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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드티 입은 흑인은 살해 각오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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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드티 입은 흑인은 살해 각오해야 하나"

흑인소년 살해에 미국 전역에 분노의 시위 물결

미국 사회의 인종적 편견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사건들을 다뤄 2006년 아카데미 작품상 등을 휩쓴 영화 <크래쉬>에는 흑인 청소년을 백인경찰이 우발적으로 살해하는 장면이 나온다.

흑인 소년이 뭔가를 꺼내는 동작을 총기를 꺼내는 것으로 생각해 위협을 느낀 백인 경찰이 살해하고만 것이다. 그것도 평소 인종차별적인 동료 백인 경찰을 혐오하는 '착한' 백인 경찰이 자신도 잘 인식하지 못하던 '내면의 편견'에 의해 이런 일을 벌이는 것으로 묘사하면서 극적인 대비를 시켰다.

지금 미국에서는 이 영화에서 묘사한 것과 비슷한 사건이 실제로 일어나 전국적인 흑인민권운동으로 번지고 있다. 미국 플로리다 주의 샌퍼드라는 한 도시에서 흑인 고등학생 한 명이 히스패닉계 자율방범대원에게 살해된 사건이 인종갈등을 상징하는 사건으로 비화된 것이다.

26일 <뉴욕타임스>는 지난달말에 일어난 이 사건이 어떻게 해서 한달 사이에 전국적으로 주목을 받는 사건이 됐는지 그 과정을 정리하면서, 단순한 살인사건으로 묻힐 뻔만 이 사건이 트위터와 페이스북 등 소셜네트워크를 통해 전파되고, 미국의 <CBS> 등 주류 언론들이 적극적으로 가세하면서 '전국적인 사건'이 되었다고 분석하기도 했다.

▲ 플로리다 등 미국 곳곳에서 흑인 소년 트레이본 마틴의 죽음을 추모하는 집회와 시위가 벌어지고 있다. 사진은 26일(현지시각) 펜실베이니아에서 흑인 학생들이 모여 촛불 집회를 갖는 모습. ⓒAP=연합
비무장 흑인학생, 뒤쫓아 살해한 자경단원

지난 주말 이후 미국에서는 플로리다는 물론, 애틀랜타와 뉴욕, 시카고, 워싱턴 등지에서 흑인들이 연일 수천 명씩 모여 집단시위를 벌이고 있다. 이들은 흑인 청소년 트레이번 마틴(17)을 살해하고도 경찰이 체포조차 하지 않고 풀어준 조지 지머먼(28)을 체포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들은 '분노의 상징'으로 후드티를 입고 시위를 벌였다. 검은 후드티를 입고 있는 마틴을 수상하게 여긴 지머먼이 뒤를 쫓아가 살해한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이 때문에 흑인들은 "흑인이 후드티를 입으면 살해될 것을 각오해야 하느냐"면서 분노를 표현했다.

특히 흑인민권운동가로 대통령 선거에도 나섰던 제시 잭슨 목사는 "당신이 후드티를 입었든 천 조각 하나를 걸쳤든 아무도 당신을 죽일 권리는 없다"면서 "후드티를 입었기 때문이 아니라 흑인이었기 때문에 살해됐다"고 이번 사건을 인종차별적인 편견에 따른 비극으로 규정했다.

또다른 흑인 목사는 백인 여성에게 휘파람을 불었다는 이유로 집단폭행을 당해 숨진 14세 흑인 소년 '에밋 틸' 사건을 거론하며, 1955년에 일어난 '에밋 틸' 사건 때는 범인이 체포라도 됐다고 지머먼의 체포를 강력하게 요구했다. 흑인 급진결사조직 '신흑표범당NBPP'은 1만달러 현상금을 내걸고 지머먼의 수배 전단을 웹사이트에 올리기도 했다.

'지방 사건'이라 일축하던 백악관, 철저한 진상조사로 선회

이번 사건이 연말 대선을 앞둔 상황에서 전국적인 인종갈등 문제로 번지자 정치적으로도 민감한 문제가 되고 있다. 당초 연방 정부는 이 사건에 대한 탄원을 접수하고도 "지역에서 일어난 일"이라며 일축했다.

하지만 이 사건이 SNS와 언론 보도를 통해 전국적 사건으로 비화되자 급기야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물론이고, 공화당 대선주자들까지 이번 사건에 대한 철저한 진상조사를 촉구하고 나섰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 사건과 관련해 "아들이 있었다면 죽은 그 소년처럼 생겼을 것"이라면서 사적인 감정까지 담은 말로 철저한 조사를 강조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오바마 대통령이 '아들'이라는 각별한 단어까지 동원해 진상 조사를 촉구한 것은 그동안 인종 갈등 문제에 개입하는 것을 삼가 온 평소 태도에 비춰 매우 이례적인 것이라고 보도하기도 했다.

경찰이 지머먼을 체포하지 않고 그대로 풀어준 법적 근거도 논란이 되고 있다. 지머먼이 흑인이었다면 그대로 풀려났을 리가 없다는 것이다.

경찰은 일명 '스탠드 유어 그라운드(Stand Your Ground)'라는 법으로 이번 사건이 정당방위에 의한 총기 사용이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 26일(현지시간) 미국 플로리다주 샌퍼드 시에서 수천 명의 시민들이 흑인 소년 트레이본 마틴의 죽음에 대해 항의하고 있다. ⓒ로이터=뉴시스

뒤늦게 통화기록 공개한 현지 경찰, 은폐 의혹

하지만 지머먼이 911과 통화한 내용과 마틴이 살해되기 직전 5분여 동안 여자친구와 대화한 통화기록들이 뒤늦게 공개되면서 지머먼의 행위가 정당방위일 가능성이 희박해지고 있다.

지머먼은 편의점에서 물건을 사고 나오는 마틴을 보고 911에 전화를 걸어 "마약에 관련된 듯한 수상한 흑인을 쫓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911 요원은 "당신이 그렇게 할 필요가 없다. 위험하니 추격하지 마라"고 만류했다. 하지만 지머먼은 이를 무시하고 마틴을 쫓아갔다.

이런 행동은 '자율방범대원 지침'을 위반한 것이다. 이 지침에 따르면, 자율방범대원이 경찰 권력을 행사해서는 안된다. 무기를 소지하거나 차량을 추격해서는 안되며, 수상한 사람을 발견할 경우 경찰에 신고해야 한다. 무장했거나 위험한 사람과 직접 대치해서는 안 된다.

게다가 미국에는 2만2000명의 등록 자경대원이 있지만 지머먼은 미등록자인 것으로 드러났다. 범죄 전문가인 로드 휠러는 통화 기록을 검토한 결과 "술이나 마약에 취한 것은 마틴이 아니라 그를 살해한 지머먼인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반면 마틴은 여자친구와의 통화에서 "누군가 나를 쫓아오고 있다. 아무래도 도망가야 할 것 같다"고 말한 뒤 살해됐다. 통화 기록에 따르면 마틴이 이런 말을 한 뒤 격투를 벌이는 소리가 나고 이어 총기가 발사됐다. 당시 마틴은 무기를 소지하지 않았고, 지머먼은 SUV 차량을 몰고 줄곧 따라온 것으로 드러났다. 이로 인해 현지 경찰이 비교적 상황이 분명한 사건을 편파적으로 처리한 뒤 진상을 은폐하고 있다는 의혹까지 제기되고 있다. 통화기록도 뒤늦게 내놓은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이 사건은 연방수사국(FBI)까지 동원돼 조사를 벌이고 있으며, 관할 법원에서도 4월 10일 지머먼에 대해 살인죄 기소 여부를 결정할 심문을 시작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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