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재보궐선거 스코어에 제1야당이 끼지 못한 현실이 이를 입증한다. 지난해 대선 패배 이후부터 민주당은 대중들의 눈에서 '블랙아웃'됐다. 그러고도 이상한 대선평가보고서를 내고 집안싸움이다. 급기야 대선자금을 부실하게 집행했다는 '대선비용 검증 보고서'가 유출되는 사건까지 났다.
민주당 꼴이 말이 아니다보니 스포트라이트는 안철수 당선인에게 쏠린다. 국회의원이라는 번듯한 직업 정치인 명함을 얻은 그가 민주당을 포함한 야권 전반을 어떻게 요리할지가 관심사다. 민주당에 입당하든, 신당을 창당하든, 무소속으로 남든, 안철수의 갑(甲) 행세를 역전시킬 수단이 민주당에겐 많지 않다. 아무리 민주당이 난장판이라지만 꼬리가 몸통을 흔드는 격이다. 정상적인 상황이 아니다.
진중권 교수의 말을 그래서 거꾸로 읽는다. 민주당은 쓰레기더미이지만 문재인은 꽤 괜찮은 정치적 소양을 갖춘 자산이라고. "대선 패배는 내 책임"이라고, "안철수의 도움을 고맙게 생각한다"고 한 문 의원의 말은 상대를 향한 지독한 살수(殺手)들만 난무하는 민주당에서 유독 돋보였다. 이번 재보선에 문 의원은 '찬조 출연'을 했을 뿐이지만, 당락이 일찌감치 갈린 후보들보다 그의 정치 재개를 더 관심 있게 본 이유다.
부산 영도 선거 지원 과정에서 말했다. "지난번 대선 때 뜻을 이루지 못했지만 경제민주화, 복지국가, 남북관계 발전, 지방균형 발전, 새정치 등 내세웠던 가치는 여전히 필요하다. 그때 했던 약속들을 반드시 지키겠다. 그러려면 민주당이 다시 추스르고 일어서야 한다." 적절한 지적이고 자신의 역할을 위한 암시 같다.
국회 인사청문회에서조차 자리만 지켰던 문 의원이 이젠 상임위(기획재정위)에서 현오석 경제부총리를 상대로 추경 예산을 질타하는 모습도 보였다. 개성공단 입주업체들과 간담회를 갖고 "무거운 책임감을 갖고 앞으로 계속 역할을 찾아보겠다. 내가 할 일이 있으면 힘을 보태겠다"고 했다. 재보선을 비롯한 정치, 경제 현안에 이정도 얘기를 꺼낸 건 본격적인 활동 재개로 봐도 무방하겠다.
ⓒ프레시안(최형락) |
밖에선 안철수 당선인이 정치 기반을 넓혀가고 있고 안에선 비주류의 김한길 의원이 당권을 얻을 거란 예상이 다수인 가운데, 문 의원의 행보를 친노 진영의 구심점 찾기로 보는 시각이 있다. 계파 수장의 길이다. 부추기는 사람들이 꽤 있는 걸로 안다. 별로 좋은 생각이 아니다. 안철수 바람막이에, 김한길 대척점에 그치면 문 의원이 먼저 죽는다. 계파 갈등은 부지불식간에 자기파괴적인 결과를 내기 때문이다.
하기에 문 의원이 사는 길은 탈계파 '문재인 정치'를 보여주는 방법 밖에 없다. 탈계파가 꼭 친노 진영과의 절연을 뜻하는 건 아니다. 세력을 얻어가는 과정이 정치라면, 익숙하고 동지적이기까지 한 기존 관계를 헌신짝처럼 내던질 필요는 없다. 다만 친노의 소아병적 권력 집착과 패권적 행태를 반성하고 교정하지 않고선 탈계파가 불가능하기에 하는 말이다. 문 의원은 지난 대선에서 이걸 해내지 못했다.
4.24 재보선을 통해 안철수, 문재인이 동시에 정치 제2막을 시작했다. 많은 기대와 관심이 안철수 당선인에게 맞춰져 있다. 하지만 건강한 야권 재편의 시작은 문재인 의원에게서 시작될 수도 있다. 사실 그게 더 모양이 좋다. 문재인으로부터 비롯되는 민주당의 쇄신이 외생 변수인 안철수 당선인의 착근으로 파생되는 생산적 경쟁이기 때문이다.
정치는 사람이 하는 일이다. 불변의 진리다. 문재인이 살아야 안철수도 산다. '착한 문재인'은 과연 '유능한 문재인'으로 진화할 수 있을까? 이철희 두문정치연구소장의 주문이다. "계파의 리더에서 벗어나 당의 리더가 돼라." 그럴 수 있을까 물었다. "글쎄… 아직은 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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