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전문가인 주장환 한신대 중국지역학과 교수는 12일 프레시안-평화재단 공동 주최 토론회 '한반도 평화와 대북·통일정책 어디로 가고 있는가'에서 현재의 북-중-미 관계를 '이수일과 심순애'에 비유했다. 심순애(북)는 '첫 마음을 준' 이수일(미)과 잘 해보려고 하는데 이수일은 눈길 한 번 안 주고 있으니 어쩔 수 없이 김중배(중)와 가까이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주장환 교수에 따르면 심순애는 여전히 김중배에게 가길 꺼려하고 있다. 중국과 북한이 힘을 합쳐야 할 이른바 '창지투 개발 계획'에 대해 북한이 여전히 공식적인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고, 7일 최고인민회의에서도 북중관계의 전환과 관련된 결정이 이뤄지지 않은 걸 보면 알 수 있다는 게 그의 분석이다. 주 교수는 "그만큼 북중관계 밀착에 대한 북한 정권의 우려가 상당하다"고 설명했다.
▲ 12일 오전 연평도 선착장에서 꽃게잡이 어선이 어구 정리 등의 작업을 하기 위해 어장을 향해 출항하고 있다. ⓒ연합뉴스 |
심순애-김중배-이수일 삼각관계에서 한국은 빠져 있다.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과 일방적인 친미 노선에서 비롯된 현재의 남북관계에서 "북한은 기본적으로 남을 전략적 이해와 고려의 대상으로 파악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라고 주 교수는 설명했다.
그는 이어 "남측의 대북 압박이 북한에 별 실효성이 없다고 판명난 만큼 최소한 남한을 전략적 대화의 대상으로 여기게 하는 방향으로의 정책 전환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를 위해 주 교수는 "남한이라는 국가의 이익이 무엇인지 심각하게 고민해 봐야 한다"며 "무력 통일이 아닌 다음에야 남한의 국익 차원에서 남북한 체제 동질성의 강화는 필수적"이라고 말했다.
북한대학원대학교의 양문수 교수도 유사한 평가를 내렸다. 양 교수는 "북한 문제, 북핵 문제, 동북아 정세에 대해 남한의 발언권과 역할이 무력화해 이른바 '정세 개입력'을 상실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명박 정부에는 남북관계 복원 필요성과 복원에 따른 보수층의 격렬한 반발이라는 정치적 부담감이 동시에 있다"며 딜레마적 상황에 처해 있다고 말했다.
이대근 경향신문 논설위원은 남북관계가 악화된 원인을 이명박 정부의 '고비용, 고위험, 저효율' 대북정책에서 찾았다. 군사비를 증액하고 남북 충돌과 대결을 조장하며 인명피해와 불안감을 가져오는 것은 고비용 대북정책이다. 일촉즉발의 전쟁 위기까지 간 것은 고위험 정책이고, 북한이 핵능력을 강화하고 대화가 중단되며 북한의 변화를 지체시키는 것은 저효율 정책이라는 것이다.
이대근 논설위원은 "북한은 독립변수인 동시에 남한의 대북정책에 대한 종속변수"라며 "대북정책의 실패를 정당화하기 위해 북한을 독립변수로만 간주하거나 대북정책을 비판하기 위해 종속변수로만 간주하는 것은 일면의 진실에 불과하다"고 덧붙였다. 남북관계는 결국 남북 공동의 책임이라는 것이다.
반면 박영호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상반된 견해를 피력했다. 박 연구위원은 "북한은 대미관계 개선을 통한 체제 유지 전략을 추진하면서도 핵무기 개발 전략을 매개로 미국과 대립하는 정책을 견지한다"며 "북한의 핵무기 개발 전략은 핵보유국으로서 행동하는 전략으로 진화됐다"고 분석했다.
박 위원은 또 "북한은 내·외의 환경 변화에 능동적으로 적응하기보다 기존의 체제를 고수·유지하려는 내부 지향적인 정책을 더욱 강화하는 방식으로 대응한다"며 "대남 대화·관계 개선 제의를 통한 '온건' 전술의 이면에서 군사적 위기 수준을 높이는 '강경' 전술을 추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북한 체제 안정이냐 동요냐
북한 체제의 안정성에 관해 양문수 교수는 "후계 체제 구축 과정에서 정치적 유동성의 증가는 불가피하고,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건강 문제가 최대 변수로 작용할 것이며, 중국 변수도 무시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또한 그는 "시장화의 진전은 중장기적으로 보면 체제 불안정성이 커지는 요인으로 작용하지만 반대 방향의 힘도 없지는 않다"고 진단했다.
그러나 양 교수는 "북한체제의 안정이냐 동요냐의 문제와는 별개로 북한의 미래는 북한이 결정한다는 사실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대근 논설위원은 "북한 체제의 안정을 평가하는 가장 중요한 기준은 정권의 계승성 여부"라며 "김정은 후계 과정이 상당부분 진행되고 3대 수령으로서의 위상을 점차 차지하고 있다"며 "북한이 수령제라는 점에서 아무리 젊다 해도 3대 수령에 대한 도전은 상상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 논설위원은 "노동당과 엘리트가 분열했느냐 하는 문제도 중요한 점이지만 현재, 그리고 상당 기간 동안 당과 엘리트의 분열 가능성은 낮다"며 "또한 북한 정권은 체제에 대한 엘리트와 시민의 반대와 저항을 분쇄할 능력과 의지가 있다"고 진단했다.
하지만 박영호 연구위원은 "사회주의 체제에서 성공적인 권력계승자는 대체적으로 실용주의적인 새로운 프로그램을 제시하지만 현재의 북한 체제 아래서는 그러한 탄력성을 찾기 어렵다"며 "변화의 욕구를 강압적 수단과 위기감 조성으로 차단하는 방식은 점차 한계에 봉착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면서 그는 권력 내 파벌이 생기고 김정은이 카리스마적 리더십을 유지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동북아 국제정세와 관련해 주장환 교수는 "중미관계는 중기적으로 '협조'가 대세일 것"이라며 "미·중 양국의 국력에서 현저한 역전이 발생할 때까지, 근대 국제질서의 몰락과 새로운 국제질서가 창출될 때까지 이러한 추세는 계속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주 교수는 "동북아 국제정세 변화의 핵심 키는 남·북한이 쥐고 있다"며 "중국의 부상으로 인한 장기적인 국제정세의 변화는 남한 외교의 일정한 전환을 요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남북관계 개선을 통한 동북아 국제성세 변화에 대한 주동적인 위치를 확보하고, 일방적인 친미 노선을 탈피하며, '용중(用中)' '용미(用美)' 논선으로 전환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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