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방적 학살' 형태의 내전
2월말 현재 희생자는 7,600명. 시리아는 그야말로 '전쟁' 상태다. 흔히 전쟁연구자들은 '전쟁'을 가리켜 '1년 동안에 교전 쌍방 사망자 숫자가 1천명이 넘는 유혈충돌'이라 정의 내린다. 이에 따르면, 시리아는 이미 2011년, 2012년 두 해에 걸쳐 '내전' 형태의 전쟁을 치르는 상황이다. 그러나 말이 전쟁이지 '일방적 학살' 수준이다. 탱크나 전폭기 등 압도적 화력을 갖춘 정부군이 반정부세력(소수의 탈영병이 함께한 시민군)을 마구잡이로 공격하고 그 과정에서 많은 시민들이 죽고 다치는 모습이다.
1980년 광주에서의 항쟁과 죽음을 기억하는 한국의 민주시민들에겐 시리아의 상황이 남의 일처럼 보이지 않을 것이다. 시리아 민중의 투쟁을 두 눈으로 직접 보고 그들의 목소리를 한국에 생생히 전하고 싶었다. 시리아 정부는 민주화 요구를 압살하는 모습을 감추기 위해 지난 1년 동안 외국 기자의 입국을 철저히 막아왔다.
다마스쿠스 공항에서 입국을 거부당해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야 하는 난감한 처지에 빠질지 몰라서, 요르단 암만 공항에서 내려 육로로 요르단-시리아 국경을 넘어 들어가는 길을 잡았다. 혹시나 입국을 거부당하면 그 대안으로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상황을 취재하겠다는 생각에서였다.
"당신은 안 된다. 돌아가라"
시리아에는 다마스쿠스 동북쪽으로 200km 거리의 팔미라(Palmyra)에는 서기 3세기 무렵 세워진 엄청난 크기의 역사 유적지들이 있다. 겸임교수로 있는 대학의 명함을 내밀며 "역사 공부 삼아 시리아 유적지를 보러왔다"고 하면 들여보내 주겠지, 시리아에 두 번 다녀온 기록이 여권에 찍혀 있고, 육로의 경우는 공항보다는 느슨하겠지...이런 나름의 기대감을 품고 입국사무소로 들어섰다.
그런 기대는 곧장 무너졌다. 시리아 관리들로부터 들은 이야기는 "당신은 안 된다. 돌아가라"였다. 여권에 팔레스타인 가자 지구와 이란, 레바논 등을 다녀온 기록을 보며 그냥 역사탐방, 관광이 목적이 아니라 여기는 것 같았다. 그곳 한 간부는 자신의 방으로 데려간 뒤 "당신의 노트북 컴퓨터에 뭐가 담겨있냐. 그걸 열어봐라"는 요구마저 서슴지 않았다.
줄담배를 피워 입술이 퍼런 게 인상적인 그 간부의 굳은 표정에서 "어느 외국인도 그가 시리아 상황을 직접 보고 듣고 바깥세상에 알릴 가능성이 있다면 아예 입국을 막겠다"는 시리아 정부의 완고한 방침이 읽혀졌다. 기다림과 입씨름을 되풀이하다 끝내 돌아서야 하니 속이 끓어올랐다. 요르단 암만으로 돌아가는 택시 안에서 1년 전에 끊었던 담배를 다시 입에 물었다.
▲ 팔레스타인 서안지구 벨린 마을에서 대형 깃발을 들고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의 점령과 인권침해를 규탄하는 투쟁가 Ⓒ김재명 |
외국 기자 싫어하는 까닭은?
시리아 취재를 포기하고 다음날 이스라엘-팔레스타인으로 향했다. 요르단 강 건너편 이스라엘 알렌비 출입국관리소에서 또 스트레스를 겪어야 했다. 왜 왔느냐, 누굴 만나려느냐, 어디 묵을 거냐, (태어나 얼굴 뵌 적 없는) 할아버지 이름을 영어로 써봐라는 식이다. 그리고는 무작정 기다리게 만든다. 저희들끼리 시시덕거리며 농담을 하는 관리소 직원들에게 다가가 "언제 여권을 돌려주느냐" 물어보면 어깨를 으쓱하며 "나도 몰라. 기다려봐"라는 식이다.
이스라엘 입국과정에서의 심문과 보안검색은 외국 기자들에게 일찍부터 악명이 높다. 오죽하면 "테러를 비판하던 사람도 테러리스트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품게 한다"는 말조차 나왔을까. 팔레스타인을 식민지로 삼고 군사적으로 업악하고 있는 이스라엘은 현장에서 저질러지는 못된 짓을 드러내길 꺼린다. 그런 점에서 시리아 아사드 독재정권과 이스라엘 우파정권은 닮은꼴이다.
사이비 민주주의라는 점에서도 이스라엘은 시리아와 닮았다. 이스라엘은 내각책임제 선거와 다당제 정당정치를 통해 서구적 민주주의를 실현한다고 주장을 내세우지만, 들여다 보면 허점투성이다. 이스라엘 시민권을 지닌 국민의 24%를 차지하는 아랍(팔레스타인) 시민들은 병역의무도 지워지지 않는 (따라서 취업과 승진 등에서 차별을 받는) 2등 시민으로 살아가고 있다. 국내정치적으로도 민주주의와 거리가 멀다.
국제정치적으로도 문제가 크다. 한 국가가 민주국가라면 신식민주의적 패권정책을 접고 이웃국가들과 민주적 호혜평등의 국제관계를 맺어야 한다.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을 식민지로 두고 레바논, 시리아를 비롯한 이웃국가들에게 패권적 지위를 강요해왔다. 그렇기에 국제사회로부터 유대인 파시즘 국가라는 비판을 받는다.
▲ 팔레스타인 서안지구는 1967년 제3차 중동전쟁 뒤부터 이스라엘의 식민지배 아래 놓여왔다. 국산 M-16 총과 권봉으로 무장하고 동예루살렘을 순찰중인 이스라엘군Ⓒ김재명 |
여권에 입국도장 찍힌다면
알렌비 출입국관리소에서 2시간쯤을 기다린 끝에 여권을 돌려받았다. 앞서 이스라엘 관리에게 요청한대로, 이스라엘 입국사실을 증명하는 도장이 찍힌 손바닥 크기의 네모난 별지와 함께였다. 여권에 이스라엘 입국도장이 찍히면 자칫 낭패를 볼 수도 있다. 그 여권으로는 이웃 이집트, 요르단 두 나라를 빼고 다른 중동 이슬람국가엔 들어갈 수가 없다.
지금부터 꼭 10년 전인 2002년, 팔레스타인의 2차 인티파다(intifada, 2000~2006년 사이에 일어난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저항, 봉기) 취재를 마치고 요르단강 서안의 이스라엘 알렌비 출입국관리소에서 낭패를 본 기억은 아직도 새롭다. 그때 요르단을 거쳐 시리아와 레바논 취재를 가려고 마음 먹고 있었기에, 여권을 내밀면서 확인하듯이 이렇게 말했었다. "별지에 입국도장이 찍혔으니 거기다 출국도장을 찍고, 내 여권에다 출국도장을 찍지 마세요"
그런데 옆자리 동료와 수다를 떨던 20대 중반의 젊은 여직원은 그 말을 귀담아 듣지 않았는지, 별지가 아닌 여권에 도장을 땅 찍어 내게 돌려주었다. 화를 내고 큰 소리를 내봐야 이미 엎어진 물이었다. 그 여직원은 자신의 실수가 남의 여행계획을 망쳤다는 사실을 알고는 "I am sorry" 한마디도 없이 어디론가 숨어버렸다. 그 날의 일을 떠올리면 지금도 씁쓸하기만 하다.
중동 이슬람 국가 가운데 이스라엘과 외교관계를 맺은 나라는 이집트와 요르단 두 나라 뿐이다. 이스라엘과 핵무기 개발을 둘러싼 긴장상태인 이란, 1967년 제3차 중동전쟁(6일전쟁)에서 이스라엘에게 골란고원을 빼앗긴 시리아, 걸핏하면 이스라엘의 침공을 받아온 레바논, 그리고 아랍 산유대국인 사우디, 쿠웨이트, 이라크 등 중동국가들은 이스라엘을 적성국가로 여겨 외교관계가 없다. 만약 프레시안 독자 가운데 중동지역의 여러 나라들을 여행할 계획을 세우신다면, 지금 여권에 이스라엘 입국도장이 찍혔는지를 살펴보시기 바란다.
"역사는 결국 팔레스타인 편"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1948년 1차 중동전쟁으로 2000년 전부터 살아오던 땅을 잃었고, 1967년 제3차 중동전쟁으로 서안지구와 가자지구마저 점령당했었다. 팔레스타인의 오늘도 어렵지만 내일의 전망도 그리 밝지 못하다. 짧은 기간이지만 현지에 머물며 돌아본 현실, 그리고 그곳 사람들과의 만남에서 얻은 느낌을 요약하자면, "팔레스타인의 현실은 참담하고 앞날은 암울하다"는 말이 맞을 성 싶다.
그럼에도 새삼 감탄할만한 것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투쟁의지이다. 서안지구 정치중심도시 라말라에서 만난 급진적 투쟁가이자 팔레스타인인민당(PPP) 간부인 이삼 바케르, 하마스(Hamas)와 경쟁상대인 온건 성향의 파타(Fatah)를 지지하는 정치학자 사미르 아와드(비르제이트 대학교수), 이 두 사람은 정치적 성향이 달라도 똑같은 주장을 폈다. "길게 보면 역사는 결국 팔레스타인 편"이라고.
과연 그럴까.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인권침해 문제, 지금 이 시각에도 진행중인 유대인 정착촌 확장문제, 8미터 높이의 거대한 분리장벽 건설문제 등 중동평화를 가로막는 여러 현안들을 곧이어 하나씩 살펴볼 참이다.
▲ 예루살렘과 서안지구 라말라 사이를 가로막는 8미터 높이의 분리장벽. 지난 2004년 사망한 팔레스타인 지도자 야세르 아라파트의 초상화 옆에 '팔레스타인을 해방하라'라는 구호가 적혀있다. Ⓒ김재명 |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