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 현역 영관급 장교 4명이 북한에 납치됐다는 한 전직 기자의 법정 증언과 관련, 당시 외교·안보 부처 고위 당국자들은 "처음 듣는 얘기"라며 의아하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당시 고위 당국자를 지낸 한 인사는 20일 <프레시안>과의 통화에서 "그 정도로 큰 일이 있었다면 내가 몰랐을 리 없었을 텐데, 전혀 듣지 못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전직 고위 당국자는 "들어본 적이 없는 일이기 때문에 어떻게 말할 방법이 없다"며 "어떤 언론 보도를 보니 검찰 관계자도 일방적인 주장이라고 했던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치 납치가 사실인 것처럼 제목을 단 것은 이상하다"라고 말했다.
노무현 정부 시절의 한 고위 당국자는 "납치된 장교들이 있었다면 그 가족들이 가만히 있지 않았을 것"이라며 "그런 그런 가족이 있다는 사실도 들어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국방부는 "정보와 관련된 사항이어서 확인해 줄 수 없다"는 입장이다. 국방부의 한 관계자는 <프레시안>과의 통화에서 "나도 궁금한 일"이라고 말했다.
이같은 논란은 '흑금성'이란 암호명으로 북한 정보 수집 활동을 하다가 1998년 안기부에서 해고된 뒤 거꾸로 북한에 군사기밀을 넘겨준 혐의로 기소된 '흑금성' 박채서 씨에 대한 19일 공판에 관한 언론 보도로 불거졌다.
전직 북한 전문기자 정모 씨는 이날 공판에 증인으로 나와 '한국의 합동참모본부 중령이 1999년 중국 국경에서 납치되고, 이모 대령이 북한에 체포됐으며, 또 다른 이모 대령과 박모 대령이 북한에서 납치ㆍ체포된 사실을 알고 있느냐'는 박 씨 변호인의 물음에 "그렇다"고 답했다.
그러나 정 씨는 장교들이 어디서 왜 납치·체포됐는지는 언급하지 않았다. 또한 당시 소속 신문사에서 이 내용의 취재가 중단됐는데, 보도할 사안이 아니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박채서 씨는 2003년 3월 북한 작전부(현 정찰총국) 공작원에게서 "남한의 군사정보와 자료를 구해달라"는 요구를 받고 같은 해 9월부터 2005년 8월까지 '작전계획 5027'과 군사 교범 등을 입수해 넘겨준 혐의로 기소돼 1심에서 징역 7년과 자격정지 7년이 선고됐다.
박채서 씨의 변호인단이 전직 기자 정 씨를 증인으로 세운 이유는, 북한이 이미 2000년대 초에 박 씨가 아닌 다른 이들로부터 '작계 5027'을 입수했음을 입증하기 위해서였다. 박 씨 측은 또 북한이 2004년에 이런 사실을 공개하기도 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정 씨는 20일 <연합뉴스>에 "(내가 증언한 것으로 알려진) 대부분 내용은 변호인이 얘기한 것이고 나는 당시 그런 말을 들었다고 했을 뿐 그것이 사실인지 아닌지를 진술한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정 씨는 이어 "들은 내용을 취재하다가 국익 차원에서 보도할 수 있는 내용이 아니라고 봤다"고 취재 중단 경위를 설명했다. 또 그는 정보의 입수 경위는 밝힐 수 없으며, 작계 5027의 유출 여부는 '설사 그런 사안(납치)이 있더라도 그들을 통해 유출됐는지를 내가 알 수는 없다'고 덧붙였다.
박채서 씨를 조사했던 검찰 관계자는 <문화일보>에 "검찰 조사에서도 박 씨가 우리 군 장교를 납치했다는 주장을 했지만 수사 범위가 수집·탐지였고 납치됐는지조차 확인이 안 되는 상황이어서 추가로 조사할 필요가 없는 사항이었다"며 "박 씨의 일방적이 주장일 뿐"이라고 일축했다.
검찰 관계자가 '일방적 주장'이라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문화일보>는 "정부가 해당 사실을 알고 있었던 것으로 전해지면서 왜 10년이 넘도록 이를 비밀에 부쳐 왔는지 의혹이 증폭되고 있다"고 '일방적 주장'을 기정사실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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