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자리에서는 중동 전문가인 인남식 외교안보연구원 교수가 리비아와 이집트 사태의 성격, 서방 국가들의 의도 등에 대해 심층적인 분석을 내놨다. 인남식 교수의 발표 내용을 주제별로 재구성했다.
▲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왼쪽)과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가 13일 프랑스 엘리제궁에서 리비아 사태를 논의하고 있다. ⓒAP=연합뉴스 |
■ 이집트, 이스라엘 때리기 나설까?
중동과 북아프리카 지역의 정치 변동을 모두 시민혁명이라고 보면 일반화의 오류다. 리비아는 부족주의와 지역 갈등이 폭발한 성격이 크다. 걸프 지역 왕정 국가에 민주주의가 갑자기 들어선다는 건 단기적으로 전혀 가능하지 않고, 대외관계에서 '뉘앙스'만 바뀌는 정도가 될 것이다. 이집트와 튀니지의 경우만 전형적인 시민혁명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집트가 핵심이다.
아랍의 정치 변동에 대해 이스라엘이 놀라울 정도로 정중동이다. 더 놀라운 것은 아랍 시위대도 이스라엘에 대한 얘기를 거의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집트 정국을 주도하고자 하는 세력이라면 당연히 이스라엘 때리기에 나설 거라고 예상했는데, 최근 카이로에서 젊은 지도자들을 만났더니 핵심은 무바라크였다고 입을 모았다. 섣불리 이스라엘을 때렸을 때 미국이나 서방의 지원이 위축될 것이고, 그렇다면 새로운 나라를 세울 수 없다고 말했다.
무슬림형제단에 8개 파벌이 있는데 5개 파벌이 이스라엘과의 관계는 기존대로 간다고 말했다. 민주인사 연합, 무슬림형제단조차도 1979년 이스라엘-이집트 캠프데이비드 협정은 그대로 간다고 명시적으로 선언했다. 국제사회에서 이집트를 우려하지 않게 하겠다는 동기가 강하다.
이스라엘은 강경파인 베냐민 네타냐후가 총리고 리쿠드당이 집권당이고 극우 베이테이누당의 당수가 외교장관인데도 그게 가능할 것 같느냐고 물었더니 '이집트는 그대로 갈 생각인데 이스라엘이 어떻게 하느냐가 변수'라고 답했다. 이스라엘의 행태에 따라 이집트가 움직이지, 이집트가 먼저 이스라엘 때리기를 하지는 않겠다는 것이다.
■ 무슬림, 이집트 정치 전면에 나설까?
19일 이집트에서 개헌 국민투표가 있었다. 41%라는 유례없이 높은 투표율을 기록했고 77%가 찬성해 개헌안이 가결됐다. 이집트가 세속국가임에도 불구하고 이슬람을 국교로 유지하느냐 마느냐에 대한 2조가 핵심 쟁점이었다. 이슬람 국교를 유지해야 한다는 사람들이 전부 투표장에 나갔다.
그러나 투표하지 않은 59%의 국민은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사람들이다. 즉, 이슬람 정체성을 가지고 이집트의 미래를 구성하자고 적극적인 정치 행위를 할 수 있는 사람이 많아야 국민의 30%밖에 안 된다는 것이다. 현재의 정치적 진공을 이슬람이 채울 것이라는 전망에 대해 이집트 사람들의 회의가 많다.
결국 앞으로 등장할 정부가 어떤 성과를 보여주느냐가 관건이다. 군부가 집권자의 얼굴만 바꿔서 권력을 유지하려고 할 테지만, 어떤 정권이 들어서건 경제적으로 성과를 보여줘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해외의 지원이 절대적이다. 따라서 어떤 세력이건 미국과 서방의 지원을 유지하려고 할 것이다. 그렇지 못하면 이집트도 아프가니스탄처럼 될 것이라는 우려가 많다.
중동의 집권자들이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팔레스타인 문제를 이용했다는 걸 중동 사람들은 이제 다 안다. 이집트를 새 나라로 만드는 과정에서 이집트 사람들도 계산을 다 한다. 단순하지 않다. 먼저 이집트가 살고 봐야지, 지금 이스라엘의 문제를 들고 나오면 서구에서 이슬람에 대한 우려가 크게 일어나고 3~4년 안에 끝장날 거라는 걸 안다. 무슬림형제단이 자신들은 제도권에 진입하는 것에만 만족한다고 고개를 숙이고 나오는 것도 그런 의미다. 더 이상 반(反)이스라엘 프레임에 갇혀 있지 않고, 이집트에 누구의 도움이 필요한지를 보고 판단한다.
■ 리비아 사태에서 미국이 오락가락하는 까닭은?
리비아에서 미국은 세 가지 딜레마에 빠져 있다. 첫째, 카다피를 무너뜨리고 반군 정권이 들어섰을 때 과연 그들이 믿을만한 파트너가 될 수 있는지에 대한 회의론이 있다. 미국은 나치·파쇼와 싸우기 위해 소비에트와 손잡았지만, 소비에트가 나중에 적이 됐다. 소비에트를 무너뜨리기 위해 아프간의 무자헤딘과 손잡았지만 나중엔 적이 됐다. 이란의 호메이니를 무너뜨리기 위해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과 손을 잡았지만 후세인은 적이 됐다. 그런 역사를 겪었기 때문에 리비아 반군과 손잡는 것에 대한 딜레마가 있다.
둘째, 미국은 사우디아라비아, 쿠웨이트, 카타르, 아랍에미리트연합(UAE) 등 걸프 왕정 국가를 국익을 위해 반드시 지켜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왕정에 대항하는 세력을 눌러야 한다. 그것과 리비아 반군을 지원하는 것은 완벽한 논리 모순에 빠진다. 이중잣대의 딜레마다.
셋째, 미국은 국방 예산을 크게 줄여야 하는데, 리비아에 군사 개입을 하면 전비가 들어갈 수밖에 없다. 그러다 보니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도 리비아 개입의 최종 목적이 카다피 제거냐 단순한 비행금지구역 설정이냐에 대해 오락가락하고 있다.
미국의 중동정책은 걸프 지역 안보와 이스라엘 안보라는 두 축으로 이뤄진다. 리비아와 북아프리카 마그레브 지역은 미국의 주된 관심사가 아니다. 따라서 미국은 리비아 문제에 대해 유럽이 적극적으로 나서 주기를 틀림없이 바랐을 것이다. 유럽은 바르셀로나 프로세스라는 환지중해 협력 사업을 통해 과거 식민지였던 북아프리카 지역에 훨씬 관심이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이 개입한 것은 2005년 유엔 정상회담에서 채택됐던 '보호 책임'(R2P)이라는 새로운 레짐 때문이었다. 카다피의 아들 사이프 알 이슬람이 벵가지 반군과 자식들까지 죽이겠다고 나서니까 국제사회가 가만있을 수 없다는 컨센서스가 만들어졌다. 카다피 정권이 '인도주의 범죄'(crime against humanity)를 저지른다는 게 분명한 상황이었다. 주권국가에 대한 군사 조치를 반대하는 중국, 러시아마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안에 거부를 하지 않은 상황(기권)에서 미국도 어쩔 수 없이 리비아에 발을 담글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들어간 미국은 토마호크 미사일 166발을 쏘고 빠졌고, 나토에 지휘권을 넘겼다. 그러나 미군이 빠지고 나토가 들어가면서 공습 대상을 정확히 지정(pinpoint)하지 못해 오폭 사고가 나고 있다. 이 과정에서 미국에 대한 신뢰의 상실이 드러나고 있고, 리비아 전황은 장기화될 것으로 보인다.
■ 프랑스, 영국, 이탈리아가 '총대' 맨 까닭은?
2003년 토니 블레어 당시 영국 총리와 넬슨 만델라 전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이 중재해 카다피를 서방으로 전향시킨 이후 카다피 정권은 미국, 유럽이 보기에 괜찮은 파트너였다. 미국의 대테러전에서 카다피만큼 무지막지하게 알카에다를 소탕한 사람이 없다.
유럽의 최대 관심사는 북아프리카 난민 유입이었는데 카다피가 이탈리아에서 돈을 받아 20년간 난민을 다 없애겠다고 했다. 이탈리아나 프랑스 남부의 난민촌이 씨가 말라 갔다. 이걸 본 유럽 지도자들이 카다피를 최고라고 생각하는 상황에서 이번 사태가 발생했다. 유럽이 다루기 어렵게 된 것이다.
리비아 공습에 프랑스가 총대를 매고, 영국이 따라갔고, 독일은 명시적으로 반대했다. 프랑스는 독일과의 경쟁 차원에서 강력한 드골주의적 입장으로 리비아에 들어갔다. 또 국내정치적으로 사르코지는 강한 민족주의, 강한 프랑스 구호를 내걸 필요가 있었다. 내년에 대선이 있는데 르펜의 국민전선이 사르코지보다 앞서가고 있기 때문이다.
영국은 왜 들어갔는지 설명이 안 된다. <가디언>도 설명을 못하고 있다. 데이비드 캐머론이 작년에 총리가 되면서 재정개혁을 했다. 공무원 50만을 해고하고, 대학 등록금을 3배로 올리고, 아프간 전몰장병 부인에 대한 연금을 삭감했다. 그런 와중에 리비아에 미사일을 쏘아대는 건 설명이 안 된다. 영국의 한 당국자는 '리비아에 안 들어갈 이유보다 들어갈 이유가 컸는데, 그건 영국인들만 아는 정서가 있다. 내가 설명해도 못 알아들을 것'이라고만 말했다.
이탈리아는 과거 카다피 정권과 친했던 게 스캔들이 되는 상황이다. 증거는 없지만 베를루스코니가 대선자금 받았다는 시각이 많다. 그런데 예측하지 못한 일이 터지니까 과거의 어두운 거래가 드러나는데 대한 두려움이 있어서 선제적으로 세게 나가는 것 같다.
"토니 블레어처럼 생각하니까 영국이 저 모양" 이날 토론회에서 또 다른 발제자로 나온 서정민 한국외대 교수도 이슬람 세력이 이집트 정국의 전면에 나설 것이라는 서방의 우려는 과장된 것이라고 강조했다. 중동 전문가인 서정민 교수는 "튀지니·이집트에서 대중저항을 주도하고 조직한 세력은 이슬람이 아니었고, 이집트의 무슬림형제단은 시위 중간에 편승했을 뿐"이었다며 "리비아 내전 주도 세력, 예멘·시리아 시위대도 이슬람 세력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서 교수는 "이슬람은 정치적으로 이용하기 좋은 종교지만 정치권력을 잡지 못하게 한 종교"라며 "이란 시아파가 성직자 계급을 만들어 신정정치를 하지만 이슬람의 90%를 차지하는 수니 이슬람에서는 성직자 계급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이집트는 상당히 세속화, 서구화한 국가"라며 "군부가 막후에서 지속적으로 작용하면서 자신들의 이익을 지켜줄 '얼굴마담' 정치세력과 결합해 정치를 이끌어 갈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중동에는 반미·반서방 감정이 있으니 앞으로 뭔가 큰 일이 있을 거라고 보지만 2차 대전 후 60년이 지나면서 중동 국민들도 지금 반미를 하는 게 얼마나 불이익이 되는지 잘 알고 있다"며 "야권 정치세력과 시민단체가 반미·반이스라엘 감정을 조직할 수는 있지만 정부가 그쪽으로 선회할 가능성은 낮다"고 강조했다. 이어 그는 "토니 블레어 전 영국 총리가 무바라크 정권 붕괴 후 '이집트의 이슬람화'를 우려했는데, 잘 모르고 그런 말을 하니까 영국의 국제정치적 위상이 약화되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