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이날 서울발 기사에서 외교소식통을 인용해 이같이 전하며, 이명박 대통령은 클린턴 장관의 제안을 거절했다고 보도했다.
<아사히>에 따르면, 클린턴 장관은 이 대통령에게 "운전석에 앉아있는 것은 한국"이라며 한국의 생각을 존중하겠다는 자세를 확인하면서도, "북한의 성의를 확인하기 위해서라도 한 번 만나보는 게 어떻겠느냐"고 타진했다.
그러나 이 대통령은 "북한의 진심을 확인할 때까지는 만날 수 없다"며 6자회담 예비회담 등을 통해 북한이 구체적인 비핵화 조처를 할 의사가 있는지 사전에 확인할 필요가 있다는 뜻을 밝혔다고 신문은 전했다.
또 클린턴 장관이 대북 식량 지원을 검토중이라고 설명한데 대해서도 이 대통령은 "우리의 최종 목표를 달성할 때까지 지원은 없다"며 북한이 먼저 일련의 무력 도발에 대한 사과 등을 해야 한다는 인식을 나타냈다.
이에 대해 <아사히>는 "(북한과의) 대화를 서두르는 미국과, 신중한 한국 사이에서 생각의 불일치가 나타난 셈"이라고 진단했다. 신문은 또 미국은 북한이 원하는 북미대화의 실현을 위해 남북관계의 개선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견지하면서 남북대화의 시기도 한국의 판단에 맡겼으나 미국에서 긴장 완화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강해지면서 클린턴 장관이 이 대통령의 의사를 직접 타진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신문은 이어 한국 정부는 남북관계와 6자회담 대응을 분리한다는 방침을 굳혔지만 북한에 비판적인 여론의 반발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강해 이 대통령의 강경 발언도 여론을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또 신문은 중국의 우다웨이(武大偉) 한반도사무 특별대표가 26일 방한하는 등 중국도 미국과 마찬가지로 6자회담 남북 수석대표 회담의 조기 실현을 요구하고 북미대화와 6자회담 개최를 서두르는 것으로 보여 한국은 더 괴로운 입장에 몰릴 것 같다고 전망했다.
▲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 17일 청와대에서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을 만나고 있다. ⓒ청와대 |
<아사히>의 보도에서 확인되는 것은 크게 세 가지다.
첫째, 미국이 대북 식량 지원과 북미대화를 꽤나 강하게 원한다는 사실. 클린턴 장관은 이미 지난해 여름 참모들과 외부 전문가들을 불러 '참신한' 대북정책을 내놓으라고 주문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둘째, 이명박 대통령의 입장이 강경하면서도 모호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중국의 우다웨이 대표는 지난 11일 6자회담으로 가는 수순을 '남북 수석대표 회담→북미접촉→6자회담'으로 제시했다. 대해 한국 정부는 "우리가 지속적으로 촉구해온 사항이어서 매우 고무적"(조병제 외교부 대변인)이라며, 북한이 남북 6자회담 수석대표 회담을 제의해 온다면 수용할 수 있다는 태도를 보였다. 아울러 정부는 남북 수석대표 회담은 6자회담으로 가기 위한 형식적인 통과의례가 아니라 비핵화의 진성성을 확인하는 자리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아사히>가 전한 이 대통령의 발언은 이러한 맥락 위에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그러나 "북한의 진심을 확인할 때까지는 만날 수 없다"는 대통령의 발언에는 남북 6자 수석대표 회담조차 비핵화 행동이 먼저 있고 나서야 가능하다는 뉘앙스가 담겨 있다. 즉, 북한이 6자 수석대표 회담을 제안하면 받을 것 같으면서도 북한의 선제 행동이 있어야 한다는 등 입장이 불분명한 것이다.
셋째,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한국의 뜻을 우선 따른다는 기존의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미국의 태도가 이러하다면 북미 대화와 6자회담으로 가는 길은 험난할 수밖에 없다. 이명박 정부가 '진정성'이라는 모호한 기준을 제시하고 불분명한 태도를 보이며 계속 대화에서 뒷걸음질 쳐도 미국은 한국의 입장을 존중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결국 한반도에는 머지않은 시일 내에 또 한 차례의 위기가 닥칠 수밖에 없다. 미국으로 하여금 한국을 뿌리치고 먼저 움직이도록 하기 위해 북한이 택할 것은 핵과 관련된 도발적인 행동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이는 북한 김영춘 인민무력부장이 24일 "조선반도에 언제 전쟁이 터질지 모를 긴장한 정세가 조성되고 있다"고 말한 것이 예사롭지 않게 들리는 이유다. 대남기구인 조국평화통일위원회는 23일 "대화에 더 이상 연연하지 않을 것"이라고 선언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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