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고위 당국자가 이명박 대통령의 '베를린 제안'에 담긴 진정성의 깊이를 간접적으로 보여주는 발언을 했다.
고위 당국자는 11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이 대통령의 베를린 제안이 기존의 입장을 되풀이한 것에 불과하지 않느냐는 지적이 있다'는 한 기자의 질문에 "북한도 만날 그러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 9일 독일 베를린에서 북한이 비핵화에 합의하면 내년 서울에서 열리는 제2차 핵안보 정상회의에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초대할 용의가 있다고 말한 바 있다. 이에 대해 '북한의 수용 가능성이 낮은 진정성 없는 제안'이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정부 고위 당국자의 이날 발언은 대통령의 제안에 대한 정부의 시각을 보여주는 것으로 풀이된다. 다만 다른 정부 당국자는 이 발언의 진의에 대해 "이명박 대통령이 김 위원장을 초청한 것은 그래도 의미가 있다는 맥락에서 나온 것"이라고 해명했다.
이 대통령의 베를린 제안에 대해서는 야당은 물론 보수언론에서도 비판적인 시각을 드러내고 있다.
정동영 의원(민주당)은 이날 오전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이솝우화의 '여우와 두루미'를 빗대 베를린 제안을 비판했다. 정동영 의원은 "여우에게 호리병을 내놓고 두루미에게는 접시를 내놓는 얘기가 있다"며 "이명박 대통령이 핵안보 정상회의에 김정일 위원장을 초청하겠다는 이야기가 딱 이 경우에 해당한다"고 말했다.
정 의원은 이어 "보여주기 위한 '쇼'로서의 베를린 선언"이라며 "11년 전 김대중 대통령이 민족 문제의 자주적 해결을 위해 내놓았던 베를린 선언의 크기와 깊이, 진정성, 비전의 면에서 너무나 대조된다"고 덧붙였다.
10일자 신문에서 대통령의 제안을 소개했을 뿐 아무런 해설도 붙이지 않은 <조선일보>는 11일자 '기자수첩'에서 "겨우 이 모임(핵안보 정상회의)에 끼려고 북한이 수십 년 간 매달려온 핵개발을 포기할까"라며 "내가 받고 싶은 선물을 준다고 상대가 꼭 만족하리란 법은 없다"고 지적했다.
북한은 이 대통령의 제안을 사실상 거부했다. 북한의 입장을 대변하는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조총련) 기관지 <조선신보>는 이날 '핵정상회의 초대 - 공세에 밀린 청와대'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서울 초대'라는 제안을 했는데 서로 차원이 다른 문제를 억지로 결부시키는 논법에는 불순한 기도가 엿보인다"고 밝혔다.
<조선신보>는 "이명박 대통령은 북남이 자기 권한을 가지고 선차적으로 풀어나갈 수 있는 문제를 언급하지 않았다"며 "베를린회견은 결국 종전의 대결책을 슬그머니 접고 '6자회담 테두리 안에서의 북남대화'에 나서기 위한 명분 세우기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나올만하다"고 주장했다.
신문은 이어 "조선반도의 비핵화를 실현하는데 북남이 할 몫과 북미가 할 몫이 따로 있다"며 "베를린회견의 내용은 카터 '전언'(남북 정상회담을 하자는 김 위원장의 제안)에 대한 직접적 회답이라고는 말할 수 없다. 남측은 소극성을 부리며 여전히 그 무엇이 풀려야 만날 수 있다는 식의 조건부대화에 대해 말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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