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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값 등록금, 미국의 길이냐 유럽의 길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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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값 등록금, 미국의 길이냐 유럽의 길이냐

[미래연 주간논평] 교육을 받을 권리를 말한다

배고플 때 먹지 못하고, 아플 때 치료받지 못하는 일 못지않게 서러운 것이 돈이 없어 배우지 못하는 것이다. 불과 몇 십 년 전만해도 얼마 되지 않는 월사금이 없어 학교를 다니지 못하고 배움을 포기해야 했던 시절이 있었다. 그것이 옛 일만이 아니라는 걸 반값 등록금 촛불 집회가 보여주고 있다.

배고픈 사람을 먹이는 일, 아픈 사람을 치료하는 일과 마찬가지로 배우고자 하는 사람을 가르치는 일은 국가의 가장 기본적인 책무이다. 배곯지 않고 치료받을 권리가 있듯, 인간 생활에 필요한 기본 교육은 무상으로 받을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헌법에도 "의무교육은 무상으로 한다."(헌법 제31조제3항) 라고 명시되어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고등교육인 대학교육은 어떤가? 대학교육을 받을 권리는 개인의 선택과 능력, 수요와 공급에 따른 시장원리에 맡겨져야 할까?

교육은 공적 문제이고, 공공서비스이다. 교육은 개인의 자아를 실현하고, 민주주의 국가의 토대를 구축하며, 나아가 국가사회 발전의 원동력이 되기 때문이다. 국가는 이러한 교육의 공공성을 실현할 의무를 진다.

헌법 제31조가 교육을 받을 권리를 보장하고, 무상 의무교육을 보장하며, 교육제도의 기본적인 사항을 법률로 정하도록 하고 있는 것은 모두 교육의 공공성의 표현이고, 이에 대한 국가의 책무를 밝힌 것이다. 이를 한마디로 공교육체계라 하며, 여기에는 사립대학과 같은 사립학교에 의한 교육도 포함된다.

그러나 한편으로 교육은 자주성을 그 생명으로 하며, 교육의 본질 자체가 외부적·획일적인 통제와 어울리지 않는다. 헌법 제31조 제4항은 "교육의 자주성·전문성·정치적 중립성 및 대학의 자율성"을 보장함으로써 이를 인정하고 있다.

이와 같이 교육의 공공성과 자주성은 긴장과 보완의 관계에 있다. 공공성 실현을 위한 국가적 규제는 교육의 자주성을 제약할 수 있지만, 교육의 자주성이 실현되지 않고서는 교육 본래의 목적을 달성할 수 없다.

교육제도를 구체적으로 설계하고 형성함에 있어 교육의 공공성과 자주성 간의 관계를 어떻게 조정할지, 어느 쪽에 중점을 둘지는 나라마다 그 역사적·사회적 상황에 따라 다르다. 미국과 같이 자주성이 강조되는 나라가 있는가 하면, 유럽에서는 공공성의 전통이 강하다. 우리나라는 어떤가? 바로 이 질문을 던지고 있는 것이 반값 등록금 촛불 집회이다.

반값 등록금 이슈는 부실교육, 사학의 방만한 재정 운영 등 대학교육의 여러 문제들과 관련되어 제기되었지만, 등록금이 주는 재정적 부담이라는 가장 직접적인 문제에 집중하여 보자. 등록금을 낼 수 없어 대학진학을 포기해야 하거나, 설사 진학하더라도 비싼 등록금으로 인해 아르바이트, 휴학하느라 제대로 공부 할 수 없는 제도나 현실이 과연 정당화될 수 있는가?

오늘날 지식정보사회에서 대학은 단순히 진리를 탐구하고 학문을 연마하는 아카데미의 전당이 아니다. 대학진학률이 80%를 넘는 대중교육 시대에 대학은 직업교육의 과정으로 이해되고 있다. 철저히 학벌위주로 편제된 우리 사회에서 대학교육을 받았는지, 어떤 대학을 나왔는지는 부, 권력, 명예의 배분과 직결될 수 있다.

정치철학자 애덤 스위프트(Adam Swift)는 이러한 측면에서 교육을 지위재(地位財)라고 하였다.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여 개인이 어느 정도의 교육을 받았는지에 따라 직업시장에서 개인의 지위가 서열화 된다는 것이다. 그는 교육이 이런 지위재적 측면을 갖는 한 사회적 약자 계층이 그 재화를 가능한 한 많이 갖도록 하기 위해 평등을 옹호해야 한다고 하였다.

헌법 제31조제1항은 "모든 국민은 능력에 따라 균등하게 교육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고 규정하고 있다. "능력에 따라 균등하게"의 '능력'이 부모의 경제적 능력이 아니라면 얼마 전에 고위험 아르바이트를 하느라 숨진 대학생의 경우처럼 부모의 경제적 능력에 따라 대학교육의 기회를 차단당하지 않을 정책을 마련하여 시행할 의무가 국가에게 있다. 이것이 위 헌법조항의 살아있는 의미이다. 고등교육 기회의 편중, 이로 인한 부와 권력의 세습의 고착화를 막을 의무가 정부에게 있다는 것이다.

물론 국가의 재정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헌법규범의 현실적 실현이 어려울 수도 있다. 특히 사립대학의 비중이 높은 우리 현실에서는 반값등록금이 간단한 문제는 아니다. 그러나 많은 국민들이 반대하는 반 생명, 반 환경 정책인 4대강 사업에 벌써 수십조의 예산이 투입되었는데, 반값 등록금은 그 몇 분의 1만으로도 가능하다고 한다.

독일, 프랑스와 같이 무상 고등교육의 전통이 강한 나라들도 명목적이나마 등록금을 받는 쪽으로 변화하고 있는 마당에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냐는 얘기가 나올 법도 하다. 그러나 그들 나라가 무상 고등교육으로 오래 기울었던 정책을 유상 쪽으로 조금 틀기 시작하였다면, 유상 고등교육으로 오래 기울었던 우리의 정책을 무상 쪽으로 조금 틀어 보자는 주장이 그리 뚱딴지같은 소리만은 아닐 것이다. OECD 국가 중 우리와 소득 수준이 유사한 나라들과 비교할 때 우리나라의 고등 교육비 가계 부담률이 단연 높다고 한다. 그러니 학생과 학부모들이 반값 등록금을 외치는 것은 자연스런 요구가 아니겠는가.

반값 등록금은 어떻든 국민의 세금으로 실현된다. 그런데 반값 등록금이 절실히 필요한 서민에게 또 그 부담이 돌아온다면 반값 등록금의 효과는 반감될 것이다. 그러니 논란 중인 부자감세나 법인세 인하를 철회하기만 해도 반값 등록금은 실현할 수 있다. 이렇듯 반값 등록금이 4대강, 부자감세 문제와도 연관되니, 결국 문제의 근본원인은 역시 국민 개개인의 의식으로 귀착되는 셈이다. "20대 대학생의 투표율이 50%면 반값 등록금이 실현되고, 투표율이 100%면 무상교육이 실현 된다"는 한 개그맨의 말이 우스개로만 들리지 않는다.

* 원제 : 반값 등록금과 교육을 받을 권리 (☞ 원문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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