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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를 읽는 일본인들이 어쨌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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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를 읽는 일본인들이 어쨌다고?

[김성민의 'J미디어'] 일본과의 소통에 게으른 한국의 진보 언론

'폭도들, 신문사를 습격'

지금 다시 적어 놓고 봐도 참 불편한 표현이다. 하지만 그랬다. 2008년 서울이 '촛불'로 한참 뜨겁던 그때, 소위 일본에서 진보언론으로 불리는 신문의 기사 제목이었고, 서울을 바라보는 도쿄의 싸늘한 시선이었다.

그로부터 1년 후,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소식을 접하고 급히 서울로 날아갔던 건 물론 그 갑작스런 죽음을 추모하기 위해서였지만, 한 편으로는 두 눈으로 직접 보고 확인하지 않으면 도쿄에서는 아무 것도 알 수 없을지 모른다는 불신과 위기감 때문이었다.

사실 지난 수 년 간 한국에 대한 시선과 태도의 변화는 놀라운 것이었다. '겨울연가'와 삼성과 김연아를 통해 'Made in Korea'는 '한류' 라는 격상된 지위를 얻었고, 미디어는 일본 사회의 지난한 현실과 약진하는 한국의 이미지를 대비시키는 일에 기꺼이 자존심을 허락했다.

무엇보다 일상에서 느끼는 일본인들의 호감은 그 변화를 실감하기에 충분했다. 고작 수 년을 겪은 필자가 이럴 진대, 수십 년 간 마늘 냄새를 조심스러워하며 살아야 했던 수많은 자이니치(재일조선인)들에게 그 변화가 어떤 것일지는 상상조차 하기 힘들다.

하지만 그럴수록 의문은 남는다. 극심한 경쟁 구조가 '역동성'으로, 재벌 중심의 기업 문화가 '성장동력'으로, 정치 지도자의 통치 방식이 '리더십'으로 미화되는 한국의 이미지 속에서 왜 '그들'은 '폭도'여야 했을까.

극심한 경쟁 구조와 재벌 중심의 기업 문화와 정치 지도자의 통치 방식이 사실은 한국 사회가 행복해지지 못하는 거대한 벽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이야기하는 목소리는 왜 없는 걸까. 촛불은 폭도들의 폭동이 아니라 시민들의 자발적인 정치 참여이고 소통을 시도하는 방식이었다는 걸 이해할 논의의 장은 왜 없었던 걸까.

일본의 주요 언론사들이 한국의 보수 언론과 제휴관계를 맺고 있는 구조적인 문제도 있을 것이다. 경제 침체 속에서 나날이 보수화되어 가는 일본 미디어의 성향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또 하나의 이유를 찾자면 그건 바로 한국 진보 언론의 게으름과 무관심이다.

▲ 인터넷 조선일보 인터넷판 화면 ⓒ조선일보 화면 캡쳐

일본에서 한국의 뉴스를 전하는 가장 적극적으로 전하는 언론사는 <조선일보>이다. 적극적으로 한국에 관한 정보를 얻고자 하는 일본인들에게 <조선일보 일본어판>은 오아시스와도 같은 곳이라고 한다(<조선일보>가 일본어 서비스를 시작한 건 2000년이고 2005년에 지금의 <조선일보 일본어판>을 자회사로 설립했다).

그들은 <조선일보 일본어판>을 통해 한국에 관한 의제와 정보를 얻는다. 그렇게 얻어진 의제와 정보들이 한국에 대한 시선과 태도가 되는 것은 물론이다. 그리고 그 중 적지 않은 사람들은 오늘도 '<조선일보>가 좋아서'가 아니라 '<조선일보> 밖에 없어서' 본다.

반면 일본 사회에서 한국 진보 언론의 목소리는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목소리가 없으니 영향력이 있을 수 없다. <한겨레 사랑방>과 같은 고마운 공간도 있지만 그건 독자들의 자발적인 '팬클럽'이다. 한국의 진보 언론은 일본인들의 말을 퍼가기는 해도, 그들에게 직접 말을 걸지는 않는다. 일본의 진보적 지식인들은 상대해도, 보통사람들은 상대하지 않는 것이다.

▲ 일본 <교도통신>이 지난 2월 7일부터 오픈한 한글 사이트 ⓒ교도통신 화면 캡쳐

<교도통신>이 한국어 서비스를 시작했다. 그걸 보면서 한국 진보 언론의 목소리가 정식으로 번역될 날은 언제쯤일까 생각했다. 독자적인 서비스가 힘들다면 연대를 하면 될 것이다. <아사히신문>, <요미우리신문>, <니혼게이자이신문> 등이 공동 설립한 인터넷서비스 <아라타니스(あらたにす, http://allatanys.jp)> 와 같은 모델도 있다.

지난 10년 간 한류가 만들어 놓은 이미지와 <조선일보>와 같은 미디어를 통해 수많은 일본인들이 한국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장담컨대 그 중 적지 않은 사람들은 이제 지금까지와는 '다른 이야기'를 들을 준비가 되어 있다. 미화나 폄하가 아닌 비판과 대안을 말이다. 당연하다. 그게 한국과 일본이 처한 현실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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