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가 3일 주최한 국제학술회의 '중국과 전략적 주변국'에서는 한국의 대중국 외교 정책에 대한 반성과, 중국의 부상이 아시아 지역 내 정세에 어떤 변화를 미칠 것인가에 대한 참석자들의 의견이 쏟아져 나왔다.
"中에 섭섭해 하기 전에 스스로 돌아보라"
황재호 한국외대 교수는 "천안함 사건 이전에 한국은 중국에 대해 환상을 갖고 있었다"며 당시 한국 정부가 중국이 한국의 손을 들어 북한에 비판적인 입장을 취할 것이라는 기대를 보였다고 말했다.
황재호 교수는 "중국은 한반도와 관련해 세 가지 큰 위기에 직면했었다"며 북한의 핵실험, 천안함 사건, 연평도 사태를 꼽았다. 그는 "중국은 북한 편을 드는 것처럼 보였고, 한국 정부는 크게 실망했다"며 "전략적 협력관계가 맺어진 상태였기 때문에 (정부는) 중국이 한국을 지원할 것으로 생각했지만 한중관계는 우리 생각처럼 굳건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황 교수는 "중국에 기대했던 만큼, 한국은 중국의 기대 사항을 충족시켰는가 스스로 반문해야 한다"며 "중국을 파트너로 인정하고 대접하고 있느냐 돌아볼 필요가 있다"고 꼬집었다.
그는 "중국은 이명박 정권이 외교정책의 중심을 (한중관계보다) 한미관계에 더 두고, 강경한 대북정책을 취하는 데에 우려와 불만을 갖고 있다"면서 "그러나 상황이 변하지 않을 것 같기 때문에, '다음 정권을 지켜보자'는 입장이 아닐까 한다"고 말했다.
북한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방중 직후 '이명박 정권과는 대화하지 않겠다'는 메시지를 취하고 있는 상황이라, 이런 북한의 태도가 중국과의 공감대 속에서 나왔을 가능성에 대한 설명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그의 언급이 주목된다.
그는 "중국의 향후 대북정책이 180도로 변할 것으로 기대하기 어렵다"고 전망하고 "중국은 북한의 '제멋대로' 행보에 불만이 매우 크지만, '때리고 싶어도 때리지 못하고 그저 욕만 하는 것' 이외 다른 방법이 없어 앞으로의 대북정책도 현 수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단, 중국의 향후 대북정책은 한국과 미국이 어떻게 대응하느냐가 가장 중요한 고려요인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어 "천안함 이후 한중 모두 어려운 시기를 맞았지만 지금은 모두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로 돌아가고 싶어하는 것으로 보인다"며, 그러기 위해서는 북한 문제와 관련해 중국을 소외시켜서는 안 되며 오히려 향후 한반도 상황에서도 중국의 국익을 침해하는 일은 없음을 중국에게 확신시켜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 중국은 동남아시아에서 점차 영향력을 높여 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사진은 지난 2009년 4월 태국에서 개최된 제12차 '아세안+중국' 정상회담 ⓒ프레시안 자료사진 |
"중국, '소프트 파워' 전략으로 동남아 영향권 증대"
이희옥 성균관대 교수도 '천안함'을 하나의 '잣대'로 인용했다. 이 교수는 중국의 동남아 국가들에 대한 영향력을 분석하면서, 동남아 10여개 나라에서 천안함과 연평도 사건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했는지를 제시했다.
이희옥 교수는 "(연평도 사건 이후) 인도네시아, 베트남, 라오스, 캄보디아는 중국과 입장이 똑같았다"며 북한을 비난했던 미국보다는 북한에 대해 좀 더 이해적인 태도를 보인 중국에 동조하는 경향을 나타냈다고 분석했다. 천안함 사건 때에도 라오스와 베트남은 중국과 유사한 입장을 보였으며,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캄보디아도 비슷한 태도를 취했다는 것이다.
이는 동남아에서 미국의 주도권이 쇠퇴하고 반대로 중국의 영향력이 증대하는 경향으로 해석될 수 있다. 이 교수는 "중국과 동반자 관계를 맺고 있는 국가는 주로 대륙(인도차이나 반도)에 위치하고 있고, 해양 국가들은 미국 헤게모니에 가깝다"고 분류했다.
이 교수는 동남아 지역에 대해 "중국의 사활적 이익이 걸린 지역"이라며 "중국은 영토 문제에 대해서는 비타협적인 태도를 취하면서도 정치‧안보 협력, 경제 협력, 소프트 파워를 강화하는데 성공했다"고 평가했다.
그는 베트남, 태국, 필리핀, 싱가포르,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등 6개국에서 미국보다 중국에 대한 선호도가 높아졌다면서 "중국이 공적개발원조(ODA)도 본격 진행하면서 동남아 국가에 '매력 공세'를 펼치고 있다"고 보았다.
유잉리(于迎麗) 상하이 국제문제연구소 연구원도 <맹자>를 인용해 '왕도정치'라는 개념을 들며 이같은 인식을 보였다. 유 연구원은 "왕도(王道)란 왕, 지배자가 무력을 행사하거나 억압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따라오도록 한다는 것이며, 패도(覇道)는 무력을 사용해 속박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스마트 파워'와 통하는 개념이다.
유 연구원은 "(중국이) 패권을 쥐려고 하기보다는 뜻을 같이하는 세력을 늘리려 한다는 것"이라며 중국의 부상이 미중 간의 '패권 다툼'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시각과는 관점의 차이가 있다고 선을 그었다.
그는 "중요한 것은, 중국이 많은 발전을 이뤘지만 여전히 개발도상국이라는 것"이라며, 전체 국내총생산(GDP)는 세계 2위지만 1인당으로 나누면 서구 선진국의 1/10 수준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미국과 중국이 정말 세계 패권을 놓고 경쟁할 것인가? 절대 아니다"라며 그 이유로 △중국은 계속해서 도시와 농촌 간의 격차 등 국내 문제에 먼저 신경을 쓸 수밖에 없다는 점, △중국 주변의 지역 안정성이 여전히 문제라는 점, △중국은 자신들의 국가역량 이상의 책임을 지고 싶어하지 않는다는 점과 함께 중국은 패권보다는 우호적 관계 수립에 더 관심이 있다는 점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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