지도록 노력 하겠다"고 말했다.
이날 언급된 법안 외에도 재계는 일감 몰아주기, 비은행 금융회사 대주주 자격심사 강화 등의 법안은 물론, 대체휴일제, 공공부문청년고용할당제, 대기업 임원 연봉 공개 법안까지 반대한다는 뜻을 26일 가진 긴급 회동에서 전면에 밝혔다.
▲ 새누리당 이한구 원내대표가 29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원내대표실에서 경제5단체장 부회장단과 악수를 나누고 있다. 면담에는 한국경영자총협회 김영배 부회장, 대한상공회의소 이동근 부회장, 한국무역협회 안현호 부회장, 중소기업중앙회 송재희 부회장, 전국경제인연합회 이승철 부회장이 참석했다. ⓒ뉴시스 |
"도 넘은 재계 '엄살'에 유해화학물질관리법까지…"
하지만 현재 논의되고 있는 경제민주화 관련 법안의 국회 통과로 기업 활동이 위축된다는 재계의 주장은 앞뒤가 안 맞는 '엄살'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민변, 민주노총, 전국유통인상인연합회, 청년유니온, 참여연대 등으로 구성된 경제민주화국민운동본부는 29일 전경련 앞에서 연 기자회견에서 "경제 5단체가 대다수 국민들의 고통과 호소에도 끝까지 나 몰라라 탐욕을 내세우고 있다"고 질타했다.
이들은 "현재 국회에서는 당초 필요성이 제기됐던 경제민주화 법안들 중에서도 최소한의 것들만 논의되고 있다'며 "그럼에도 이들 법안까지 좌초시키려 하는 것은 명백한 과잉대응"이라고 반발했다.
특히 최근 잇따라 발생한 화학물질 누출 사망사고에 대한 대안으로 제시된 '유해화학물질관리법 개정안'에 대한 재계의 반발은 '안전하게 일할 권리'마저 재계가 내팽개치고 있다고 이들은 반발했다.
개정안은 화학물질 누출 등으로 피해가 발생하면 매출액의 10분의 1 이하의 과징금을 부과하고, 화학물질 관리에 대한 원청의 책임을 강화하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해당 법안은 지난 24일 여야 만장일치로 국회 환경노동위원회를 통과했다.
그러나 경제5단체가 이날 국회를 방문해 '10분 1 이하의 과징금은 과잉 규제'라고 반발하며 법안 철회를 요구했고, 새누리당이 이의 제기를 받아들이면서 법사위에 상정조차 되지 못했다.
실제로 법사위 전문위원 검토 보고서는 △과징금을 매출액의 10분의 1로 설정한 것은 너무 과하고 △원청(도급인)의 책임 유무를 묻지 않고 하청(수급인)의 법 위반에 대해 원청에도 책임을 묻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이유를 들어 반대의 뜻을 내비쳤다.
"재계의 입법 로비 사단, 대통령과 여당이 만들었다"
재계가 이처럼 '입법 로비' 논란까지 낳으며 경제민주화 무력화에 나설 수 있었던 데에는 박근혜 대통령과 여당의 책임이 적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재계가 '대놓고 반대'할 분위기를 사전에 조성해줬다는 지적이다.
박 대통령은 지난 17일 국회 정무위·기획재정위 소속 새누리당 의원들과 한 오찬에서 "대기업이란 이유로 벌주는 식의 때리기로 가서는 안 된다"고 말해 경제민주화 의지를 상실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이 발언이 나오기 이틀 전에는 이한구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정치권은 기업인들이 의욕을 꺾지 않도록 배려해야 한다"고 말해 논란이 일었다.
이에 대해 경제민주화운동국민본부는 "수백 개의 경제민주화 관련 법안 중에서 제대로 통과된 법률은 아직 없다. 불필요하고 과장된 우려를 앞장서 퍼뜨린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들은 "재계의 경제민주화 거부 선언은 박근혜 대통령이 만든 것"이라며 "재벌 정권이라는 오명을 쓰고 싶지 않다면, 경제민주화 공약을 책임 있게 이행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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