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재정 교수는 이날 인천 송도에서 열린 6.15 공동선언 11주년 기념 국제 심포지엄에서 "(한국은) 핵무기 비확산 관점에서는 '동맹국'인 미국이 추진하던 핵심적 비확산 정책에 심각한 장애를 초래한 동시에, 지정학적인 면에서는 한국의 '전략적 동반자'인 중국의 정책 방향을 남쪽에서 북쪽으로 전환시켰다"면서 이같이 말했다.
그러면서 서 교수는 "이명박 정부의 정체성은 동맹국(미)과 전략적 파트너(중) 사이에 낀 '새우'라기 보다는, 핵무기 비확산에 있어서는 미국의 발목을 잡고 동북아시아 지정학에 있어서는 중국의 발목을 걸어 상황을 모두 악화시킨 '문제아'에 가깝다"고 비판했다.
'신앙에 기반한 현실주의'
서 교수는 '신앙에 기반한 현실주의'란 첫째, 북한 체제가 있는 한 비핵화와 지정학적인 문제들은 해결될 수 없다는 것과 둘째, 가장 확실한 해결책은 북한을 힘으로 압도하는 방법 밖에 없다는 인식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를 가능케 한 요인으로 △잘못된 현실주의 △종교적 사고 △국내정치에 대한 고려를 꼽았다. '잘못된 현실주의'란 유럽에서 냉전이 종식된 것이 소련이 미국과의 권력경쟁에서 뒤떨어졌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거나, 소련이 미국과의 군비 경쟁에서 뒤쳐지지 않기 위해 자원을 모두 탕진해서 무너져 가던 경제를 더 악화시켰기 때문이라는 잘못된 분석을 그대로 신뢰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 결과 "힘이라는 요소가 북한을 향한 정책의 기본이 되었다"는 것이다.
'종교적 사고'에 대해 그는 "세상은 선과 악의 끊임없는 경쟁이라는 사상을 바탕으로 한 마니교를 믿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그는 "이 집단은 북한이 가장 신이 존재하지 않는 나라고 '아시아의 예루살렘'을 점령하고 있는 사악한 정권으로부터 구제해야 한다고 믿고 있다"고 비판했다.
또 그는 대북 강경책이 국내정치에서의 지지를 얻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는 판단 또한 영향을 미쳤다며, 강경책에 호의적인 사람들이 유권자의 1/3 이상을 차지하고 언론과 영향력 있는 기관들을 장악하고 있다는 조건에서 기인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2007년 대선과 2008년 총선에서 한나라당의 압도적 승리는 '신앙에 기반한 현실주의'가 대중들에게 인정받았다고 확신하게 했고, 이명박 정부의 국가안보 체제와 대북 강경체제를 만드는데 큰 영향을 미쳤다"며 이런 태도를 "선의 한국이 악의 북한을 굴복하게 만들 수 있다는 이상주의적인 믿음"이라고 표현했다.
▲ 서재정 미 존스홉킨스대 교수 ⓒ프레시안 자료사진 |
"대북정책 뿐 아니라 대미‧대중외교까지 망쳐"
하지만 이런 '신앙에 기반한 이상주의'는 엄청난 역효과를 불러왔다. 서 교수는 "북한은 두 번째 핵실험을 했을 뿐만 아니라 우라늄 프로그램까지 개발하기 시작했다"며 "중국은 아직도 관계가 불명확한 한국과의 전략적 동맹보다 북한과의 오랜 동맹관계에 무게를 두었고, 미국은 어느 때보다 큰 핵 문제와 중국과 악화된 관계만이 남았다"고 꼬집었다.
그는 "'신앙에 기반한 현실주의'가 북한 정책의 기반으로 자리잡게 되자, 미국과 중국을 향한 정책들도 신앙 바탕의 현실주의를 기반으로 만들어지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한국은 미국에 대해 한미동맹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하면서 북한과의 협력은 헛된 일이라는 인식을 심어 주는 것이 주요 정책이 됐다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핵 비확산을 위해 지정학적 권력을 희생시킨 미국의 선택은, 미국 입장에서 보면 어리석은 선택이었다고 그는 평했다.
중국의 입장에서는 한미동맹 강화를 위협으로 받아들였을 것이라면서 "중국에게 이런 한미동맹 강화는 결국 '최후의 표적은 누구인가'에 대한 걱정만 악화시켰다"고 말했다. 또 북중 간의 밀착 역시 오바마 정부와 이명박 정부가 택한 '전략적 인내' 덕분에 가속화됐다고 그는 지적했다.
그는 "이는 '전략적 동맹'에 대한 한국과 중국 간의 모순된 이해 때문에 더욱 악화됐다"면서 이와 관련해 '전략적 동맹'에 대한 한국과 중국 간의 '동상이몽'을 지적하기도 했다. 중국에게 전략적 동맹이란 한국과 중국이 미국 일극체제를 '공정한 다극체제'로 바꾸는 것이지만, 한국에게는 고립과 단계적 확산이 지니고 있는 문제점을 보강해 줄 수 있는 수단에 지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천안함 사건 이후 중국이 한국 정부의 입장에 동조할 것이라는 정부 당국자들의 기대 역시 이런 차이를 인식하지 못한 오해에서 기인했다는 설명이 가능하다.
"핵무기가 아니라, '정치적 관계'가 핵심"
서 교수는 "핵무기가 국제정치에 혁명적 변화를 가져왔다 해도 아직은 전쟁, 더 나아가 지정학의 도구일 뿐"이라며, 북핵 문제에서 핵심은 핵무기 자체가 아니라 '지정학', 즉 국제정치적 관계라고 주장했다. 그는 "무기는 정치를 뒷받침 해주는 것이고, 그 반대는 될 수 없다"며 핵무기 또한 마찬가지라고 강조했다.
그는 북한이 1990년대 이후 한국‧미국‧일본에 손을 내밀며 '남방정책'을 추진해 왔지만 뚜렷한 진전을 보지 못했으며, 특히 미국‧일본보다 많은 진전이 있었던 한국과의 관계마저 몇 년 사이 후퇴되거나 백지화돼 현재 개성공단만 남아있는 현재 상태에서 "북이 이제 남방정책에서 북방정책으로 전략적 전환을 꾀하고 있다고 해도 놀라운 일이 아니"라고 말했다. 그는 "(북한은) 과거와 마찬가지로 핵무기를 포함한 여러 가지 수단을 이용해 '생존을 위한 지정학'을 추구하고 있을 뿐"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이제 '신앙에 기반한 현실주의'를 역사의 쓰레기통에 버리고, 지역정치 중심의 현실주의를 실천할 때"라면서 "지금 필요한 것은 자신이 희망하는 현실에 매달리는 것이 아니라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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