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김양건 대남담당비서의 담화를 통해 내세운 개성공단 가동 중단의 이유는 이렇다. '한없는 민족애와 동포애에 기초한 대용단'으로 개성공단을 마련해줬음에도 불구하고, 남한이 '개성공업지구까지 대결의 마당으로 만들고 북침전쟁도발의 구실을 찾아보려고 온갖 책동을 다하고' 있기 때문이다.
▲ 북한은 김양건 대남담당비서의 담화를 통해 개성공단 가동 잠정중단과 북한 근로자 전원 철수 방침을 발표했다. ⓒ조선중앙TV 캡처. |
하지만, 이러한 공식 이유 외에도 북한의 담화 곳곳에는 상당한 불쾌감이 묻어 있다.
먼저, 김정은 제1비서에 대한 부분이다. 북한은 '남조선의 대결광신자들이 돈줄이니 억류니 인질이니 하면서 우리(북한)의 존엄을 모독하는 참을 수 없는 악담을 계속 줴치고(떠벌이고) 있'다고 밝혔다. 자신들의 최고존엄인 김정은 비서가 돈 때문에 휘둘리는 인물로 묘사됐다는 불만이다.
북한은 또, '북한이 외화수입원은 포기하지 못할 것'이라는 남한의 관측에 대해 불쾌감을 표시했다. '남조선의 보수세력은 ... (북한이) 공업지구만은 절대로 깨지 못할 것이라고 하고 있'는데, 이는 웃기는 발상이라는 것이다. 북한은 남한이 예상하는 존재가 아니며 그 어떤 것도 할 수 있다는 것을 북한은 이번 조치를 통해 보여주려는 것으로 보인다. 마치, '어때, 놀랐지?'라는 말을 하고 있는 듯도 하다.
개성공단 폐쇄는 北에도 손해인데...
개성공단은 북한으로서는 10년 가까이 외국기업을 유치한 성공적인 사례이다. 황금평 등을 새로 개발하려 하고 있지만, 외국기업 유치가 생각같이 되고 있지 않은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만큼, 개성공단은 향후 북한이 외국기업을 유치해 경제회생을 도모하는 데 있어 중요한 모델이 될 수밖에 없다. 북한이 당장 입게 될 외화 손실이나 5만여 북한 근로자들의 일자리보다 훨씬 더 큰 경제적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북한은 이러한 실리보다 최고존엄의 보호라는 정치적 이데올로기에 무게를 두려는 것으로 보인다. 인민생활 향상이라는 모토를 앞세우고 경제통이라는 박봉주를 다시 총리에 기용했지만, 실질적인 정책은 경제회생과는 반대쪽으로 가고 있는 것이다. 이는 아마도 김정은 체제 등장 이후 권부 재편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주변의 과당 충성경쟁과도 관련이 있어 보인다.
국가의 행동은 감정적 결정과는 달라야
북한에 의한 긴장 고조 이후, 최근 남쪽에서 거론된 개성공단 관련 언급들이 북한으로서는 기분이 나빴을 수 있다. 북한 근로자 5만여 명의 일자리이고 중요한 외화수입원이라고는 하나, 이 때문에 북한이 개성공단을 어쩌지 못하리라는 직설적인 언급들은 북한의 자존심을 자극하는 행위였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거기에 직접적인 반응을 보이는 것은 국가가 할 행동은 아니다. 국가는 고도로 체계화된 이성적인 집단인 만큼, 감정과 실리를 구분해 움직일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다소 자해를 하는 듯한 방법으로 남한을 압박하고 있는 북한, 최근 북한은 보면 냉철한 판단 하에 정책결정이 이뤄지고 있는지에 대한 의문을 지울 수 없다. 김정은 제1비서는 과연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일까?
* 북한학 박사인 안정식 기자는 SBS에서 한반도 문제를 취재, 보도하고 있으며 북한포커스(www.e-nkfocus.co.kr) 홈페이지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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