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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되려면 DJ처럼 '시대의 흐름' 읽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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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대통령 되려면 DJ처럼 '시대의 흐름' 읽어야"

[인터뷰] <대북포용정책의 진화를 위하여> 펴낸 김근식 교수

새로 책이 나왔다고 해서 찾아간 김근식 경남대 교수의 휴대전화는 불이 났다. 최근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과 만나 남북관계 문제를 얘기했다는 사실이 알려진 28일 기자들의 전화가 폭주했기 때문이다.

"김정일 위원장 사망 발표 날하고 오늘하고 언제 더 전화가 많이 왔나?" 물었다. "그래도 김정일 때가 더 많았다." 그처럼 김근식 교수는 남북관계에 큰 일이 터질 때마다 기자들이 전화하는 전문가 리스트의 수위를 오랫동안 지켜온 인물이다.

<대북포용정책의 진화를 위하여>(한울 펴냄)는 김 교수가 그간 논문과 칼럼, 토론회, 인터뷰 등을 통해 이야기한 남북관계와 대북정책의 모든 것이 집대성된 책이다. 그러나 그런 것들을 단순히 엮어 놓은 게 아니라, 체계적으로 틀을 짜서 새로 정리했다.

김 교수는 안철수 원장에게도 이 책을 전했다고 한다. 김 교수가 평소 어떤 주장을 펴는지에 대해서는 꽤 알려진 터. 안 원장이 김 교수를 만났다는 사실로 미뤄볼 때 '안철수는 경제는 진보, 안보는 보수'라는 세간의 평은 유보되어야 할 것 같다.

책에서 말하는 '포용정책의 진화'란 무엇인가, 김정일 사후의 북한은 어디로 갈 것인가, 안 원장과의 만남에서 어떤 얘기를 했나 등을 물었다. 인터뷰는 삼청동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에서 있었다.

▲ 김근식 경남대 교수 ⓒ프레시안(최형락)

포용정책에 관한 세 가지 오해

프레시안 : 책 제목이 <대북포용정책의 진화를 위해서>이다. 우선, 포용정책이란 게 뭔지 일반인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게 설명한다면.

김근식 : 포용정책의 기조로만 보자면, 노태우 정부 때인 1988년 '7.7 선언'(민족자존과 통일번영을 위한 대통령 특별선언)과 1991년 남북기본합의서 채택에서부터 남북관계가 적대와 대결이 아닌, 평화적으로 서로 상대방의 실체를 인정하는 상태에서 협력하고 교류하면서 북한의 바람직한 변화를 이끌어낸다는 기능주의적 접근이 시작됐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포용정책이 본격 시행된 것은 김대중 정부 때부터이고, 노무현 정부까지 10년 간 실행됐다. 노태우 정부 시절에는 북핵 문제가 터지면서 기본합의서가 휴지조각이 됐고, 김영삼 정부에서는 핵문제로 내내 사이가 안 좋았다. 김대중 정부에 들어가서야 포용정책이 처음으로 체계적이고 일관성 있게 시행됐다고 볼 수 있다.

▲ <대북포용정책의 진화를 위하여>(김근식 지음. 한울 펴냄) ⓒ한울
포용정책은 냉전 시대를 종식시켰던, 상대국에 대한 관여의 정책을 뜻한다. 김대중 정부는 관여(engagement)를 '포용'이라고 해석해서 개념상의 논란을 부르기도 했지만 국제정치학에서는 관여정책, 개입정책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관여나 개입이라는 단어는 정치적으로 쓰기에 부담이 있어서 김대중 정부 시절에는 햇볕정책, 노무현 정부에서는 평화번영정책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관여는 두 가지 요소를 가지고 있다. 첫째, 상대방과의 관계를 확대하는 것이다. 둘째, 관계의 확대를 통해 상대 국가의 변화를 가져온다는 목적을 가지고 있다. 이것을 김대중 정부 식으로 해석하면 '체제 경쟁에서 승리한 대한민국이 자신감을 갖고 북한과의 화해, 협력, 접촉, 교류, 대화와 협상을 통해 한반도의 평화를 증진시키고, 이를 통해 북한을 우리가 바라는 바람직한 방향으로 변화시켜서 점진적인 평화통일을 이루겠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김대중 정부는 대북 식량 지원, 남북 철도 연결, 개성공단, 금강산 관광 등으로 북한과의 접촉점을 늘려나갔다.

프레시안 : 포용정책의 내용과 목적은 여전히 잘 알려지지 않았고, 많은 왜곡이 있었다.

김근식 : 내 책의 2장에 소개된 내용은 포용정책에 대한 논란을 다루고 있다. 포용정책에 관한 비판은 여러 가지이지만 크게는 셋으로 정리된다. 첫째, 관계 개선을 통한 변화라는 목적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변화가 없었다는 것이다. 둘째, 남북의 관계를 확대하는 과정에서 상호주의가 지켜지지 않았다는 비판이다. 이른바 '퍼주기' 논란 같은 게 그것이다. 마지막으로 햇볕정책을 펼쳤음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핵무기 개발을 막지 못했다는 주장이다. 북한의 군사력 증강 시도를 막지 못했으니 결국 햇볕정책은 유화정책(상대국에 무조건 양보하고 타협하는 정책)이 아니냐는 것이다.

이런 비판이 논리적으로 일리가 아주 없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포용정책이 실패했다는 주장은 어불성설이다. 한국식 포용정책은 미국이 중국·베트남에 했던 포용과는 다른 맥락이 있다. 분단된 상대방을 대상으로 한 포용이기 때문에 특수한 성격을 띤다. 지구상에서 분단된 국가의 일방이 타방을, 그것도 서로 이질화된 체제에서 포용하는 것은 유례가 없기 때문에 어려울 수밖에 없다.

북한이 변하지 않았다는 주장에 대해 말하자면, 북한에는 미흡하게나마 꾸준히 변화가 진행되어 왔다. 북한 입장에서 남한의 관여는 굉장히 민감한 주제다. 자신의 체제 불안정 때문에 상대국과의 관계 맺기로 인해 급속도로 통일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변화가 더딜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게 포용정책이 틀렸다는 이유가 되지는 못한다. 곧바로 성과를 내기가 어렵지만 틀린 것은 아니다.

상호주의 논란은 남북의 이질화로 인한 가치 체계가 다르다는 점을 간과하고 있다. 퍼줬다고 비판하는 사람들은 '우리는 식량을 줬는데 북한은 국군포로를 송환시키지 않는다'는 식의 주장을 한다. 그러나 남측에서 보기에 식량 지원과 포로 송환은 모두 인도주의적 사안이지만, 북한 사람들이 보기에 국군 포로 문제는 그 무엇보다 민감한 정치적 사안이다. 그에 비해 식량 지원은 같은 민족으로서 해야 할 도리로 본다. 그렇게 가치 체제가 다른 상황에서 상호주의에 입각한 남측의 요구는 북측의 눈으로는 일방주의로 비춰질 수 있다. 기계적 상호주는 쉽지 않고, 김대중 정부 시절의 유연한 상호주의가 될 수밖에 없다.

끝으로 포용정책이 핵 개발을 막지 못했다는 주장. 결과적으로 볼 때 핵 개발을 막지 못하긴 했지만 기본적으로 핵 문제는 북미간의 문제이고 남한은 북미간의 핵 협상을 진전·촉진시켜 위기를 완화하는 역할을 할 수밖에 없다. 그걸 포용정책과 연계하는 건 맞지 않다.

또한 햇볕정책은 기본적으로 북한의 군사적 도발·팽창에 대한 철저한 봉쇄를 전제로 한 정책이다. 튼튼한 안보와 화해협력을 병행하는 것이다. 이를 유화정책이라 보는 것은 개념을 잘못 이해한 것이다. 핵을 불용한다는 것이 정부의 일관된 입장이었지만 이 때문에 전쟁까지 불사할 수는 없는 게 한반도의 현실이다. 핵을 없애기 위해 더디고 힘들지만 대화와 협상을 통해 해결해야지 선제적 군사 행동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남남갈등, '소수의 과잉대표'에서 비롯"

프레시안 : 포용정책의 발전적 진화가 필요하다고 책에서 주장했는데 어떤 의미인가?

김근식 : 구조적 관여(structural engagement)라는 개념을 제시했다. 이명박 정부는 포용정책을 포기한 결과 대북정책도 실패하고 포용정책을 펼치던 시절의 남북관계까지 망실시켰다. 대북정책에 대한 주도권을 상실한 채 고립무원의 왕따가 됐다. 포용정책이 10년간 진행됐기 때문에 이명박 정부도 그걸 뒤집지 못할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결과적으로 틀린 예상이었다. 내 책은 2013년에 들어설 새로운 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한 조언이다. 역진 불가능한, 비가역적인 남북관계의 구조화를 완성해서 정권이 바뀌어도 관계가 유지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 바로 '구조적 관여'다.

프레시안 : 구조화된 포용정책의 구체적인 내용은?

ⓒ프레시안(최형락)
김근식 : 한 마디로 남북관계를 제도화하자는 것이다. 장관급 회담이나 남북 경협사업을 법규화해서, 어떤 상황이 와도 합의를 거부하거나 불이행하지 않도록 만들자는 것이다.

'발전적 진화'의 또 다른 측면은 북한의 변화와 관련된 것인데 진보 진영에 보내는 메시지의 의미도 있다. 지금까지는 탈냉전 시대를 맞아 남북 사이의 관계 확대에 치중한 게 사실이지만 포용정책이 구조화되면 그 다음은 북한의 변화를 기대할 수 있다. 특히 이제 김정은 후계 체제가 시작됐는데 북한의 변화를 이끌어내기 위한 구조적 개입이 있어야 한다. 식량 지원, 경협 사업, 군사적 신뢰 구축을 할 때 이게 어떻게 북한의 변화를 견인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전략적인 개입 방편을 궁리해야 한다. 진보 진영도 고민해야할 숙제다.

포용정책이 시작된 지 이미 15년이 지났고, 그 동안 상황이 많이 바뀌었다. 김정은 시대라는 북한의 변화, 국내 여론의 변화, 북중관계 강화 등 대외적 변화도 있었다. 다양한 변화를 반영한 발전적 포용정책이 필요하다.

대북 인식과 관련해 일부 극단적 진보 진영의 과도한 친북주의나 수구 진영의 반북 정서 모두 바람직하지 않다. 반북 세력에게는 애북(愛北)의 관점이, 또 과도한 친북 세력에게는 지북(知北)의 관점이 필요하다. 진보 진영은 주사파냐 아니냐 같은 논쟁은 의미가 없어진지 오래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정말 합리적인 대북정책을 고민하고 북한을 변화시킬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해보면 북한의 문제점을 인정하고 변화를 고민하는, 현실적으로 방책으로서의 포용정책을 생각해야 한다.

4장에는 남남갈등에 대해 썼는데, 남남갈등이 격화되는 가장 큰 이유는 소수가 과잉대표되기 때문이다. 원론적 친북주의자들이 진보의 전체인양 대변되고, 보수도 합리적 보수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북한 타도론에 입각해 백두산에 태극기를 꽂자는 이들이 보수의 전부인 것처럼 대표되는 현상이 남남갈등을 심화시킨다.

프레시안 : 한 민간단체가 김정일 조문을 위해 방북하기도 했는데 그게 바로 과잉대표의 사례가 아닌가 한다.

김근식 : 우리가 지금 고민해야 할 것은 김정일 사후 한반도 평화를 어떻게 만들 것인지, 남북관계를 어떻게 개선해야 하는지 같은 것들이다. 밀입북 방식의 방북은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싶은 소영웅주의일 뿐이다. 그런 방식으로 조문을 가는 게 한반도의 평화와 남북관계 정상화에 무슨 영향을 주겠나? 1989년 임수경‧문익환의 방북과는 다른 맥락이다. 당시 정부가 대북 교섭 창구를 장악하고 남북교류에 대한 요구를 억압하는 상황에서 임수경식 방북은 의미가 있었다. 돌파구를 마련했다.

그런데 지금은 전혀 그런 상황이 아니다. 조문할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이 있고, 통일부에서 조전은 받아서 넘겨주겠다고 했는데, 그런 식으로 방북하는 것은 불필요한 갈등을 야기하고 수구세력에게 빌미를 제공할 뿐이다. 외교적인 목적으로 정부가 조문을 할 수 있다는 일반 국민들의 합의 수준을 넘어서는 것이다. 그런 식으로 과잉대표되는 소수에 대해 언론이 보도하고 정치쟁점화하면 중간에 있는 합리적인 사람들은 말을 하기가 힘들다. 그런 행동들은 지식인과 원로들이 나서서 막아야 한다.

ⓒ프레시안(최형락)
"핵심은 수령제…체제 유지의 동력이자 개방의 걸림돌"

프레시안 : 남남갈등은 어떻게 풀릴 수 있을까?

김근식 : 남남갈등은 토론으로 풀릴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정세가 구조적으로 바뀌어야 풀릴 수 있다. 냉전 시기에 가치관을 형성한 세대가 있고, 탈냉전 시기 북한에 대해 새롭게 접근하는 젊은 세대가 있다. 거기서 남남갈등이 생기지만, 예컨대 북미가 수교해서 평양에 미국 대사관이 생기고, 북일 수교로 일본이 북한에 투자하면 냉전적 의식은 발붙일 곳이 없고, 자연스럽게 남남갈등이 해소될 것이다.

프레시안 : 책에서는 북핵 문제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김근식 : 그 문제에 관해서도 진화를 고민해야 한다. 지금까지는 북한 원죄론으로 몰아갔지만, 그렇게 해서 문제가 풀리지 않았다. 북한이 핵실험을 하거나 핵확산금지조약(NPT)을 탈퇴하던 당시를 잘 들여다보면 북한이 그렇게 행동할 만한 상호관계가 있었다. 미국이 약속을 지키지 않거나, 최고지도자에 대한 험담을 하는 등 북한이 용인하지 않는 주권 침해 행동을 하거나, 또는 미국이 협상 의지를 보이지 않는 세 가지 패턴이 있었다. 그럴 때마다 북한은 벼랑끝 전술을 폈다. 따라서 북한 원죄론으로만 문제를 볼 게 아니라 북한이 위기를 조성하지 않는 환경을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북한에 대해서도 한 마디 하자면, 위기를 조성한다고 해서 북한이 원하는 결과를 도출한 것도 아니다. 오히려 반대다. 북한은 2003년 6자회담에 대해 거부감을 보이다가 어느 순간 전격적으로 6자회담을 받았다. 그렇게 북한이 선제적으로 양보를 하면 대화가 원활해지고 문제가 풀렸다. 그런 사례가 여러 번 있었다. 북한은 그걸 알아야 한다.

프레시안 : 김정은 체제에 대한 전망이 쏟아지는데, 핵심은 무엇인가?

김근식 : 김정은의 북한이 과거 공산주의 국가의 체제 전환 경로를 답습할 가능성은 없다고 본다. 초기 조건과 경로의존성이 강하기 때문이다. 북한은 수령제라는 특수한 초기 조건을 가지고 있다. 김정일이 사망하면 북한이 무너질 것이라는 '급변사태 대망론'이 틀린 이유는 바로 그 수령제를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수령제는 북한의 체제를 통합시키고 엘리트의 단합을 견인하는데 효과적으로 작용하는 메커니즘이다. 60년 넘게 작동했다. 그 견고함은 상상 이상이다. 수령제라는 조건 때문에 권력 엘리트도 함부로 저항하거나 이탈하지 않는다. 또 수령의 통제·감시가 있는 상황에서 주민들도 저항에 나서지 못한다. 저항에 따른 비용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역으로 말하자면, 북한의 변화를 위해서는 수령제의 변화가 전제되어야 한다. 김정은 체제가 수령제에 기대어 순탄하게 권력이 이양되고 있지만 수령제를 그대로 유지하면 김정일 시대처럼 북한은 스스로 변화하기 쉽게 않을 것이다. 최고지도자에겐 체제의 기반이 될 수 있는 힘이었고 사회주의가 붕괴한 이후 위기를 헤쳐 나갈 수 있었던 동력이었지만, 수령제는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는 창의력과 주체적 역량을 말살시킨 폐해를 불러왔다는 이중성을 띠고 있다.

수령제의 완화를 위해서는 수령제를 견고하게 떠받치고 있는 '피포위 의식'(under siege consciousness)을 바꿔야 한다. 자신들은 적으로 둘러싸여 있다는 피포위 의식에 주민들도 동의하고 있다. 따라서 수령제를 정당화시키는 남북·북미 적대관계를 깨야 피포위 의식이 사라지고 수령제가 약화될 수 있다. 그래야 개방도 가능이다. 이는 포용정책에 의해서만 가능하다는 게 나의 주장이다.

"김정일, 가업 수성했지만 흥업은 못했다"

프레시안 : '김정일 시대' 17년을 역사적으로 평가한다면?

김근식 : 김정일 위원장이 1994년 김일성 사후 1997~98년에 걸쳐 권력을 승계하면서 떠안은 북한은 가장 어려운 시기를 겪고 있는 나라였다. 그 어려움을 끝내 해결하지 못하고 사망했다. 어려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했지만 실패 또는 좌절하거나 성과를 내지 못했고, 문제가 온존하는 북한을 아들에게 물려줬다.

90년대 초 사회주의권은 붕괴했고, 러시아는 자본주의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였으며, 중국 역시 개방 정책을 펴면서 세계 경제에 편입됐다. 사회주의권의 연대의 틀이 무너졌다. 또 냉전 이후 절대적인 패권을 휘두르던 미국이 북한에 대한 공세를 계속 했다. 그런 상황을 극복하는 것은 김정일 위원장에게 참으로 어려운 일이었다.

그럼에도 김정일 위원장은 선군정치의 힘을 빌려 북한을 망하게는 하지 않았다. 일종의 가업 수성이다. 그러나 흥업(興業)이 힘들었던 건 결국 북미관계, 남북관계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다. 개혁·개방 의지는 있었지만 몇 차례의 '북한식 시도'가 대외 정책의 실패로 동력을 상실했다.

중국이 1970년대 말부터 개혁·개방에 나선 것은 미국과의 수교를 통해 외부 위험이 사라짐으로써 내부적 개혁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북한은 대외관계를 여전히 해결을 못하고 있다. 김정은 체제가 김정일 시대를 답습하지 않으려면 관계 정상화가 관건이다. 또 최근 의존도가 심화되고 있는 북중관계를 어떻게 해결할지도 과제다.

▲ 김근식 교수는 2007년 남북 정상회담 때 노무현 대통령 특별수행원으로 북한을 방문했다. 사진은 당시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과 악수하는 장면

프레시안 : 김정은 체제가 제대로 갈 수 있을까?

김근식 : 김정은으로의 권력 승계 과정은 김정일 위원장의 경우에 비해 짧을 것이다. 후계체제 구축 과정도 압축적으로 진행됐지만, 권력 승계 기간도 김일성 사망 당시 3년상을 치렀던 것 보다는 줄어들 것이다. 김정은 체제의 리더십이 확고해서라기보다는, 수령제 시스템이 탄탄하게 작동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권력 이양이 완료되고 난 후 핵문제나 대외 정책, 경제 노선 등에서 수령의 역할을 확실하게 해 나갈 수 있냐는 것이다. 김정은 부위원장이 엘리트들 동요시키지 않고 자기 노선을 보여줄 수 있느냐는 지켜볼 문제다.

프레시안 : 나이가 너무 어리다는 생각을 자연스럽게 할 수밖에 없는데.

김근식 : 김정일 위원장도 1974년 후계자로 공식 지명됐을 때 32살이었다. '어려서 뭘 알겠나'라는 평가는 주위의 리영호(당 중앙군사위 부위원장. 인민군 총참모장), 김영춘(인민무력부장), 최태복(당 비서) 같은 70~80대에 비해 어리다는 말이다. 그러나 북한의 시스템을 고려할 때 김정은을 애송이라고 치부하는 것은 지나친 예단이다. 앞으로 보여주는 행동을 보고 판단할 문제다.

안철수와의 만남

프레시안 : 내년 대선에 나갈 후보에게 하고 싶은 조언이 있다면?

김근식 : 김정은 체제의 북한이 개막한 상황에서 북한과 우리가 어떻게 관계를 맺을 것인지에 대한 비전과 철학이 있어야 한다. 김대중 대통령은 탈냉전이라는 시대적 변화를 받아들이고 화해협력과 포용정책으로 가겠다는 혜안을 가졌다. 시대의 흐름을 타고 접근해서 성공한 것이다.

2013년 대통령이 되고자 하는 사람 역시 마찬가지로 시대적 변화의 물결을 타야한다. 김정은 부위원장은 아버지를 답습할 수도 있고, 중국의 덩샤오핑(鄧小平)이나 리비아의 카다피가 될 수도 있다. 이처럼 한반도의 정세가 변화할 수 있는 결정적인 시점에서 그에 걸맞은 새로운 남북관계를 정립하겠다는 자기 비전을 보여야 한다. 철학을 가지고, 언제든지 떠오를 수 있는 북한 이슈에 대해 가장 신중하고 진정성 있게 대응해야 한다.

프레시안 : 안철수 원장을 만난 자리에서는 오늘 나눈 얘기들이 오갔다고 보면 되나?

김근식 : 안 원장과는 12월 초, 그리고 김정일 사후인 지난주 이렇게 두 번 만났다. 이번에 나온 내 책 <대북포용정책의 진화를 위하여>도 건넸다. 안 원장 측이 지인을 통해 남북관계에 대한 내 얘기를 듣고 싶다는 메시지를 보내 왔다.

프레시안 : 구체적으로 어떤 내용이었나? 반응은?

김근식 : 첫번째 만남에서는 남북관계 전반과 포용정책,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에 관해 이야기했다. 두 번째 만남에서는 김정은 체제 이후의 한반도 정세 전망과 우리가 갖춰야할 태도 같은 것들을 이야기했다. 차분하면서도 진지하게 대화를 나눴다. 예의바르고 성실한, 스마트한 분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내 얘기를 들으면서 질문도 꽤 하던데, 남북관계에 대한 이해도가 상당한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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