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일 <블룸버그> 통신은 "전세계 소비자가 필름에서 디지털 기술로 옮겨간 흐름을 극복하지 못하고 코닥이 끝내 파산 신청을 했다"고 보도했다.
▲ 지난 11일 국제전자제품박락회(CES)에도 참가하며 활로를 찾던 코닥이 끝내 파산 신청을 했다. ⓒAP=연합 |
업계에서는 1960~70년대 코닥이라면 현재의 구글과 애플 같이 가장 선망받던 기업이었고, 미국인들은 당시 영원히 간직하고 싶은 순간을 '코닥 모멘트'라고 할 정도였다고 회고하며 '시대의 변화에 적응하지 못한 기업의 최후'에 충격을 받은 모습이다.
아이러니한 것은 코닥이 디지털 시대에 적응을 하지 못해서가 아니라 스스로 적응을 거부했다는 것이 파산의 결정적 이유라는 점이다.
<블룸버그> 통신 등이 전문가들을 인용해 분석한 바에 따르면, 코닥은 1975년 세계 최초로 디지털 카메라를 개발했다.
하지만 내부에서 격론 끝에 디지털 카메라를 선택해 집중하는 대신 기존의 필름 산업에 집착했다. 당시만 해도 잘 나가는 필름 시장을 스스로 디지털 사업으로 위축시킬 수 없다는 '근시안적 논리'가 이긴 것이다.
파산 위기에 몰려서야 1100개가 넘는 디지털 이미지 특허를 팔아서 회생을 도모하는 작업에 나섰다.
10여년전만도 90달러 주가, 50센트로 추락
이때문에 10여년전만 해도 90달러에 육박했던 코닥의 주가는 새해 들어 50센트 이하로 떨어지는 수모를 겪으며 파산이 예고됐고, 끝내 몇 주도 못가 파산 신청을 했다.
코닥은 지난 2005년 140억 달러(약 16조 원)가 넘었던 연간 매출이 지난해 반토막이 날 정도로 6년 연속 적자를 거듭했고, 올해는 더욱 매출이 줄어들 것으로 예상됐으며, 코닥이 뉴욕 맨해튼 파산법원에 신청한 파산보호 서류에는 51억 달러의 자산과 이보다 많은 68억달러의 부채가 기록됐다.
지난 2005년 코닥은 휴렛패커드 출신의 안토니오 페레스(65)를 CE0로 영입해 위기 극복에 나섰다. 하지만 페레스는 지난해 8월 한 인터뷰에서 "코닥은 디지털 시대에 맞춰 본격적으로 전환하는 데 5년 늦었다"고 털어놓았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지금으로부터 꼭 80년 전인 1932년, 코닥의 창업자 조지 이스트먼이 당시 77세의 나이에 권총 자살을 했다"면서 코닥의 비극적 운명을 창업주의 슬픈 최후와 연결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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