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미래발전연구원(원장 김용익 서울대 의대 교수)은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이 '미래 한국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 소통과 연대, 대안과 희망을 만들겠다'는 취지로 퇴임 후 설립한 싱크탱크입니다.(☞홈페이지)
미래연 주간논평은 김수현 세종대 교수(부동산학. 前 환경부 차관), 김하열 고려대 교수(법학), 전병유 한신대 교수(경제학), 박동천 전북대 교수(정치학), 김근식 경남대 교수(정치학), 박상철 한국산업기술대 교수, 이옥 덕성여대 교수(아동학) 등 7명의 전문가가 필진으로 참여하고 있습니다. <편집자>
보육료 자율화로 아이들까지 멍들게 하려는가
우리나라 보육시설은 설립주체에 따라 법적으로 여섯 유형이 있지만, 통상 국공립(공공)보육시설과 민간보육시설로 분류된다. 그러나 이제 우리나라 어린이집은 '공공어린이집', '공공형어린이집', '자율형어린이집', '그 외의 민간어린이집'으로 나누어질 것 같다. 금년 7월부터 운영될 "공공형・자율형 어린이집" 시범사업 때문이다. 그렇잖아도 '서울형어린이집'이니 '부산 공보육어린이집'이니 해서 보육시설 유형을 복잡하게 느꼈던 국민들은 더욱 혼란스럽게 되었다.
보건복지부의 "공공형・자율형 어린이집 시범사업 안내" 문건에 의하면, 공공형어린이집은 '공공 보육인프라로서 기능하는 새로운 유형의 어린이집'으로, 자율형어린이집은 '부모의 수요에 맞추어 특성화한 보육서비스를 제공하도록 보육비용 상한과 보육과정 운영에 자율성을 부여하는 새로운 유형의 어린이집'으로 정의되어 있다. 그리고 이 문건은 마치 '공공형' 어린이집 시범사업으로 공공성이 제고되고, '자율형' 어린이집 시범사업으로 수요자의 다양한 욕구가 충족될 것처럼 홍보하고 있다.
정부는 '공공형어린이집'이 새로운 형태의 어린이집이라고 설명하지만 시범사업의 '공공형어린이집'은 새로운 형태의 어린이집이 아니다. 정확히 말해 정부 재정이 일부 지원되는 순수 민간보육시설일 뿐이다. '공공형어린이집' 사업은 향후 1년간 900개의 민간어린이집을 선정하여 어린이집 규모별로 예산을 일부 지원하는 사업으로, 서울시가 2009년부터 시행해온 '서울형어린이집'이나 이후 시행된 부산의 '공보육어린이집'과 기본적으로 같은 개념의 사업이다. 따라서 굳이 시범사업을 할 이유가 전혀 없다. 그간 진행되어온 민간보육시설에 대한 지원 방식을 검토하여 예산을 지원하면 될 일이다.
예컨대, 인건비 등을 지원하는 '서울형어린이집' 사업이나 아동 수별로 보육비용 일부를 지원해온 영아기본보조금 사업의 효과를 평가한 후, 일정 수준의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춘 민간어린이집에 지원을 확대해 가면 된다.
새로운 형태도 아닌 민간어린이집에 '공공형어린이집'이라는 이름을 붙이는 시범사업의 이유를, '공공형'이라는 명칭이 공공(국공립)보육시설과 혼용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라고 보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정부가 그것을 기대하는 것이라면 이 시범사업은 정말 하책이다. 공공보육시설 확대정책의 포기를 덮으려는 솔직하지 못한 정책이다.
▲ ⓒ뉴시스 |
'공공형어린이집'이라는 명칭도 문제이고 시범사업이 필요하지 않은 민간보육시설 지원을 시범사업으로 추진하는 것도 문제지만, 이번 시범사업의 가장 심각한 문제는 보육료 자율화 정책에 다름 아닌 '자율형어린이집' 사업을 끼워 넣은 것이다. '자율형어린이집' 사업은 시범사업이 아니다. 안내 문건에는 시범사업인데 사업 기한이 없으니 한번 '자율형'으로 지정되면 계속 가격자율화시설이 된다. 민간보육시설 가운데 보육료 상한선을 준수하지 않아도 되는 '자율형어린이집'을 허용함으로써 정부는 사실상 보육료 자율화 정책을 도입한 것이다.
그동안 국공립과 민간어린이집의 보육료 규제는 보육과 유아교육 등 육아시설 전반의 이용료를 안정시키는 기능을 해왔다. 보육료 자율시설의 허용은 결국 육아시설 이용가격을 끌어 올릴 것이다. 보육료 자율화 정책 시행 후, 부모의 보육료 부담 증가로 재정지원 효과가 무색해졌다는 호주의 사례는 거의 상식에 가깝다. 정부는 이번 시범사업에서 제한적으로 자율화시설을 허용할 것이라고 하지만 일단 가격자율화 시설을 허용해 놓고 향후 그 시설 수를 제한하는 것이 과연 가능할 지 의문이다. 현 정부가 그동안 유지했던 보육료 상한제를 허물고 가격자율화 정책을 지금 시작하려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다. 요즈음은 대학교육에서도 등록금 상한제를 거론하고 있지 않은가.
정부가 새롭게 도입하는 보육정책사업은 서비스 접근성 제고와 보육 서비스의 질의 향상, 그리고 서비스 이용 부담을 경감시키는 성과를 가져오는 것이어야 한다. 아울러 그것이 재정지원 사업이라면 이용 아동의 형평성 제고를 고려한 것이어야 한다. '공공형·자율형 어린이집' 시범사업은 이 가운데 어떤 성과도 기대할 수 없는 사업이다.
3만 개 가까운 민간보육시설 중 '공공형어린이집'으로 선정될 900개 시설을 이용하는 영유아의 보육료는 일부 경감될지 모르지만 시범사업 선정에서 제외된 대다수 어린이집을 이용하는 아동의 비형평성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아동 한 명당 투입하는 보육비용 제고 없이 보육료 일부 지원으로 서비스 질이 제고될 가능성도 없다. 더구나 '자율형어린이집'을 지정하는 이번 정책은 부모의 보육료 부담 경감과 형평성 제고, 접근성 제고와는 전혀 관련 없는, 오히려 역행하는 정책이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공공형·자율형 시범사업'을 통해 정부가 의도한 것은 아닐지라도 결과적으로 이용 어린이집에 따라 아동들이 분류되고 차별화된다는 점이다. 이용 시설별 보육료와 재정지원 수준도 다르고, 나아가 보육과정도 다를 수 있기 때문에 아이들은 부모의 형편과 선택에 따라 차등화 될 것이다. 보편적 보육 등 사회통합 정책이 절실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그 반대의 정책을 추진하고 있는 격이다.
정부는 이제라도 어린이집 이용자를 호도하는 '공공형어린이집' 명칭 사용과, 보육료 인상을 가져올 것이 뻔한 '자율형어린이집' 지정사업을 철회해야 할 것이다. 어떤 보육시설을 이용하더라도 영유아에게 형평성 있는 보육료 지원 정책을 추진하고, 한편으로는 명실상부한 공공보육인프라 확충에 나서야 한다. 정책수요자 모두를 혼란시키는 불필요한 시범사업에 집중할 것이 아니라, 보육료 상한제 유지와 서비스 질을 높일 수 있는 적정 비용의 산정, 그리고 보육료 지원 재정 확충에 매진해야 할 것이다.
* 원제 : 이해할 수 없는 공공형·자율형 어린이집 시범사업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