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회 시청률로 22.2%를 받아 쥐었을 때만 해도 '쇼와 노스탤지어'는 여전히 통하는 아이템인 듯 했다. 그러나 <남극대륙>은 결과적으로 첫 회와 마지막 회를 제외하고는 시청률 10%대를 넘어서지 못했고, 오히려 같은 시기에 방영된 다른 드라마 한 편과 끊임없이 비교되는 굴욕을 겪어야 했다.
<남극대륙>을 누르고 2011년 일본 TV의 주인공이 된 건 내용과 형식 할 것 없이 모든 면에서 그 정반대편에 서 있는 드라마 <가정부 미타(家政婦のミタ)>였다. 어찌 보면 소박하기 이를 때 없는 홈드라마에 가까운 이 작품이 하나의 신드롬이 되리라고 예상한 이는 아무도 없었을 것이다. 무엇보다 무려 40%라는, 역대 3위에 해당하는 시청률의 의미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왜 <가정부 미타>인가. 왜 <남극대륙>은 아닌가.
▲ 드라마 <가정부 미타> 캡쳐 화면 |
아버지의 불륜으로 어머니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후 '가족 붕괴'의 위기에 놓인 한 가정에 '가정부 미타'가 들어온다. 어떤 일이든 그것이 업무 명령이라면 설령 청부폭력이라 해도 완벽하게 해내는 그녀. 그런 그녀를 보며 아버지와 4남매는 어머니의 빈자리를 채우고 싶어 한다. 그러나 무슨 일이든 완벽하게 해내는 그녀도 그들 가족의 근본적인 문제에 대해서만은 차갑고 냉정하다.
'어떻게 하면 좋을지 잘 모르겠어요!'
'그건 당신(들)이 결정할 일입니다.'
거의 매회에 걸쳐 반복되는 이 대화는 어머니의 존재와 어리광에 익숙해진 그들이 변화하기 시작하는 전환점 같은 역할을 한다. 결국 그들은 스스로 묻기 시작하는데, 그 질문은 아주 근본적인 지점, 그러니까 가족의 출발점에까지 가서 닿는다. 아버지의 자격, 자식의 역할, 연대의 방법 등 권위 있는 권력자도, 주어진 매뉴얼도 없이 그들 스스로의 의지로 가족을 새로 구성하고 각자의 역할을 결정하며 가족 붕괴의 위기를 헤쳐 나가는 과정을 드라마는 비교적 담담하게 그리고 있다.
3월 11일 이후 국가의 권위와 신뢰가 땅에 떨어지고 '공동체의 붕괴'에 대한 불안과 공포가 엄습하고 있는 일본 사회가 맞닥뜨리고 있는 더 큰 문제는 지금까지 성서처럼 믿고 따르던 매뉴얼이 무용지물이 되어버렸다는 것이다. 문제의식은 공유하고 있으나 누구도 그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제시하지 못하는 낯설고도 두려운 상황. <가정부 미타>는 바로 이러한 일본사회의 모습과 공명한다.
영광스러운 과거가 아닌 불안한 현실을, 꿈과 열정의 결정체인 '쇼와 기지'가 아닌 힘들게 묻고 찾게 만드는 '사람'을 선택한 일본의 시청자들은 이제 더 이상 어리광을 부릴 수 있는 시대가 아님을, 화려한 성장을 계속하던 쇼와(昭和) 시대를 꿈꾸는 것만으로는 지금을 이겨낼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이다.
▲ 2009년 정권교체 당시 민주당 정권공약집 ⓒ일본 민주당 홈페이지 |
'어떻게 하면 좋을지 잘 모르겠어요!'
당 안팎의 거센 비판과 민주당의 존재 이유에 대한 의문이 극에 달한 상황이지만, 그런 몸부림마저 <가정부 미타> 속 가족들의 어리광과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다. 천문학적인 나라 빚은 유럽의 위기가 남의 일이 아닐 만큼 심각한 수준이고 동일본 대지진의 여파가 사회 곳곳을 거세게 흔들고 있는 지금, 일본 사회는 2년 전 그렇게 어렵게 공유했던 콘크리트와 사람 사이에서의 선택마저 다시 원점으로 돌려버리고 말았기 때문이다. 이 추운 겨울, <가정부 미타>가 남기고 간 대답은 그래서 더 차갑고 냉정하게 울리는 듯 하다.
'그건 당신들이 결정할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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