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에 참전한 국군포로의 딸과 외손 등 일가족 3명이 중국 베이징(北京) 주재 한국 총영사관에서 2년째 국내 입국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진정이 국가인권위원회에 접수됐다. 탈북자의 조기 입국을 요구하는 인귄위 진정은 이번이 처음이다.
28일 <조선일보>에 따르면, 지난 2009년 5월 탈북에 성공해 중국으로 넘어온 백영옥(46) 씨와 그의 아들딸이 베이징 총영사관에서 오도가도 못하는 신세가 됐다며 백 씨의 언니 영숙(54) 씨가 27일 인권위에 진정을 냈다. 영숙 씨는 2002년 탈북해 2004년 한국에 입국했으며 당시 국군포로인 아버지 고(故) 백종규 씨의 유골을 모셔와 화제가 됐다.
인권위에 진정을 낸 영숙 씨는 "국방부로부터 영사관이 책임지고 한국에 입국시켜 준다는 말을 들었는데, 2년 넘게 창살 없는 감옥에 가두어 두고 있다"며 "차라리 돈을 주고 브로커를 통했더라면 벌써 입국해 잘살고 있을 것"이라고 답답한 심정을 토로했다.
백 씨 등 3명은 국방부 관계자의 "브로커를 통하지 말고 영사관에 들어와서 절차를 밟으라고 하라. 2~3개월이면 한국행이 성사될 것이다"라는 장담을 믿고 베이징 총영사관을 찾았지만 발이 묶이게 된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는 중국 탓을 하고 있다. <조선> 보도에 따르면 국방부 관계자는 "국군 포로 가족이어서 영사관을 통해 중국 정부와 협의해 안전하게 입국시키려 했으나 중국 정부가 협의를 거부하고 있어 늦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같은 상황은 이미 예견된 것이나 다름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백 씨 가족이 탈북 이후 영사관을 찾은 2009년 6월은 두 달 전 북한이 장거리 로켓을 발사하고, 한달 전에는 2차 핵실험을 감행하면서 한반도 정세가 요동쳤던 시기다. 바로 다음달인 7월 중국 지도부는 외사영도소조를 소집해 대북정책 기조를 포용 쪽으로 굳히는 결정을 내린 것으로 전해졌다.
북한을 끌어안으려 하고 있는 중국 정부로서는 아무리 '로우 키 외교'(조용한 외교)를 통해서라고 한들 탈북자 입국에 협조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는 것이다. 더구나 국군포로의 딸이라면 한국 언론에서 대대적으로 보도할 것이고 중국의 입장은 더욱 난처해질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중국 정부는 탈북자가 중국 국내법과 국제법상 불법입국자에 해당한다는 점을 들어 원칙으로는 북한으로 재송환한다는 방침이다. 그러나 중국 내 타국 외교관저에 들어간 탈북자에 대해서는 인도주의 원칙에 입각해 희망하는 국가로 갈 수 있도록 사실상 묵인해 왔다.
그나마 한중관계가 좋았다면 일말의 기대라도 가져볼 수 있었겠으나,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한국이 한미동맹 중심의 외교를 펼치면서 중국과의 관계는 눈에 띄게 불편해졌다. 남북관계가 냉각된 것 또한 한중관계에 영향을 미친 요인이라고 보면 결국 백 씨 가족의 사연은 경색된 남북관계와 한중관계로 인해 빚어진 것이라는 관측이다. 한편에서는 이명박 정부의 외교적 무능을 탓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이명박 정부는 지난 4월 서해상 북방한계선(NLL)을 넘어 표류해온 후 귀순한 북한 주민들의 송환을 북측이 요구한데 대해서도 국군포로와 납북자 문제를 연계시켜 제기했다. 이처럼 기회가 있을 때마다 목소리를 높이기는 했지만 백 씨의 사례에서 보듯 현실적으로는 뾰족한 수를 내지 못했다.
남북 당국이 국군포로 및 납북자 문제를 대화 의제로 합의해 논의한 것은 노무현 정부 시절인 지난 2007년 11월 제9차 적십자 회담이 마지막이다. 2009년 국정감사 당시 현인택 통일부 장관은 경제적인 대가를 제공하고라도 국군포로‧납북자를 데려오겠다며 서독의 '프라이카우프'('자유를 산다'는 뜻의 독일어) 방식을 적극 검토하겠다고 했으나 이후 별다른 움직임은 감지되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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