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회는 20일 통일부과 민주평통 등에 대한 국정감사를 진행했다. 이 자리에서 한나라당 구상찬 의원이 이상직 사무처장에게 "본인이 '남북나눔공동체' 이사라는 것을 알고 있느냐"고 묻자 그는 "그런 것으로 알고 있다"고 남 얘기하듯 말했다. 남북나눔공동체는 민주평통 산하의 대북지원 단체로 수석부의장이 이사장을 겸하고 있다.
이 사무처장의 답변에 발끈한 구 의원은 "본인이 이사냐고 묻는데 그렇게 알고 있다니, 답변을 그렇게 할 것인가?"라며 "위원장, 나 이렇게 하면 질의 못하겠습니다"라고 한나라당 소속 남경필 외통위원장에게 하소연했다.
구 의원은 자리에 앉아있던 이 사무처장을 발언대로 불러내 남북나눔공동체 등 대북 지원업에 대해 질의를 계속했지만 이 사무처장은 "모릅니다"로 일관했다. 구 의원은 기가 막힌 듯 "나 국회 30년 나왔지만 저렇게 답변하는 사람 처음 보네"라며 혀를 찼다.
이어 구 의원이 "사무처장, 박영준 전 차관이 하는 모임에서 같이 일한적 있죠?"라고 묻자 이 사무처장은 "그건 별개의 문제"라며 답을 피했다. 이에 남 위원장까지 나서 '별개의 문제인지는 의원들이 판단할 것이니 우선 답을 하라'고 몰아세워야 했다.
결국 구 의원은 의사진행발언을 통해 "민주평통에 대한 감사원 감사를 정식으로 요청한다"며 "관리감독을 잘못한 사무처장들은 감사를 받아야 한다"고 촉구했다. 남 위원장은 "내가 보기에도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라는 답변만 하고 있다"며 "납득하기 어렵다"고 이 사무처장을 나무랐다.
오전 질의에서도 이 사무처장은 '지난해 민주평통이 국정감사를 두 차례 받은 것을 알고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모른다고 답했다. 민주당 최재성 의원이 의사진행발언을 요청해 "감사를 받는 자세가 문제가 있다"며 "사무처장이 작년 국감 기록도 안 보고 왔다는 것이 고개 빳빳이 들고 얘기할 사항이냐. 부끄러운 줄 알라"고 호통을 칠 정도였다.
한나라당 홍정욱 의원도 국회가 이미 여러 차례 조직을 축소해 효율적으로 운영하라고 지적한 바 있음에도 민주평통은 오히려 매년 위원 수를 늘려왔다며 "민주평통은 골머리 조직이다. 국감에 나와 대답하는 것을 보면 복지부동, 마이동풍, 우이독경이라는 말이 아깝지 않다. 변하는 게 없다"고 강력히 비판했다.
▲ 이상직 민주평통 사무처장 (자료사진) ⓒ뉴시스 |
해외 행사에서 '역사왜곡' 자료 배포 논란
민주평통은 해외에서 치러진 공식 행사에서 제주 4.3 항쟁을 '폭동'으로, 1945년 미군정 당시 국무부를 '친공(親共) 성향의 관료들이 장악했다'고 묘사하는 등 우편향된 역사관을 담은 자료를 배포해 논란이 빚기도 했다.
민주당 원혜영 의원은 앞서 이날 오전 이 사무처장에게 "매카시즘 뺨치는 주장이 담겨있는 책을 민주평통이 공식적으로 배포했다"고 추궁했다.
원 의원이 언급한 것은 지난 7~8월 미국 LA와 워싱턴, 뉴욕, 독일, 호주 등지에서 진행된 민주평통 15기 해외협의회 출범회의에서 배포된 <대한민국 이전&이후>라는 소책자로 '자유주의진보연합'이라는 단체가 제작‧배포한 것이다. 이 책자는 컴퓨터 파일 형태로 민주평통 홈페이지에 지난 3월부터 반 년 가량 게시돼 있기도 했다.
이 책자는 제주 4.3 항쟁을 '폭동'으로, 1987년 6월 민주화 운동을 '6월 사태' 명명했을 뿐만 아니라 해방 후 여운형‧김규식 등이 주도한 좌우합작운동에 대해서는 "실은 친공(親共)성향의 리버럴한 관료들이 장악하고 있던 미 국무부의 원격조종 아래 미 군정이 기획, 연출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또 "5.16으로 정권을 잡은 박정희 대통령은 조국근대화와 국가안보를 위해서는 자유의 일시적인 유보가 불가피하다고 생각했다"며 "'한국적 민주주의'를 내건 유신정권 시절에는 민주주의가 더욱 후퇴했지만, 그 시기에도 정기적인 선거, 다당제 등은 훼손되지 않았다"는 주장도 담겨 있다.
이 책자는 1987년 민주화 이후의 한국 정치에 대해서도 편치 않은 심기를 드러내고 있다. 책자는 "1960년대 이후 민주화 운동과정에서 주사파나 PD파 등 좌익세력들이 독버섯처럼 자라났다"며 "1987년 민주와 이후에는 국가의 장래보다는 당장의 당리당략에 급급해 국민들을 잘못된 길로 이끄는 포퓰리스트 정치인들이 대거 등장했다"고 주장했다.
원 의원은 "민주평통은 지난해에도 표현이 부적절한 내부용 보고서가 언론에 유출되고, 홈페이지에 게시돼 국정감사를 두 번 받기도 했다"며 과거 민주평통이 중국을 한국의 국익에 부정적인 존재로 그려 국제 문제가 됐던 것을 지적했다. 그는 "그런데도 또 다시 이 같은 일이 반복해서 일어나는 것은 대통령 자문기구로써 민주평통의 자세와 능력을 의심해 볼 수밖에 할 수 없다"고 강하게 질타했다.
최재성 의원도 "(이는) 여야의 문제가 아니라 심각한 외교적 문제 발생시킬수 있다"며 "이것도 몰랐다고 하다니"라고 질책했다.
남경필 위원장은 오후 구상찬 의원의 질의순서를 마친 후 "대한민국 역사를 부정한 내용을 포함한 문서를 배포해 여러 의원들의 질타를 받았다"면서 "사무처장은 재발 방지 확약을 하고 재발시 책임져야 할 것"이라고 민주평통 사무처에 대한 외통위원회의 결정 사항을 통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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