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파이낸셜타임스(FT)>는 17일 "유럽은행감독청(EBA)이 유럽의 21개국 주요은행 91개에 대해 유럽의 재정위기가 악화될 경우를 가정한 재무건전성 평가를 했으나, 불합격 판정을 받은 은행이 불과 8개밖에 없다는 결과를 발표하자 신뢰성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고 전했다.
▲ 유럽 은행들에 대한 2차 스트레스 테스트 결과도 신뢰성 논란에 휩싸이면서 유럽 재정위기에 대한 우려를 불식시키지 못하고 있다. 유럽 재정위기 대책을 논의하는 회의에서 골머리가 아픈 듯 머리를 만지는 장-클로드 트리셰 유럽중앙은행(ECB) 총재의 모습이 유럽 재정위기를 상징하는 듯하다. ⓒAP=연합 |
EBA의 불합격 판정 기준은 핵심 자기자본비율(Core Tier 1) 최소 기준인 5% 미달이다. 5%에 미달해 불합격 판정을 받은 은행들은 방코 파스토르를 비롯한 스페인의 저축은행과 소형은행 5개, 그리고 나머지 3개는 그리스 국영 농업은행과 EFG 유로뱅크 은행, 오스트리아 폴크스방켄이다. 이들 은행은 오는 9월까지 자본확충 계획을 제출해야 한다.
문제는 핵심 자기자본비율이 5%에서 6% 사이를 나타내는 이른바 '턱걸이 합격' 은행들이 무려 20개나 되며, 이들 은행들에게는 내년 4월까지 자본확충 기간을 넉넉히 부여했다는 점이다. 심지어 그리스처럼 재정위기로 구제금융을 받는 아일랜드와 포르투갈 은행들도 모두 합격점을 받았다.
또한 이번 테스트에서 정작 관심을 모았던 프랑스와 독일 은행들은 모두 재무건전성이 양호하다는 판정을 받았다. 프랑스와 독일 은행들은 그리스와 스페인, 이탈리아 등 재정위기국의 국채를 가장 많이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지금은 재무건전성이 양호해도, 그리스 등의 사태가 악화되면 순식간에 부실화될 수 있다는 경고를 받아왔다.
물론 스트레스 테스트를 앞두고 은행들은 불합격 판정을 받지 않기 위해 노력을 했다. 지난해 12월말부터 올해 4월까지 5개월동안 100억 유로(약 15조원)의 추가 자본이 투입됐다. 불합격 판정을 받은 8개 은행의 자본 부족 규모도 합계 25억 유로(약 37.4조원)에 그쳤다.
하지만 이번 스트레스 테스트 자체가 그리스 국채의 상각률 등에 대한 평가를 느슨하게 잡아서, 시장에 대한 충격을 피하려는 데 더 신경을 쓴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받고 있다.
예를 들어 시장에서는 사실상 부도 상태인 그리스 국채에 대해 액면가의 최대 50% 상각이 예상된다는 시장의 계산과 달리 상각률은 상당히 적게 잡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1년전 테스트 때도 아일랜드 구제금융 사태로 망신살
실제로 1년전 발표된 1차 스트레스 테스트에서는 91개 은행 중 불합격 판정을 받은 은행이 7곳에 그쳤고, 특히 당시 재정위기가 고조된 아일랜드에서 테스트 대상인 아일랜드 은행 2곳이 모두 합격했으나 불과 4개월 뒤 아일랜드는 은행권 부실로 구제금융 대상국으로 전락했다. 그 결과 "EBA는 신뢰성이 없는 사설 기관처럼 스트레스 테스트를 실시하고 있다"는 비판에 휩싸이는 등 시장의 불신을 증폭시켰다.
이에 따라 시장에서는 "최근 유럽의 재정위기가 유로존 4위인 스페인에 이어, 중심국이라고 할 수 있는 이탈리아까지 번지는 상황에서 이번 2차 스트레스 테스트도 시장의 우려를 불식시키는 데는 한계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는 지적이 우세하다.
유로존 국가들과 새롭게 재정위기 문제가 부각된 이탈리아 등에서는 사태 수습을 위해 보다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기는 하다. 유로존에서 이탈리아 등 부실 회원국들의 국채를 가장 많이 갖고 있는 프랑스는 이달초 이탈리아 국채 폭락 사태 이후 "긴급 정상회의가 꼭 필요하다"면서 총대를 매고 나서 진통 끝에 21일로 회의 날짜를 잡았다.
<FT>에 따르면 헤르만 반롬푀이 유럽연합(EU) 정상회의 상임의장은 이탈리아 10년 만기 국채 금리가 5% 중반까지 치속은 지난 11일 EU 긴급정상 회의를 15일에 갖자고 제안했으나 부담을 느낀 독일 등의 소극적 대응으로 일주일 가량 늦춰진 것이다.
정치권 분열이 심한 이탈리아도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총리가 "조국이 전쟁 직전의 상황에 몰렸다"면서 초당적인 신속한 대응을 호소하면서 이탈리아 상하원은 무려 480억 유로(약 72조원)의 재정긴축안을 불과 일주일도 안돼 통과시켰다. 14일 상원, 15일 하원이 재정긴축안을 곱바로 가결 처리한 것이다.
이탈리아 의회가 통과시킨 긴축안은 2014년까지 재정적자 규모를 국내총생산(GDP) 대비 0.2% 수준으로 감축하자는 것으로 상원에서는 찬성 161대 반대 135, 하원에서는 314대 반대 280으로 가결됐다.
긴축안이 이처럼 신속하게 통과되기까지 베를루스코니도 "긴축안을 두고 논쟁을 벌일 시간이 없다. 나에 대한 신임투표로 갈음해달라"고 호소하는 승부수를 띠운 것도 한몫을 했다.
이에 따라 하원은 긴축안 표결에 앞서 베를스코니 총리에 대한 신임 투표를 실시했다. 하원은 상원보다 연립여당의 의석이 적었지만 신임안은 316대 284로 가결됐다.
S&P "90일내 미국 신용등급 강등될 확률 절반"
반면, 부채한도 상한 조정을 놓고 민주당과 공화당의 반목이 좀처럼 해소되지 않고 있는 미국에 대해서는 국제신용평가기관들이 잇따라 강력한 경고음을 내고 있다.
현재 미국의 국가부채는 의회 승인으로 정한 한도를 넘어 재무부가 비상수단으로 한도를 넘은 국채 상환을 처리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것도 오는 8월 2일까지 한도 증액 협상이 타결되지 않으면 곧바로 '미국의 디폴트'라는 사상 초유의 사태가 현실화될 것이라는 우려가 시장에 팽배하다.
이에 관련,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는 지난 15일 "부채 한도 증액 협상이 지지부진하면 이달 중 미국의 국가신용등급을 하향조정할 수 있다"면서 "여야가 한도 증액에 합의해도 그 방안이 임시방편적인 것으로 판단되도 마찬가지"라고 밝혔다. 미국의 국가부채 문제가 기회만 되면 정쟁의 수단이 되는 상황을 더 이상 묵과하지 않겠다는 경고다.
또한 S&P는 또 향후 10년간 미국 재정적자를 4조 달러를 줄이겠다는 오바마 대통령의 공약에 대해 합의하지 못할 경우에도 등급하락이 있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현재 공화당은 6조 달러가 넘는 감축을 해야 한다며 공세를 펴고 있다.
특히 S&P는 미국의 국가신용등급을 하향 조정이 가능한 '부정적 관찰대상'(credit watch-negative)에 포함시키면서 현재 최상위등급 트리플 A(AAA)인 미국의 신용등급이 향후 90일 안에 AA 수준(AA Category)으로 강등될 가능성이 절반 정도라고 밝혔다.
이에 앞서 무디스도 지난 13일 미국 정부의 디폴트 가능성을 거론하면서 미국을 '부정적 관찰대상'에 포함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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