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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자회담 재개 움직임, '진정성 타령' 역풍 넘어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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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자회담 재개 움직임, '진정성 타령' 역풍 넘어서길

[기고] 북핵 문제, 협상은 불가피하다

소설작법(小說作法)에서 등장하는 '후일담'은 '사건이나 사태가 지나간 뒤 그 뒷날의 이야기'를 뜻하는 단어이다. 북한 핵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2003년 8월 처음으로 열린 6자회담은 이후 계속해서 부침(浮沈)을 통해 많은 후일담을 제공하고 있다.

특히 2006년 10월과 2009년 5월에 실시된 두 차례의 핵시험과 연내 3차 핵시험 가능성이 높게 점쳐 지는 것을 감안, 대다수의 국내외 전문가들은 북한이 자발적으로 핵무기를 포기할 가능성을 매우 낮게 보고 있다.

게다가 북한은 1993년 1차 북핵 위기가 미국과 협상을 통해 잠시 핵 개발을 유보하는 듯한 타협 모양새를 취하다가 2002년 10월 고농축우라늄(HEU) 프로그램 문제로 촉발된 2차 핵위기 이후부터 핵보유국으로서의 위상을 각인시키려 노력하고 있다.

북한 HEU 개발의 정당성을 논한다는 것은 마치 '성경을 읽기 위해 촛불을 훔친 절도범'을 미화하는 것처럼 역설의 오류를 범하기 쉽고 논박의 여지가 없지 않다. 성경 읽는 것을 핑계로 촛불을 절도한 행위가 법적으로 도덕적으로 정당화 될 수 없다고 해도 성경을 읽은 것이 사실이라면 그것은 나름대로 논리적 결을 이루고 있다고 봐야 한다는 주장도 존재한다. 그러나 북한은 어두컴컴한 동굴 속에서 촛불만 밝혀둔 채 성경은 고사하고 핵무기 개발 관련한 책들만 읽고 있었음이 드러났다.

이런 암울한 평가 와중에도 2008년 12월 이후 교착상태에 빠진 6자회담이 단계적으로 재개될 조짐이 조심스럽게 점쳐지고 있다. 카터 전 대통령을 포함한 전직 국가수반들의 모임인 엘더스 그룹(The Elder's Group)의 방북 소식에 이어 중국이 북한과 협의한 끝에 남북 수석대표 회담, 북미 회담을 거쳐 6자회담을 다시 개최하는 3단계 방안을 제시한 것이다.

한국 측 북핵 6자회담 수석대표인 위성락 외교통상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이 "회담의 순서보다 중요한 것은 비핵화의 진전"이라는 토를 달기는 했지만, 우리 정부도 남북이 먼저 만나는 것에 일단 긍정적인 입장을 보였다. 북한 역시 핵 문제는 북미간의 문제라는 기존의 입장에서 한 발 물러나 남북간에 핵 문제의 작은 대화통로를 열수도 있음을 내비쳤다. 진전으로 볼 수 있다.

정부는 지난 1월 천안함, 연평도 사건과 별도로 비핵화 문제를 다룰 남북회담을 열자고 제의한 바 있기 때문에 남북회담은 형식적으로는 이른바 투 트랙으로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 핵 문제 논의의 방향과 깊이에 따라 투 트랙은 하지만 중요도의 무게가 반드시 같지 않은 채 시차를 두면서 진행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제는 회담 형식이 아닌 실질적 내용이다. 대화를 위한 대화는 더 이상 필요가 없다는 것이 한미간 확고한 입장이다.

일반적으로 협상을 하는 주된 목적은 협상을 하지 않았을 경우 얻을 수 있는 결과보다 더 나은 것을 얻기 위해서다. 북한 핵무기 프로그램 개발 폐기를 두고 벌이는 주변국들 사이의 고난도 협상도 마찬가지이다. 특히 불신이 이미 내면화된 상황에서 북한과 미국이 겨루는 북핵 게임은 별이 다섯 개인 최고의 난이도가 있는 협상이다. 정보측면에서 비대칭적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일례로, 가난한 골동품상인(북한)이 시장에서 외국인 갑(미국)을 상대로 희귀 골동품을 팔려고 한다고 가정하자. 그 상인은 시장의 원리를 꿰뚫고 있는 노회한 사람인 반면에 갑 외국인은 경제적으로 부유하기만 할뿐 탐나는 그 골동품의 진가에 대한 식견이나 정보 수집 능력은 여러모로 부족하다. 따라서 상인이 부르는 가격에 일단 주저할 수밖에 없다.

상인은 하지만 언제라도 을, 병 등 다른 외국인에게 팔 수 있다고 공공연히 떠벌린다. 굳이 그 골동품을 구입하고자 한다면, 갑 외국인은 불만족스럽게 그 골동품을 두고 상인의 요구대로 흥정에 응하던지, 아니면 다른 곳에서 비슷한 골동품을 적당한 가격에 구입하는 '공부'를 한 후에 되돌아와서 다시 흥정을 하는 수밖에 없다.

6자회담 초기 북한을 대하는 미국의 방식이 이와 흡사했다. 미국이 보유한 북핵 정보의 가치가 일반적 예상과는 달리 높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급기야는 점찍어 두었던 골동품에 대해 관심이 없는 척(feign disinterest) 하는 일까지 벌어진 셈이다. 오바마 행정부의 '전략적 인내'가 관심 없는 척하기인지는 명확히 알 수 없으나 문제는 골동품에 가격표가 없어 협상은 불가피하다는 사실이다. 게다가 세계식량계획(WFP)의 북한 방문조사 결과를 포함해서 북한 식량 사정이 심각하다는 평가는 북한을 협상으로 유도하는데 일조하는 외연적 충분조건이다.

40여개국에 이미 식량 도움을 청한 북한으로서도 이제는 어느 경우를 막론하고 피폐해진 주민들의 생활수준을 높이지 못하고 정권을 안정되게 유지하기란 불가능하다. 김정일은 1990년대 이른바 '고난의 행군'으로 대변되는 경제난으로 체제 생존에 봉착했던 경험이 있다. 하지만 더욱 악화된 경제 상황에서 더는 '고난의 행군'으로 체제에 대한 불만을 잠재울 수는 없다. 다시 말해, 아무리 조심해서 발뒤꿈치를 들고 걸어도 피할 수 없는 '붕괴'는 있게 마련이다.

숱한 어려움의 고갯마루를 넘고 또 넘어야 하는 북핵 협상의 근원적 팍팍함에 견주어 본다면, 6자회담이 설령 재개된다고 해도 가야할 길은 요원한 셈이다. 다자 제재는 효과가 있을지언정 다자협상은 성격상 그 효과가 낮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위기에 봉착할 때마다 스스로 꼬리를 끊고 도망칠 수밖에 없는 도마뱀과 같은 북한의 힘겨운 처지를 생각하면 분노가 허탈감과 뒤섞여 '입상'(立像)처럼 솟구쳐도 제자리에 우두커니 서서보고 있을 수만도 없다. 모처럼 재개될 6자회담 훈풍이 '진정성 타령'과 같은 역풍을 극복하고 순항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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