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씨는 2010년부터 이마트 A점에서 호봉제를 적용 받는 도급 사원으로 일해 왔다. 열심히 일한 대가로 매년 한 등급씩 호봉이 상승했고, 이에 따라 연봉도 매년 조금씩 올랐다. 그렇게 햇수로 4년째 일하고 있는 김 씨가 지난달 받은 월급은 세전 180만 원대(월할 상여 제외).
하지만 1일 이마트는 김 씨가 그간 쌓아온 근속연수를 모두 무시하고, '연봉'직 직영 사원으로 '신규' 채용했다. 게다가 이날 새로 쓴 근로계약서에는 "최초 입사일로부터 3개월 동안 수습 기간을 두며, 수습 기간 중 근무태도 등에 따라 계속 근무에 부적합하다고 판단될 경우 계약을 해지키로 함"이라는 별도 조항까지 붙었다. "3년 일한 건 온데간데없이, 갑자기 수습으로 '초기화' 됐네요"라고 김 씨는 말했다.
김 씨는 더욱 큰 문제는 자신이 향후 임금 상승이나 승진을 기대할 수 없는 '전문직2' 직군으로 편제됐다는 점이라고 설명했다. 이마트는 전체 정규직 직원을 △공통직 △전문직1 △전문직2로 구분한다. '전문직2'는 승급이나 승진이 없어, 고용조건이 정년까지 고정되는 직군이다. '전문직1'이 받는 임금의 64퍼센트 수준을 받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에 따라 김 씨가 이날 확인한 근로계약서상 세전 월 급여는 140여만 원(월할 상여 제외). 기본급이 50만 원대고 나머지는 각종 수당으로 구성돼 있다. 여기에 상여금을 분할해 다달이 지급받더라도, 한 달 급여는 4인 가족 최저생계비(154만6399원)를 간신히 넘는다.
김 씨는 "말만 정규직이지, 그냥 정년이 보장된 저임금 아르바이트"라며 "이제 나는 이마트의 정규직 노예가 됐다"고 말했다.
▲ 이마트 본사. ⓒ연합뉴스 |
"전환 후 근로조건 하향…파견법 '또' 위반"
4월 1일자로 직영 사원이 된 이마트 직원들의 급여액, 급여제도 등의 근로조건이 하도급 업체에 소속돼 있을 때보다 오히려 하락했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이마트 정상화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는 이날 보도자료를 내고 이 같이 주장하며, 이는 이마트가 직영 전환 대상자들을 일방적으로 '전문직2'라는 직제에 일괄 편제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앞서 이마트 측은 1만789명에 대한 직영 전환을 지난달 발표하며, "전환이 완료되면 신규 채용된 직영 사원들의 연소득이 평균 27퍼센트 상승할 것"이라고 밝혔다. 지난달 29일에는 "직영 전환 대상자들의 처우나 신분이 이전보다 하락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민주통합당 장하나 의원 측에 재차 밝히기도 했다.
하지만 공대위 소속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권영국 변호사는 "공언과 달리, 근로조건 하락 사례가 발견되고 있다"며 "이는 이마트가 파견법을 또다시 위반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권 변호사의 설명에 따르면, 불법 파견을 사용하다 적발돼 사용자가 파견근로자를 직접 고용하는 경우, 사용자는 파견법 제6조에 따라 직접 고용 대상자의 근로조건이 기존보다 저하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권 변호사는 "종전 고용업체로부터 근속연수에 따른 호봉 승급 등을 적용받았던 도급 사원들이, '전문직2' 사원이 됨과 동시에 이를 적용받지 못하게 됐다"며 "이는 근로조건 저하를 금지한 파견법 규정을 위배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전환 대상자들에게 수습 기간 3개월이 새로 발생한 것 역시 파견법 위반이라고 권 변호사는 지적했다. 그는 "이번 이마트의 직영 전환은 불법 파견을 '시정'한다는 의미인데, 수습 기간을 둔다는 것은 시정의 의미를 퇴색시키는 행위"라며 "근로계약서에 적힌 대로 전환 대상자들에게 수습 기간(3개월)에 급여의 85퍼센트를 지급한다면, 이 역시 파견법 위반"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신세계 홍보팀 관계자는 3개월 수습 기간을 두는 것과 관련해 "모든 정규직 입사자가 거치는 과정"이라며 "계약서 문서대로 급여의 85퍼센트가 지급될 것이고, 근무태도 등에 따라 계약 해지 가능성도 열려 있다"고 말했다.
급여 수준이 하락한다는 주장에 대해서 이 관계자는 "성과급과 상여금을 포함하면 연간 총소득이 27퍼센트가량 상승하도록 급여 조건을 만들었다"며 "급여 하락은 없으며, 전문직2도 매년 물가 상승에 따라 기본급이 오른다"고 반박했다.
1600여 명(15퍼센트) 정규직 전환 포기 또는 거부…왜?
이마트는 이날 직영 사원으로 신규 채용이 확정된 사람은 9100명이라고 발표했다. 지난달 발표한 대상자 1만789명 가운데 약 15퍼센트(1600여 명)가 직영 전환을 포기하거나 거부하고 이마트를 떠났다는 얘기다.
실제 기자가 지난 한 주간 만난 이마트 직영 전환 대상자들 중 상당수는 급여 조건 하락 등의 이유로 퇴사를 결심하거나 고민하고 있었다.
이마트 B점에서 2년째 일해 온 이봉규(29·가명) 씨는 퇴사 결심 이유를 "이마트에서는 미래를 바라볼 수 없어서"라고 말했다. 그는 "대기업인 이마트에서 일하면, 먹고살 수는 있을 줄 알았는데"라며 "하지만 연봉 1500여만 원으로는 그럴 수 없을 것 같아, 다른 일자리를 알아보려고 한다"고 했다.
C점에서 3년째 일했던 박지민(가명) 씨는 "급여 하락도 문제지만, 부당한 대우도 더는 견딜 수 없다"며 "파견 직원이었을 때도 기본적으로 하던 일에 더해 각종 잡무를 시켜 괴로웠는데, 이제 직영 사원이 됐으니 저임금을 주며 마음껏 부려먹을 것"이라고 퇴사 결심 이유를 들었다.
퇴사를 결심한 이들 중 상당수는 그러나 재취업이 잘되지 않을 것이란 우려를 하고 있었다. 박지민 씨는 "요즘 같은 불경기에 20대도 아닌 내가 재취업을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며 "아마 다른 곳을 찾더라도 또 비정규직일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비정규직이 되더라도, 처자식 먹여살릴 돈을 벌어야지 않느냐"는 말고 박 씨는 덧붙였다.
이마트 공대위 역시 유사한 문제 제기를 했다. 공대위 측은 "이마트 측의 기존 발표대로 직영 사원이 됨으로써 연소득이 평균 27퍼센트 상승하는 것이라면, 어째서 1600여 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직영 사원이 되기를 마다한 것이냐"며 "이 많은 사람들이 이마트를 떠나야 했던 이유를 이마트는 스스로 돌이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공대위는 고용노동부를 상대로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이들은 "고용노동부는 이마트가 불법 파견을 제대로 시정했는지, 당초 고용노동부에 제출한 시정 계획을 이행했는지를 즉각 점검해 공개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이마트 노조 전수찬 위원장은 "노동조합 가입 인원 수를 늘려, 전환 대상자들에게 생기고 있는 불이익에 적극 대응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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