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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빛은 가장 강력한 방부제다

[이정전 칼럼] <80> 무역 협상과 투명성, 그리고 민주화

지난 3월 한중일 자유무역협정(FTA)을 위한 제1차 협상이 강남의 한 호텔에서 시작됐다고 한다. 작년 11월 캄보디아 프놈펜에서 열린 동아시아 정상회의에서 한국과 중국, 일본의 통상 장관들이 한중일 FTA 협상의 개시를 선언하였다는 얘기는 많이들 들었겠지만, 정작 그 협상이 우리나라에서 시작되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 같다.

미국은 캐나다, 멕시코, 호주, 베트남, 말레이시아, 칠레 등 아시아-태평양 지역 11개 국가를 묶는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을 추진 중인데, 근래 일본의 아베 총리가 미국 주도의 이 협상에 참여한다고 전격 발표하면서 우리나라도 참여 여부를 저울질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한편, TPP에 대응하여 중국은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Association of South-East Asian Nations) 10개 국가와 일본, 호주, 뉴질랜드, 인도 등 총 16개 국가를 묶는 광역 통상협정을 추진 중이라는데, 여기에도 우리나라가 속해 있다.

이제 우리나라는 또다시 각종 무역 협상의 미로 속으로 빠져들어 갈 모양이다. 한미FTA 과정에서 우리가 겪은 엄청난 사회적 진통이 또다시 반복되지나 않을지 우려된다. 사실, 제2차 세계대전 직후에 시작된 GATT(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 1994년에 체결된 우루과이 라운드, 그리고 그 6년 후 시작된 도하 라운드에 이르기까지 무역 자유화의 바람이 전 세계적으로 끊임없이 이어졌다. 이 결과 자유무역 확대를 통한 세계화는 지난 반세기 지구촌의 두드러진 특징이 되었다. 그러나 문제는, 그 무역 자유화가 주로 선진국 주도로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이 결과 자유무역 확대를 통한 세계화에 대하여 많은 비판과 불만 그리고 반발이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스티글리츠(J. E. Stiglitz) 교수는 그 비판과 불만을 잘 정리하였다.

자유무역 주창자들은 무역 자유화가 교역 당사국에 모두 이익이 된다는 교과서의 원칙적 얘기만 앵무새처럼 반복할 뿐, 현실이 교과서처럼 돌아가지 않는다는 사실을 외면하고 있다. 스티글리츠 교수는 두 가지 잘못된 고정관념부터 털어버리고 현실을 직시할 것을 주문한다. 무역 자유화가 자동적으로 교역 증진과 경제성장을 가져다준다는 고정관념, 그리고 경제성장이 자동적으로 낙수 효과를 수반한다는 고정관념이 바로 그것이다. 과거 무역협상은 이 두 가지 고정관념을 기조로 추진되었다. 스티글리츠 교수는 그 두 가지 고정관념 모두 이론적으로도 맞지 않을 뿐만 아니라 역사적 경험에 비추어 보아도 옳지 않다는 점을 실증적으로 밝히고 있다.

1994년 모로코 마라케시에서 우루과이 라운드 무역협정이 체결되었는데, 이로 인한 자유무역 이익의 70퍼센트가 선진국에 떨어진 반면, 나머지 30퍼센트가 세계 인구의 85퍼센트를 차지하는 개도국에 돌아갔다. 무역 자유화의 도도한 진행에도 불구하고 다수의 후진국들이 경제성장의 성과를 보지 못하고 있다. 이 결과 선진국과 후진국의 격차가 완화되기는커녕 오히려 벌어졌다. 우루과이 라운드는 경쟁 현장을 공정하게 만들지도 못했다. 선진국이 개도국에 부과한 관세는 같은 선진국에 부과한 관세보다 평균 4배나 높았다.

▲ 한중일 자유무역협정(FTA) 제1차 협상이 시작된 지난달 26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 그랜드인터컨티넨탈 호텔에서 최경림(가운데) 산업통상자원부 통상차관보와 위지앤화(兪建華. 왼쪽) 중국 상무부 부장조리, 코지 쓰루오카(鶴岡 公二) 일본 외무성 경제 담당 외무심의관이 기념 촬영을 하며 손을 맞잡고 있다. ⓒ연합뉴스

설령, 무역 자유화로 인한 이익이 후진국에 떨어지더라도 그 대부분을 소수 특권층이 차지하면서 빈민은 계속 늘어났다. 세계은행은 하루 2달러 이하의 생계를 빈곤으로 정의하며, 하루 1달러 이하의 생계를 극빈으로 정의하고 있는데, 슬픈 사실은 1981년부터 2001년 사이 20년 동안 중국을 제외한 다른 후진국에서 빈민이 매우 증가하였다는 것이다. 1981년에는 세계 인구의 36퍼센트가 빈곤선 이하에서 살고 있었지만, 2001년에는 40퍼센트가 빈곤선 이하에서 살고 있다. 아프리카의 경우에는 극빈선 이하에서 살고 있는 사람의 비율이 1981년에는 41.6퍼센트였지만, 2001년에는 46.9퍼센트로 뛰었다.

물론, 우루과이 라운드가 다자 간 협상이기 때문에 국가 간 빈부격차의 확대를 우루과이 라운드 탓으로만 돌릴 수 없다고 말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범위를 좁혀서 미국, 캐나다, 멕시코 사이에 체결된 북미 자유무역협정(NAFTA)을 예로 들어보자. NAFTA를 추진한 한 가지 중요한 이유는 미국과 멕시코 간 격차를 줄임으로써 불법 이민의 압력을 완화하려는 것이었다. 하지만 NAFTA 체결 이후 10년 동안 양국 간의 빈부격차는 10퍼센트 이상 늘었다. NAFTA가 멕시코에 기대한 경제성장을 가져오지도 않았다. 오히려 멕시코의 대미 의존도를 더욱더 높임으로써 미국 경기가 나빠지면 멕시코의 경기도 덩달아 나빠지게 되었다.

범지구적 무역 자유화가 후진국의 경제성장에도 도움이 되지 못했고 빈곤 퇴치에도 도움이 되지 못했던 주된 이유는 무역 협상이 공정하게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특히 선진국 주도의 무역 협상은 선진국에 압도적으로 유리하게 구조화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무역 협상의 사전에는 공정성이라는 단어가 없다." 이 말은 무역 협상의 현장에서 오랫동안 활동하였던 스티글리츠 교수의 경험을 요약한 명언이다.

그렇다면, 무역 협상이 공정하게 이루어지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물론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스티글리츠 교수는 그 하나로 투명성 결여를 꼽았다. 국제 회의에서 투명성은 늘 큰 관심거리로 강조되어 왔고 국제 회의의 원칙으로 선언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무역 협상에서만은 이 원칙이 무시되었다. 특히 선진국이 후진국을 상대할 때에는 밀실 협상이 관례화되었다고 한다.

밀실에서 협상이 이루어질 경우에는 대기업의 입김이나 업계의 이익을 대변하는 로비스트들의 목소리가 독판을 칠 여지가 커진다. 그러다 보니 국익이나 소비자의 이익, 약자의 이익은 아예 뒷전으로 밀린다. 무역 협상 당국은 보안상 협상 내용에 대한 구체적 정보를 공개할 수 없다고 늘 말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이는 장막 뒤에서 업계의 이익을 최대한 반영하기 위한 변명에 불과하다고 스티글리츠 교수는 단언한다. 업무상의 비밀 유지가 국민의 알 권리에 우선한다는 말인가. "햇빛은 가장 강력한 방부제다."라는 옛말을 인용하면서 그는 무역 협상의 공정성을 담보하기 위한 조건으로 투명성 및 민주화를 특별히 강조했다.

앞으로 무역 자유화 바람을 피할 수 없다면, 이것을 최대한 공정하게 만드는 것이 남은 과제다. 지난 한미FTA와는 달리 앞으로의 무역 협상에서 박근혜 정부가 해야 할 과업은 투명성과 민주화를 최대한 보장하는 것이다. 우리 국민도 이 점을 예의 주시하고 무역 협상의 진행을 감시해야 할 것이다.

물론, 투명성과 민주화는 비단 무역 협상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다. 대기업의 횡포 그리고 나아가서 우리 사회에 만연한 부정부패를 방지하기 위해서도 투명성과 민주화가 꼭 필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다시 한 번 더 강조해둔다. 햇빛은 가장 강력한 방부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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