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세훈 원장의 거처는 국정원 산하 국가안보전략연구소가 입주해 있는 도곡동의 한 건물 위층을 개조해 마련됐다고 18일 <국민일보> 인터넷판과 19일 <한겨레>, <조선일보>등이 보도했다. 국정원 소유의 이 건물은 국가안보전략연구소가 12~18층을 쓰고 있으며 1~11층에는 일반 회사, 음식점 등이 입주해 있어 일반인의 출입이 자유롭다.
이 건물은 타워팰리스, 대림아크로빌 등 최고급 주상복합아파트와 오피스텔이 들어서 있는 호화단지에 자리 잡고 있다. 원 원장의 가족은 내곡동 관저보다 스포츠센터와 근린시설 접근이 손쉬운 이 건물을 선호했다는 말이 전해졌다.
특히 이 건물은 업무 시설 및 근린 생활 시설로 등록돼 있어 주거 시설을 지으려면 관할 구청에 건물 용도 변경 신고를 해야 하지만 국정원은 이 절차를 생략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정원은 지난해 7월경 극비리에 리모델링 공사를 진행했으며 공사 비용으로 10억 원이 넘는 예산을 책정하기도 했었다고 <국민일보>는 전했다.
국정원 측은 이에 대해 "관저가 아니고 안가"라면서 "집무용으로 일시 사용한 것"이라고 밝혔다. 국정원 관계자는 "기거한 것은 사실"이라며 "내곡동에 있는 공관이 비가 새고 낡아 수리하면서 잠간 거류한 적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경호 문제 때문에 원래 사저는 쓸 수 없었다"며 부득이한 선택이었다고 강조했다.
▲ 원세훈 국가정보원장. ⓒ뉴시스 |
진짜 문제는 한나라당의 '팀 킬'
이에 대해 정보기관의 수장이 보안 취약지를 거처로 정한 것이 과연 적절했느냐는 논란이 나오고 있다. 또 정치권을 통해 결국 언론에까지 보도된 것을 보면 결국 보안에 철저하지 않았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국정원 관계자는 "해당 언론에 '안가'임을 충분히 설명했으나 보도를 강행한 것이다. 이는 안가 등 시설을 공개할 수 없게 돼있는 법률 위반"이라면서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안가를 가지고 보도를 내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나 진짜 문제는 따로 있다. 보안 사항인 국정원장의 거처에 관한 정보가 흘러나온 곳이 여당인 한나라당 주변이라는 사실이다. 컴퓨터 게임에서 같은 편에 대한 공격을 의미하는 '팀 킬'(Team Kill)에 다름 아니다.
이 정보가 새어나온 것은 여권 내부에서 원 원장을 둘러싼 갈등이 깊어진 데서 비롯된 것으로 알려졌다. 여권에서 원 원장 지지파와 반대파가 다툼을 벌이고 있었고, 이 과정에서 관저 문제가 불거졌다는 것. 강남구청 등에 관저에 대한 투서와 제보가 잇따랐다는 보도도 있고, '도곡동 관저'에 대한 소문이 가장 먼저 나돈 것도 여권 쪽이었다.
여권 관계자들이 언론에 "국정원장이 왜 이렇게 외부에 노출되기 쉬운 장소로 거처를 옮겼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동선이 공개되지 말아야 할 국정원장이 이렇게 외부에 노출되기 쉬운 장소로 거처를 옮겼다는 건 큰 문제" 등의 말을 앞다퉈 전한 것도 여권 내의 '원세훈 반대파' 존재에 대한 심증을 굳힌다.
이에 대해 한 전직 외교안보 당국자는 "국정원장은 해외출장 일정도 공개하지 않는데 어디에 산다는 것이 공개된 것은 말이 안 된다"며 "정보기관 수장에 대한 보호도 필요한데, (여권에서 정보가 흘러나왔다는 것은) 정치적인 다툼 때문에 국가기밀을 누설한 것"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사안의 민감성 때문에 이름을 밝히기를 꺼린 이 전직 당국자는 국정원장이 거처를 원 외에 둔 일 자체에 대해서도 "엽기적인 일"이라면서 "신변보호라든가 기타 업무에 필요한 부분이 있기 때문에 관사를 두는 것인데, 직무에 대한 기본 이해가 없는 것"이라고 날을 세웠다.
국정원 측은 "(원인이) 어찌 됐든, 원장의 동선이 노출된 것에 대해 책임을 통감하고 자체적으로 보안 대책을 강구할 것"이라고 밝혔다. 국정원 관계자는 정보유출 경로 수사나 이에 대한 법적 대응 등 대처 방안을 묻는 질문에는 "검토중이다"라고만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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