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현지시각) 조르지오 나폴리타노 대통령은 이메일로 배포된 성명을 통해 베를루스코니 총리가 이날 오후 6시30분부터 약 1시간 동안 진행된 대화에서 경제개혁 관련 법안들의 의회 승인이 이뤄지면 사임하겠다는 의사를 표명했다고 밝혔다.
▲ 베를루스코니 이탈리아 총리가 8일 저녁 사의를 표명한 뒤 대통령궁을 빠져나오고 있다. ⓒAP=연합 |
나폴리타노 대통령은 "일단 임무가 완수되면 총리는 자신의 권한을 국가수반(대통령)에게 넘길 것이며, 나는 대통령으로서 각 정파와의 협의에 착수할 것"이라고 말했고, 베를루스코니 총리도 대통령의 성명 내용을 확인했다.
유럽연합이 요구해온 경제 개혁 법안의 의회 표결은 다음주로 예정돼 있다. 경제개혁 법안은 제한된 영역에서 정부 자산을 매각하고 지방 공공서비스를 민영화하는 내용을 담은 것으로 알려졌다.
베를루스코니 총리의 사퇴는 예견된 것이었다. 집권 연정 내부에서 분열 조짐이 심각한 상황에서 이날 하원에서 치러진 2010년 예산 지출 승인안 표결이 베를루스코니의 거취를 가를 분수령으로 전망돼 온 것이다.
예산 관련 안건 자체는 중요한 것이 아니지만, 이 안건이 과반수로 통과되지 않으면 베를루스코니의 집권 연정이 무너진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날 예산 안건은 야당 의원 321명이 대거 기권한 가운데 치러졌으며, 예산 지출 승인안 자체는 찬성 308표로 가결됐다.
그러나 재적 630석의 과반인 316석을 얻는 데는 실패함으로써 정권 유지에 필요한 다수를 확보하고 있지 못하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표결 직후 제1야당인 민주당의 피에르 루이기 베르사니 당수는 "현 정부는 하원에서 더 이상 다수가 아니다"라며 "진심으로 말하건대 지금의 모든 상황에 책임을 지고 사임하라"고 베를루스코니 총리를 직접 압박했다.
베를루스코니 총리의 연정 핵심 파트너인 움베르토 보시 북부연맹 당수마저 표결 전부터 총리의 사임을 요구하고 나섰다.
하원 표결 직후 이탈리아 국채 10년 만기 금리는 유로화가 출범한 1999년 이후 최고치인 6.77%까지 치솟으며 시장도 '베를루스코니 리스크'에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
거국 내각 구성 등 신뢰 회복 위한 정계개편 관건
결국 베를루스코니는 자진사퇴 아니면 불신임 투표에 직면할 것이라는 예측이 곧바로 현실화됐다. 지난 1994년 성공한 기업가로 정계에 입문한 이후 숱한 성추문과 비리 의혹에도 불구하고 3차례 총리직을 수행해온 베를루스코니 총리는 경제위기를 악화시킨 주범으로 몰리면서 불명예 퇴진을 하게 됐다.
베를루스코니 총리가 사임한 후에는 이탈리아 정치권은 현 중도우파 연정을 확대하거나, 거국내각 구성, 의회 해산을 통한 조기 총선 등 3가지 방안 중 하나의 경로를 택할 것으로 전망된다.
베를루스코니의 뒤를 이어 내각을 이끌 인물로는 거국내각이 구성될 경우, 여야의 고른 지지를 받고 있는 전 EU집행위원 마리오 몬티(68) 밀라노 보코니대 총장이 가장 유력한 후보로 떠오르고 있다.
우파 연정 확대에 그칠 경우는 집권 자유국민당의 조정자 역할을 해온 지아니 레타(76) 내각차관과 최연소 법무장관을 지낸 안젤리노 알파노(41) 자유국민당 사무총장이 후보군으로 거론되고 있다.
하지만 이탈리아 정치권이 시장의 신뢰를 회복할 정도의 재편이 되지 못한다면 이탈리아 위기는 지속될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이탈리아의 국채는 우리 돈으로 3000조 원에 달하며, 그리스 부채의 5배가 넘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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