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카에다 지도자 오사마 빈 라덴의 사살을 계기로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전쟁을 둘러싼 논쟁이 가열되고 있다. 일반 국민들과 시민사회의 여론이 철군 쪽으로 기울어지면서 정치권에서도 본격적인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했다.
미국 일간 <유에스에이(USA) 투데이>와 여론조사 전문기관인 갤럽이 지난 6~8일 1018명의 미국인을 상대로 실시한 전화 여론조사 결과, 59%가 라덴 사살을 계기로 아프간전 승리를 선언하고 예정대로 미군을 철수시켜야 한다고 답했다.
미국은 2001년 9.11 테러의 주범으로 알카에다를 지목하고 빈 라덴을 잡기 위해 아프간 전쟁을 시작했다. 따라서 빈 라덴 사살로 '10년 전쟁'의 최대 목표가 성취된 마당에 더 이상의 비용을 치러서는 안 된다는 여론이 비등한 것으로 풀이된다.
빈 라덴의 사망 발표 하루 뒤인 지난 2일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45%가 아프간 미군을 철수시켜야 답했던 사실에 비춰보면 철군 여론이 대세를 형성해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아프간에서 아직 중요한 임무가 남아 있기 때문에 미군이 계속 주둔해야 한다는 응답은 36%, 무응답층은 5%였다.
특히 지난 2008년 대선에서 버락 오바마 현 대통령을 지지했던 계층의 2/3가 미군 철수를 바라고 있어서 오바마 대통령에게는 정치적인 압력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정밀타격 전략 지지자들 주도권 잡을 듯
이같은 여론이 조성되면서 아프간 전략을 수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의회를 중심으로 나오고 있다. 상원 외교위원회의 존 케리 위원장(민주당)과 공화당 간사 리처드 루거 상원의원은 10일 청문회에서 아프간 전략을 재고해야 할 시점이 됐다고 한목소리로 말했다.
케리 위원장은 "끝이 보이지 않는 방대한 군사 작전을 위해 한 달에 무려 100억 달러를 쏟아 붓는 것은 근본적으로 지속가능한 방안이 아니라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갑작스러운 철군에는 반대한다고 선을 그었지만 그는 하루 빨리 10만 명에 달하는 아프간 주둔 미군을 철수시키고 아프간 정부에 책임과 권한을 넘겨야 한다고 주장했다.
공화당의 루거 의원도 "한 달에 100억 달러의 전비를 투입하는 아프간 전략이 미국의 지정학적·전략적 이해에 맞는지 재평가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올 7월부터 시작되는 아프간 미군 철군의 규모와 속도에 대한 논쟁이 가열될 것으로 보인다. 오바마 정부는 지난 2009년 아프간 주둔 미군 3만 명을 증파하면서 올 7월부터 병력을 단계적으로 줄여 2014년 철군을 완료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오바마 정부는 현재까지 철군의 구체적인 규모를 밝히지 않고 있고, 빈 라덴 사살 이후 기존 계획 수정 여부에 대해서도 언급하지 않고 있다. 향후 아프간 현지의 사정, 의회의 논의, 여론 지형 등을 고려하며 철군 계획을 재검토할 것으로 보인다.
오바마 정부에서는 지난 2009년 새로운 아프간 전략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격렬한 내부 논쟁이 있었다. 조 바이든 부통령을 비롯한 일부 백악관 참모들은 대규모 병력 증파를 반대하며 무인비행기와 특수부대 공격을 통한 파키스탄 내 알카에다 정밀타격전략(counter-terrorism)을 주장했고,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과 로버트 게이츠 국방장관 등은 지상군 추가 파병을 통해 아프간 내 반군까지 소탕하며 아프간 정부의 입지를 넓혀가는 대(對) 반군전략(counter-insurgency)을 지지했다.
결국 오바마 대통령은 대 반군전략을 택했고 바이든 부통령 그룹과 민주당 내 반전론자들을 달래기 위해 단계적인 철군 계획을 함께 내놨었다. 하지만 빈 라덴의 사살은 정밀타격전략의 유효성을 보여준 것이어서 바이든 부통령 등이 향후 논쟁의 주도권을 잡아 갈 것이라고 <워싱턴포스트>는 11일 전망했다.
이라크 미군 주둔 연장 '불감청고소원'?
한편, 오바마 정부 들어 미군 전투병력을 철수시킨 이라크에서는 누리 알말리키 총리가 미군 주둔 연장 요청을 검토할 것이라고 말해 새로운 변수로 등장했다.
알말리키 총리는 11일 바그다드에서 기자회견을 통해 "각 정파의 지도자들과 협의해 미군 주둔 기간의 연장이 필요한 것으로 의견이 모아진다면 주둔 연장을 요청할 것"이라고 말했다고 <AP> 통신이 보도했다.
이라크 주둔 미군은 2008년 12월 체결된 미-이라크 안보협정에 따라 오는 12월 말까지 완전 철수할 예정이었다. 한때 17만 명까지 있었던 이라크 주둔 미군은 작년 8월 전투병력을 모두 철수시켰고, 현재는 교육 및 지원 병력 4만6000명만 남아 있다.
그간 많은 전문가들은 이라크를 중동 전략의 핵심 기지로 삼고 싶어 하는 미국의 입장에서 병력의 완전 철수는 있을 수 없고, 언젠가 새로운 변수가 등장해 장기 주둔 쪽으로 갈 것이라고 전망해 왔다. 그간 미군 철수 시한 준수를 촉구해왔던 알말리키 총리의 이날 발언은 바로 그러한 '변수'가 될 것으로 보인다.
미국 정부는 이라크 정부가 원한다면 미군 주둔 기간을 연장할 수 있다는 방침이다. 게이츠 미 국방장관은 지난달 이라크에 방문해 "이라크가 원한다면 미군은 당초 철군 기한인 올해 12월 31일을 넘겨 이라크에 더 주둔할 수 있다"고 밝혔다.
로이드 오스틴 이라크 주둔 미군 사령관도 이라크의 독자적인 안보 유지 능력이 여전히 미흡한 상황이라며, 이라크도 미군 주둔 연장을 원하고 있지만 아직 공식적인 요청을 받지는 못했다고 밝혔다.
이라크의 수니파와 쿠르드 정파는 대체로 미군 주둔 연장에 찬성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반미 강경 시아파인 알사드르 정파는 미군 주둔 기간이 연장될 경우 저항활동을 재개할 것이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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