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보다 북한은 미국과의 2.29 합의가 완전 파기되었다고 선언하지 않고 있다. 장거리 로켓 발사를 강행하면서도 시종일관 북한은 자신의 인공위성 발사는 절대로 2.29 합의의 위반이 아님을 강조했다. 3월말 스톡홀름 학술회의에 참석한 북한의 평화군축연구소 인사는 인공위성을 쏴야 한다는 정당성과, 북미협상 및 2.29 합의는 지속되어야 한다는 입장을 동시에 밝힌 것으로 참석자는 전했다. 안보리 의장성명 직후 북한의 외무성이 더 이상 2.29 합의에 구속되지 않는다는 입장을 밝혔지만 전체적 맥락은 정치적 결기를 표현한 것일 뿐 공식적인 2.29 합의의 폐기는 아직 아니다.
미국 역시 2.29 합의에 따른 대북 영양지원을 못하겠다는 입장이지만 일시중단인지 완전불이행인지는 명확하게 밝히지 않는 눈치다. 2.29 합의가 폐기되었다는 입장을 공식적으로 밝히지도 않고 있다. 2.29 합의가 아직 유효하고 북한 스스로 아직 2.29 합의 폐기를 공식선언한 게 아니라면 여전히 북한은 그 합의에 명시된 대로 핵실험을 하지 않을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인공위성 발사를 놓고 입이 마르도록 2.29 합의 위반이 아니라고 역설한 북한의 논리의 연장선에서는 아직 핵실험을 강행할 수 '없는' 논리적 구조에 있는 셈이다.
▲ 국방부가 19일 탄도미사일과 순항미사일 등 유도무기의 북한 타격능력을 이례적으로 공개했다. 한국 정부가 북한과의 치킨게임에서 벗어나 핵실험을 막을 수 있는 대화를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뉴시스 |
설사 미국의 대북 영양지원 중단을 이유로 북한이 공식적인 2.29 합의 파기를 선언한다 해도 곧바로 핵실험으로 가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북한이 미국과 합의한 내용에는 핵실험 중단만 있는 게 아니다. 미국의 최대 관심사였던 우라늄 농축 중단이 포함되어 있다. 따라서 북한이 2.29 합의를 폐기된 것으로 간주하고 합의문에 명시된 자신들의 의무 이행에 구속되지 않는다고 해서 곧바로 핵실험 강행으로 가는 것은 북한 스스로도 전술상 유리하지 못한 결정이 된다. 핵실험 이전에 우선적으로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을 재가동하고 원심분리기를 가동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미국을 위협하고 압박할 수 있다.
2009년의 경우와 비교할 때, 북한이 안보리 의장성명을 반박하는 외무성 성명에서 핵실험을 시사하는 명시적 표현이 없는 것도 눈여겨 볼 대목이다. 2009년 장거리 로켓 발사 강행 이후 안보리 의장성명이 나오자마자 북한은 외무성 성명을 통해 강도 높게 반발했고 '우리의 자위적 핵 억제력을 백방으로 강화해 갈 것'이라는 내용이 선명하게 포함되어 있었다. 그러나 이번 성명에는 이같은 표현이 들어있지 않다. 문안으로만 보면 이번 성명은 2009년에 비해 톤 다운된 게 분명하다. 핵실험을 가능한 한 피해가려는 고심의 흔적이 역력하다. '로켓 발사 - 의장성명 - 핵실험 - 대북 제재'라는 2009년의 경로를 이번에도 그대로 답습하리라고 섣불리 예단할 필요는 없다.
또 2.29 합의 이전에 이미 북한은 미국에 위성 발사의 불가피성을 전달했고 미국은 유엔 대북제재 1874호 위반이라는 입장을 밝혔지만 북이 그대로 강행할 것임을 맥락상 감지하고 있었음이 확인된다. 미국이 진정으로 장거리 로켓 발사를 저지할 의지가 있었다면 정작 2.29 합의문에 1874호 결의와 유사한 표현 즉 '탄도미사일 기술을 이용한 일체의 발사'를 금지한다는 표현을 고집했어야 한다. 그러나 미국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어찌 보면 북한의 인공위성 발사를 알고도 2.29 합의를 해줬다는 해석이 가능하고, 이 경우 북한의 로켓 발사를 미국이 묵인했을 가능성마저 배제할 수 없다.
물론 여전히 북한의 핵실험 가능성은 상존한다. 그러나 마치 북한이 핵실험을 당연히 하는 것으로 전제하고 북미대화 결렬과 긴장 고조로 분위기를 몰아가는 것은 한반도 평화와 안정에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북이 핵실험을 선택하지 않도록 그 가능성과 조건을 따져보고 그 방향으로 북한을 유도할 수 있는 외교적 노력과 지혜가 필요한 시점이다.
최근 남측을 타격하기 위한 "혁명무력의 특별작전행동"을 개시하겠다는 북한의 공식 입장에 대해 '한판 붙자'는 식의 정면대응과 치킨게임 양상의 무력 보복만을 되풀이 강조하는 이명박 정부의 대응도 위험하고 불안하기는 매한가지다. 긴장을 고조시킬 게 아니라 극한으로 치닫고 있는 긴장을 낮추는 지혜가 오히려 이기는 길임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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