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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 혁명은 '인터넷 혁명'이 아니다"

FT "SNS 영향력 과대평가…혁명의 보편적 요소 주목해야"

이집트 민주화 시위의 주요한 요인 중 하나로 꼽히는 것이 트위터, 페이스북 등 이른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다. 카이로 타흐리르(해방) 광장에서 대규모 시위를 열자는 주장이 처음 제기된 곳도 구글 임원 와엘 그호님이 만든 페이스북 페이지 '우리는 모두 칼레드 사이드다'였다. 칼레드 사이드는 지난해 이집트 경찰에 의해 구타당해 숨진 절은이의 이름이다.

분명 SNS는 시위대의 주장을 시민들에게 전파하고 시위를 조직하는 데 상당한 역할을 했다. 시위가 장기화될 때 새로운 동력을 공급한 것도 SNS였다. 이 때문에 한편에서는 이집트 시민혁명을 '인터넷 혁명', '페이스북 혁명'으로 부르자는 주장도 나온다.

그러나 이같은 SNS의 기여가 과대평가된 측면이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의 칼럼니스트 기든 라흐만은 15일자 칼럼 '이집트 혁명에 대한 감상'에서 이집트 국민들 중 44%가 문맹 또는 반(半)문맹 상태에 놓여 있고 SNS를 사용할 수 있는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교육을 잘 받은 소수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라흐만은 '이집트 혁명'은 단지 인터넷에 의해 가능했던 것이 아니며 그보다는 독재와 부패에 대한 분노, 중산층의 좌절과 빈민들의 절망 등 좀더 보편적인 요소들에 주목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한 그는 무바라크 정권의 통치를 겪는 동안 이집트의 야권 세력은 약화됐고 현재 정국을 주도하고 있는 군부도 썩 신뢰할 수 없다며 다소 비관적인 전망을 제시했다. 하지만 그는 '민중의 힘'을 직접 목격한 군부가 쿠데타를 일으킬 공산은 낮다고 보고, 이집트가 터키와 같이 경제발전과 민주화를 모두 이룩할 가능성도 있다고 덧붙였다.

다음은 이 칼럼의 주요 내용이다. <편집자>


▲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15일 칼럼을 통해 이집트의 시민혁명에서 SNS의 영향력이 과대 평가된 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FT>홈페이지 화면캡처

이집트 혁명에 대한 감상(Reflections on the Revolution in Egypt)

미국 언론들은 와엘 그호님을 '이집트 혁명의 얼굴'로 선정했다. 그호님은 모하메드 엘바라데이 전 국제원자력기구 사무총장보다 젊고, 무슬림형제단보다는 덜 무서우며, 영어를 잘하고, 미국인과 결혼했고, 구글의 임원이라는 점에서 서방 독자들에게 '혁명의 낭만성'을 팔아먹기에 완벽한 인물이다. 시위대를 처음으로 타흐리르 광장으로 이끈 페이스북 페이지를 개설했다는 이유로 이집트 당국에 의해 구금됐다가 풀려난 그는 젊은 이집트인들의 좌절을 또렷한 언어로 표현했다.

하지만 이 '페이스북 혁명'에 대해 조심스런 의문이 뒤따른다. 이집트 시위에서 SNS의 놀라운 역할에 대한 평가 때문에, 1789년 프랑스 시민들은 트위터의 도움 없이도 바스티유 요새를 점령했으며 1917년 러시아 볼셰비키 당원들이 상트 페테르부르크의 겨울궁전을 점령하러 가는 길에 페이스북에 사진을 올리려고 잠시 발걸음을 멈추지 않았다는 사실은 잊혀진 듯 보인다.

이집트 혁명은 단지 인터넷에 의해 일어난 게 아니며, 역사적으로 혁명에 불을 붙인 많은 공통적 요소들에 의해 가능했다. 공통의 요소란 부패한 독재정권과 그 하수인인 비밀 경찰에 대한 증오, 부상하는 중산층의 좌절, 빈민들의 절망과 같은 것이다. 중요한 것은, 국제적으로 이집트 혁명의 얼굴이 된 상대적으로 젊고, 잘 교육받았으며 똑똑한 '페이스북 세대'는 전체 이집트 사회의 일부분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이집트는 인구의 44%가 문맹 또는 반문맹 상태에 놓여 있으며, 40%의 국민이 하루 2달러 미만의 수입으로 연명하는 나라다. 낮은 임금과 식료품값 상승, 높은 청년실업률은 많은 사람들이 좌절 상태에 빠져 있음을 의미한다. 이제 좀더 자유로운 정치적 분위기 속에서 이들의 목소리가 들리고 있다. 하지만 이집트 정부는 이미 많은 재정 적자를 지고 있기에 이들의 불만을 달래 줄 수도 없다.

무바라크 정권의 노력으로 인해 이집트 시민사회는 매우 약화됐다. 언론의 입에는 재갈이 물려졌고, 사법부도 대부분 정부의 통제 하에 있었으며 정치적 반대 세력의 존재도 거의 없었다. 무바라크의 퇴진 이후 사태를 관리하고 있는 군은 단연 가장 강력한 국가기구였으며, 가장 잘 조직된 야권 세력인 무슬림형제단은 민주주의보다는 이슬람주의에 대해 더 관심이 있어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이집트에서는 정당 설립이 허가됐고 총선과 대선을 치를 준비를 하고 있다.

1989년 공산권 붕괴 당시 동유럽의 혁명이 이웃 서유럽을 본받은 것과는 달리, 이집트의 민주주의자들은 자신들의 귀감이 될 지역적 모델을 갖고 있지 못하다. 하지만 민주주의로의 전환은 세계의 다른 지역들에서 많이 있었고, 이런 사례들이 현재 이집트가 직면하고 있는 도전에 힌트가 될 수 있다.

사회의 부유한 정도는 민주주의의 지속성에 매우 중요하다. 한 연구는 1인당 국민소득이 6000달러 이상 되는 국가에서 민주주의가 실패하는 경우는 드물지만, 1500달러 미만의 국가에서는 민주주의가 살아남기 힘들다는 결과를 제시했다. 이집트의 1인당 국민소득은 2800달러로 인도네시아와 비슷한 수준이다. 인도네시아에서는 지난 10년 동안 민주주의 체제가 유지돼 왔다. 비록 부패와 종교적 불관용이라는 흠은 있었지만 말이다.

터키와 파키스탄, 태국에서는 민주주의와 함께 강력한 군부가 병존하고 있다. 이 세 나라 모두 민주주의는 종종 군사 쿠데타에 의해 방해받는다. 터키와 태국은 이제는 그런 단계를 벗어난 것으로 보이지만 좀더 가난한 나라인 파키스탄의 민주주의는 아직 취약하다.

하지만 이집트(군대)는 터키나 파키스탄에서 일어난 어떤 경우보다 더 극적인 '피플파워'(민중의 힘)를 목격했다. 따라서 이집트 군부가 민간 정부를 뒤엎으려 하지는 않을 것이다.

만약 이집트 군이 약속을 지켜서 공정한 선거가 치러진다면 이 나라의 정치적·사회적 세력들의 판도가 좀더 명료하게 정리될 것이다. 이집트 사회는 매우 젊은 사회다. 지난 30년 동안 이집트의 인구는 두 배 가까이 늘어 8000만을 넘어섰다. 또한 이집트는 도시화가 점점 더 많이 진행되는 나라이며, 최근 종교적인 부흥이 일어나기도 했다.

미국 여론조사기관 '퓨 리서치 센터'의 최근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이집트 국민의 80%가 간통죄에 대한 투석형(돌을 던져 죽이는 처벌)에 찬성했다고 한다. 이는 '(이슬람) 근본주의의 이집트'가 선거에서 '페이스북의 이집트'를 누르지 않을까 하는 우려를 뒷받침한다.

또 파키스탄과 터키, 태국의 사례를 볼 때, 교육 수준이 높은 도시 중산층은 더 못 배우고 가난한 이웃들의 힘을 강화시켜주는 민주적 선거의 결과를 불편해 한다. 태국은 지난 수 년 동안 시민들 간의 충돌에 시달렸다. 농촌에 기반을 둔 '레드 셔츠' 시위대는 부유한 도시민들인 '옐로 셔츠'와 대립을 빚었다. 터키의 세속적 엘리트들은 온건 이슬람주의 집권당인 국민개발당(AKP)에 대해 깊은 의심을 가지고 있고, 교육 수준이 높은 파키스탄인들은 그들의 무능하고 폭력적인 정치 시스템에 대해 절망하고 있다.

만약 운이 좋다면 이집트는 터키와 같이 강력한 이슬람주의 정당과 효율적인 민주정치 체계를 수립하고 경제 발전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만약 사태가 매우 나빠진다면 이집트의 미래는 파키스탄과 같은 모습이 될 수도 있다. 가난하고, 정치체제는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며, 근본주의자들과 세속주의자들과 강력한 군부가 사회를 분열시키고 있는 그런 모습 말이다. 아직 이집트는 터키만큼 부유한 나라는 아니지만 파키스탄보다는 잘 살고 도시화도 많이 진행됐다. 아마도 이집트의 미래는 (터키와 파키스탄) 그 사이 어딘가에 있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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