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감에서 민주당 송민순 의원은 위키리크스가 공개한 미 국무부의 외교전문에 통일부 내 모 고위당국자를 '반드시 보호해야 할 중요한 정보원'으로 지칭하면서 '언제나 필요하면 만날 수 있는 사람'으로 표현한 것을 언급하면서 박 전 비서관의 생각을 물었다.
이에 박 전 비서관은 "해당 전문에 '접촉선'(contacts)이라는 표현이 나오는데, 이는 '특별한 정보의 출처'(source of special information)를 뜻하며 형법 113조 외교상 기밀 누설이라고 본다"고 답했다.
그는 "청와대에서 근무하다 보면 '유리벽' 속에서 근무한다는 느낌을 받을 것"이라며 "기밀 유지가 굉장히 어렵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형법의 외교상 기밀누설죄에는 징역 및 벌금 조항이 있지만 (누설 대상 국가가) 적성국이 아니라는 이유로 처벌된 적은 없는 것으로 안다"면서 "(관련 대책이) 강화되지 않으면 안보 관련 일을 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박 전 비서관이 송 의원의 요청에 따라 소개한 사례는 충격적이다. 그는 "국기를 문란케 할 정도"라며 "북한(에서 만들었다는) 위폐상을 잡았다면서 한나라당 당직자가 우리 당국에 제보하지 않고 미국에 제보해, 미 재무부 비밀수사기관이 한국에 들어와 한국 국민을 체포하려 한 적도 있었으나 우리 정보기관에 의해 막혔다"고 소개했다. 해당 당직자의 실명은 거론하지 않았다.
그는 "우리 사법기관이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해 주한 미 대사관과 재무부에 항의하고 동시에 우리 사법기관이 동원돼 달러 위폐상을 잡고 중국까지 연결된 것을 일망타진해 처벌했다"며 "검찰과 대통령기록관에 해당 기록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선원, "위키리크스 전문 사실이다"
박 전 비서관은 이날 정보공개 전문 사이트 '위키리크스'가 폭로한 미 대사관의 전문 내용을 공식석상에서 확인해 눈길을 끌었다. 위키리크스를 통해 유출된 비밀 전문에 대해 전·현직을 막론하고 당국자가 확인한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그가 확인한 전문은 2007년 9월 5일 주한 미 대사관이 작성한 '남북정상회담, 어떻게 추진됐나' 제하의 3급비밀(CONFIDENTIAL) 전문이다. 대사관은 이 전문에서 전날 저녁 조셉 윤 당시 대사관 차석대표 직무대행(A/DCM)과 박선원 당시 청와대 비서관의 만남을 기록했다.
전문에 따르면 박 전 비서관은 노무현 정부가 수 년간 정상회담을 추진했으며, 이를 위해 박선원, 이종석, 서훈 등 3명의 소그룹이 결성됐다고 말했다. 대사관은 "정상회담 협상은 국가정보원과 국가안보회의(NSC) 관계자들이 담당했으며, 남북관계 주무장관인 외교, 통일, 국방장관은 8월 8일 발표 당일까지 이를 몰랐다"고 본국에 보고했다.
한나라당 유기준 의원과 자유선진당 박선영 의원 등은 전문의 내용을 언급하며 사실관계를 물었고 박 전 비서관은 "맞다", "사실이다"라고 말했다. 유 의원이 왜 이같은 설명을 했냐고 묻자 박 전 비서관은 "9월 8일 시드니에서 열릴 한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미국 측에 남북정상회담 추진 경과를 설명하라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지시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유 의원이 "정상회담 발표 당일까지 주무장관들이 이를 몰랐다는 것은 문제가 있는 것 아닌가"라고 묻자 박 전 비서관은 "이번에 위키리크스 사태를 통해 드러났지만 (한국 정부 내에) 특수 정보가 유출될 수 있는 소스(출처)가 없다고 할 수 없기 때문에 보안을 유지하기 위해 그렇게 했다"고 답변했다.
박 전 비서관은 "본래 정상회담이 결정되면 (미국 측에) 사전 통보한다고 했는데 보안 유지 때문에 사전에 충분히 통보하지 않은 관계로 우리 정부 내에서도 충분히 보안에 부쳐졌다는 점을 미국 측에 강조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날 국감장에는 주한 미 대사관의 전문에서 '정상회담 발표 당일까지 몰랐다'고 되어 있는 송민순 당시 외교통상부 장관(현 민주당 의원)도 있었다. 박 전 비서관의 답변 후 송 의원은 "박 전 비서관은 당시 외교장관이던 저를 포함해 각료들이 몰랐다고 알았겠지만 본인은 직접 노 전 대통령에게 말을 듣고 참고로 알고 있었다"고 설명했다.
송 의원은 "(노무현) 대통령이 외교장관에게 말할 때는 '알고만 있으라'고 한 만큼, 비서관에게 (일을) 시킬 때는 말하지 않았을 것"이라면서 "증인으로서는 그렇게 이해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 박선원 전 청와대 통일안보전략비서관(자료사진) ⓒ뉴시스 |
'황당한' 증인출석 요구…"박선원이 간첩 혐의자?"
이날 박 전 비서관이 국정감사 증인으로 출석을 요구받은 것은 위키리크스 전문 때문만은 아니었다. 민주당 김동철 의원은 "증인 출석 요청서에는 심문 요지가 '일심회 간첩 연루 혐의 관련'으로 돼 있다"면서 증인을 심문하는 형식을 빌어 이같은 이유로 증인 채택을 요청한 동료 의원들을 겨냥했다.
박 전 비서관은 일심회 사건으로 수사받거나 참고인 조사를 받은 적조차 없다며, 일심회 사건으로 구속된 손 모 씨와는 80년대 학생운동을 같이 했으나 2005년 정태근 당시 서울시 정무부시장의 취임 축하 모임 자리에서 한 번 만났을 뿐 90년대 이후 전혀 만난 적도 없다고 해명했다. 정태근 당시 부시장은 현재 한나라당 국회의원이다.
박 전 비서관도 의원들이 묻는 대로 거침없이 답변하면서도 석연치 않은 이유로 증인 출석 요구를 받은데 대해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그는 민주당 원혜영 의원이 "지금까지 청와대 비서관이 국감 증인으로 출석한 적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나"라고 묻자 "몰랐지만 앞으로 이명박 정부 비서관들이 많이 출석하실 줄로 알고 나왔다"고 답했다. 그는 "2007년에 재판이 끝난 사안을 사실 확인도 없이 불러 그리 기쁘진 않았지만 국회 부름이니 응하는 것이 온당하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박 전 비서관은 당시 자신이 일심회 사건에 연루됐음을 암시한 기사를 쓴 <동아일보>를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고 법원은 신문사로 하여금 박 전 비서관에게 2000만 원을 지급하라며 원고 승소 판결을 내린 바 있다.
원 의원은 "이번 청와대 비서관 출신이 증인 출석한 것을 계기로 앞으로 어떤 정권에서든 물의를 일으킨바 있는 책임있는 공직자들이 (국감장에서) 답변을 하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면서 "박선원 증인께 존경의 말씀을 드린다"고 치켜세웠다. 그러나 한나라당 김영우 의원과 구상찬 의원 등은 '이명박 정부 비서관들도 출석할 것' 등의 발언이 부적절하다며 문제를 제기했다.
류우익 "남북관계, 국민이 좀 참아야 한다"
국회 외통위가 통일부와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민주평통) 등을 대상으로 진행한 이날 국감에는 정기섭 개성공단 입주기업 대표와 금강산 사업 남측 사업자인 김영현 현대아산 관광사업본부장 등이 참고인으로 출석해 남북경협사업의 현 상황을 알리고 의원들에게 애로사항을 호소하기도 했다. 정기섭 대표는 "정부가 특별한 지원을 해줄 것은 요청도 기대도 하지 않는다"면서 "정부(정책)의 연속성으로 볼 때 입주기업을 모집하면서 설명하고 홍보할 때 제시한 청사진을 빨리 (이행)해달라"고 촉구했다.
한편 류우익 통일부 장관은 민주당 김동철 의원이 여론조사 결과를 인용하면서 '국민들 사이에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한 불만이 높다'고 지적하자 "국민이 좀 참을 부분은 참아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류 장관은 정치 문제와 경협 등 교류협력 분야를 분리하자는 '정경분리' 원칙에 대해서도 "부분적으로는 그런 전술을 쓸 수 있으나 전체적으로 (적용하기에는) 어려운 점이 있다"고 부정적인 태도를 비쳤다.
김 의원이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의 부인 이희호 여사가 인도적 목적의 방북을 희망하고 있다면서 허용할 것인지 여부를 묻자 류 장관은 "전 영부인이 남북관계를 위해 노력하고 계시다는 점에 감사드리고 높이 평가한다"면서도 "정치적 상징성이 있는 분이라 방북 문제는 신중하게 판단돼야 한다"고 답했다.
류 장관은 제2개성공단 문제에 대해서는 "개성공단의 통일정책에 대한 기여를 평가하고 있고 (…) 그 토대 위에서 추진하는 것을 염두에 두고 있다"고 말했지만 "구체적인 방안에 대해 아직 밝힐 단계는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류 장관은 한나라당 정몽준 의원이 "이르면 금년 말, 또는 내년 초에 남북 정상회담을 추진하고 있다는 얘기가 있다"며 사실이냐고 묻자 구체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바가 없다고 잘라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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