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대 채권업체 핌코의 모하메드 엘에리언 CEO도 미국의 국가신용등급 하락 사태에 호들갑스러운 분석을 하는 전문가들과는 달리 차분한 진단을 내리는 진영에 속한다.
그는 미국의 신용등급이 강등된 다음날인 6일 영국의 <파이낸셜타임스(FT)>에 'downgrade heralds new era(신용등급 강등은 새로운 시대를 예고한다)'는 기고문을 통해 "미국의 신용등급 강등은 글로벌 시스템이 적응해야할 역사적 변화가 일어났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지적했다.
▲ 미국의 국가신용등급 강등 사태는 미국식 금융산업의 종말을 예고한다는 전망이 나왔다. 사진은 지난 5일 성조기가 걸린 뉴욕증권거래소. ⓒAP=연합 |
기고문에 따르면, 얼마전까지만 해도 미국의 신용등급이 '트리플 A'라는 최고의 신용등급을 상실한다는 가능성을 생각하기 힘들었다. '무위험 자산'과 '미국 국채'는 교환가능한 용어였으며, 이런 전제 위에 글로벌 금융시스템이 구축되어 왔다. 미국의 국채는 '트리플 A'라는 전제는 변수가 아니라 상수로 간주됐다. 현재 금융시장의 투자판단의 핵심이론인 CAPM(자본자산가격모델)이 뿌리채 흔들리게 됐다는 것이다.
이제 주말이 지나 금융시장이 재개되는 7일 이후 글로벌 금융시장은 변화된 현실과 마주하게 된다. 당장 리스크 계산과 담보물 평가 등 시장의 거래기준들이 달라진다.
나아가 엘에리언 CEO는 미국의 신용등급을 강등한 S&P가 '트리플 A' 그룹에 속한 최소한 한 개의 국가에 대해서 강등 조치를 내릴 가능성을 배제하기 힘들다고 경고했다. 만일 프랑스도 미국처럼 '트리플 A'에서 강등되는 사건이 벌어지면 유로존 부채위기 해결에 지지부진한 모습을 보이는 유럽은 큰 타격을 받을 것이다. 현재 S&P가 'AAA' 국가 신용등급을 매기고 있는 곳은 호주, 홍콩 등 총 18개국이다.
미국 중심의 '뉴노멀' 이행에 그칠 수도
보다 우려스러운 점은 미국의 신용등급 강등이 글로벌 금융시스템 전반에 초래할 충격이 어떨지 매우 불확실하리라는 점이다.
시장에서는 그동안 미국이 글로벌 금융시스템의 중심축으로서 제공해온 달러 기축통화와 국채라는 금융상품의 위상이 시간이 갈수록 취약해질 것이라는 우려가 크다. 이런 변화에 따라 1극 체제의 글로벌 시스템이 다극체제로 이동하는 과정에서 불안정한 양상이 가속화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당장 어떤 나라도 미국을 대체할 수 없다는 사실 때문에 즉각적인 충격이 제한될 것이라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이때문에 글로벌 시스템이 어느 정도로 반응을 할지 예상하기가 쉽지 않다.
엘에리언 CEO도 "미국이 AA+로 한 단계 강등된 것을 전제로 하는 이른바 '뉴 노멀'의 균형점 이동에 불과하는 상황이 전개될지, 아니면 보다 구조적인 변화가 불가피할 것인지"라고 판단을 유보했다.
"부채거품 일으킨 미국식 금융산업 쇠퇴 예고"
미국의 신용등급 강등이 가져올 긍정적인 영향을 기대할 수도 있다. 일각에서는 미국의 신용등급 강등은 지난 30여년간 미국이 주도해온 금융산업의 쇠퇴를 예고한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미국이 제조업을 희생하면서 집중해온 금융산업은 결국 세계적인 부채 거품을 일으키며 미국과 유럽에 부메랑으로 돌아오고 있다는 점에서 '제조업 없는 금융산업'의 허상과 위험성이 드러났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향후 미국이 제조업의 경쟁력 강화에 주력하는 새로운 10년이 시작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또한 미국의 신용등급 강등은 미국의 정책당국자들에게 경종을 울리는 사건이 될 수 있다. 미국의 경제적 영향력과 글로벌 위상이 취약해지고 있다는 명백한 신호 앞에서 보다 나은 정책결정과 단합된 정치력이 시급한 과제로 떠오르게 된다는 것이다.
물론 미국의 민주당과 공화당이 자기들의 말을 듣지 않아 신용등급이 강등되는 사태가 벌어졌다고 서로 책임 공방을 벌일 수도 있다. 이미 이런 작태가 빚어지고 있다.
이에 대해 엘에리언 CEO는 "미국과 글로벌 경제를 위해 양당은 상호 비방을 자제해야 할 것"이라면서 "국가신용등급 강등 사태를 미국인들이 비전을 공유하고 단결할 '스푸트니크 모멘트'로 활용해야 할 것"이라고 일침을 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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