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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 유권자들, '쿠데타 지지' 기득권의 뺨을 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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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 유권자들, '쿠데타 지지' 기득권의 뺨을 때렸다"

탁신 정당 총선 압승…선거 결과 또 무시할까?

아시아권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에 많은 시사점을 던져주고 있는 태국이 다시 탁신을 선택했다. 탁신 친나왓 전 총리가 실질적인 지도자로 있는 푸어타이당이 3일 총선에서 압승을 거두면서 태국의 민주주의는 다시 한 번 시험대에 올랐다.

태국 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푸어타이당이 과반수인 263석을 차지한 것으로 잠정 집계됐으며 투표율은 74%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아피싯 웨차치와 현 총리가 이끄는 집권 민주당은 500석 중 161석을 차지하는데 그쳐 2년 8개월여 만에 다시 야당이 됐다. 군소정당인 붐자이타이당과 찻타이파타나당, 찻 파나타 푸아 판딘당이 각각 34석과 29석, 10석을 얻었다.

민주적 선거 결과마저 무시했던 기득권 세력

기업가 출신인 탁신은 2001년과 2005년 총선에서 연거푸 승리하며 두 차례 총리를 지냈다. 그러나 왕실과 군 수뇌부, 엘리트 등 기득권층은 급진적 개혁을 추진하고 왕실의 권위를 부정하며 기존 질서를 뿌리째 흔드는 탁신을 끊임없이 공격했다. 결국 군부는 2006년 9월 군부 쿠데타로 그를 축출했다.

그러나 탁신에게는 도시 빈민층과 농민들이 있었다. 탁신은 총리 재임 시절 신자유주의적인 정책을 도입하긴 했지만 빈민·농민들에게 무상 의료, 부채 탕감, 현금 지급 등 인기영합적인 정책을 추진하면서 그들을 자신의 편으로 묶어 놓았다. 쿠데타 후 해외 망명중인 탁신이 원격으로 만든 신당 '국민의 힘'(PPP)이 2007년 총선에서도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은 농민·빈민들의 탄탄한 지지 덕분이었다.

그러나 기득권층은 2008년 12월 헌재를 동원해 '국민의 힘'마저 해체시켰고, 정치 공작을 통해 민주당을 다수당으로 만들며 아피싯 웨차치와를 총리로 세웠다. 또한 태국 사법부는 부패 혐의로 기소된 탁신에 대한 궐석재판에서 재산 몰수와 징역 2년형을 선고했다. 그 과정에서 친(親) 탁신 세력인 '레드 셔츠'와 반(反) 탁신의 '옐로 셔츠'는 수차례 소요를 일으켰고, 태국의 정정은 바람 잘 날이 없었다.

이번 선거는 작년 5월 레드 셔츠의 시위 기세에 밀린 아피싯 총리가 조기 총선을 약속하며 치러지게 됐다. 여기서 태국 국민들은 또 다시 탁신을 선택한 것이다. 탁신의 여동생 잉락은 선거 한 달 반 전에 정계에 입문, 두바이에 머물고 있는 오빠를 대신해 총리 후보로 나서 승리를 거뒀다.

<뉴욕타임스>는 이날 선거 결과는 엘리트 기득권층에 대한 도전으로 빈민들에게 보다 많은 힘을 실어 줄 것이라고 분석했다. 국립 출랄롱코른 대학의 안보·국제연구소장 티티넌 퐁수디락은 "2006년 쿠데타 이후 기득권측이 해왔던 일에 대해 국민들이 기득권층의 뺨을 때린 것"이라며 "기득권층은 공존하는 법을 배워야 하는 새로운 태국에 살고 있다"고 말했다.

논쟁의 중심 '탁신'

탁신은 국내에 없었지만 이번 총선은 2007년 선거와 마찬가지로 탁신에 대한 국민투표나 마찬가지였다. 푸어타이당은 "탁신이 생각하고 푸어타이가 행동한다"는 구호를 내걸었다. 반면 아피싯 총리는 마지막 유세에서 "태국에서 탁신이라는 독을 제거할 최고의 기회"라며 지지를 호소했다.

푸어타이당이 승리하면서 탁신의 귀국과 사면 문제는 정국의 최대 쟁점이 될 전망이다. 탁신은 올 12월 딸의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귀국할 계획이라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실제로 그가 귀국을 시도한다면 반탁신 계열은 또다시 소요를 일으킬 가능성이 높다. 푸어타이당이 승리할 경우 군부가 또다시 쿠데타를 일으킬 것이라는 루머도 최근 돌았다.

이같은 사정을 잘 알고 있는 탁신은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그는 푸어타이당의 승리 후 기자회견에서 "귀국을 희망하지만 적절한 시기를 기다릴 것"이라며 "태국 사회에 소요 사태가 일어나길 원지 않기 때문에 서둘러 귀국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군부의 쿠데타 가능성을 의식한 듯 "모든 정당은 선거 결과에 승복하고 국민의 뜻을 따라야 한다"고 강조했다.

푸어타이당 역시 탁신 문제에 조심스러운 행보를 보이고 있다. 푸어타이당의 일부 관계자들은 자신들이 집권하면 사면을 단행할 것이라면서 탁신의 귀국을 추진하겠다는 입장을 보였다. 그러나 당에서는 공식적으로 사면 얘기를 자제하는 분위기였다. 군부와의 관계 설정이 최대의 과제인 상황에서 군부를 자극하지 않겠다는 의도로 풀이됐다.

▲ 탁신의 여동생으로 태국 최초의 여성 총리가 된 잉락 친나왓 ⓒAP=연합뉴스

"신·구 질서 화해에 20~30년 걸려"

정가의 신데렐라로 떠오른 잉락 친나왓은 이날 오후 기자회견을 열어 총선 승리를 공식 선언했다. 그는 "국민에게 봉사할 기회를 갖게 됐다"며 "우리는 선거 유세 기간 약속한 모든 공약을 실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잉락은 또 군소 정당들과 연정 구성을 논의하겠다고 밝혔다. 푸어타이당이 단독 정부를 수립할 수도 있지만 연정을 통해 국민 통합에 힘쓰고 있다는 제스처를 보이겠다는 의도로 보인다.

반면 아피싯 총리는 선거 종료 직후 "민주당은 야당이 될 준비가 돼 있다"고 총선 패배를 시인하면서 "태국의 통합과 국민 화합을 희망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과거 민주적인 선거 결과마저 무시해왔던 왕실, 군부, 엘리트 등 기득권 세력이 이번에도 쉽게 물러나지만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티티넌 퐁수디락 소장은 <뉴욕타임스>에 "우리는 길게 봐야 한다"며 "태국의 정치가 성숙하기 위해서는 2~3년이 아니라 20~30년의 세월이 필요하다. 과거 질서와 새 질서가 화해하려면 수많은 시간이 걸린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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