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바라크의 퇴진을 요구하는 수십만명의 민주화 시위를 '소수 불평분자들의 소요'로 깎아내렸던 친정부·관영 언론들이 시위대 지지 쪽으로 돌변했다고 <AP> <AFP> 등 외신들이 전했다.
카멜레온같이 변신한 매체는 국영 <알-닐> TV가 대표적이다. 시위 18일간 카이로 타르히르 광장의 함성을 외면하고 나일강의 풍경만 내보냈던 이 방송은 무바라크가 사임한 다음날인 12일부터 수천명의 시위대가 환호하고 있는 대통령 관저 앞에 기자를 내보냈다. 이 기자는 마이크를 잡고 "지금 이 순간 국민들은 자유를 만끽하고 있다"고 말했다.
국영 TV 방송은 또 "위대한 혁명을 이뤄낸 이집트 국민에게 축하의 말을 전한다. 이집트 방송은 국민의 것이며 국민에게 봉사할 것이다"라는 내용의 관영 <중동통신사> 성명도 보도했다.
무바라크를 옹호하던 대표적인 친정부 언론 <알-아흐람>도 1면 머리기사의 제목을 "민중이 정권을 몰아냈다"로 뽑았다. 이 신문은 이번 혁명은 페이스북이 이끌었다면서 젊은이들의 참여를 확대시킨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찬양하기도 했다.
관영 일간 <알-곰후리아>는 사설에서 "과거 체제의 사기꾼들이 이집트를 착취했다"며 무바라크 대통령 체제를 비난했다.
▲ 무바라크를 옹호했던 이집트 최대 신문 <알아흐람> 홈페이지 |
이집트의 관영·친정부 언론들은 시위가 이어지던 18일 동안 시민들의 표적이 됐다. 시위대들은 국영 TV 방송을 송출하는 이집트 정보부 앞에서 최대 규모의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이들은 아나스 알 피키 정보장관이 시위대에 반대하는 언론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며 정보부 청사를 점거하려고도 했다.
무바라크의 퇴진을 불과 몇 시간 앞둔 시간에는 시위대가 국영 방송사를 둘러싼 채 "거짓말쟁이들이 여기 있다. <알-자지라>는 어디 있느냐?"고 외치기도 했다. 이집트 정부는 <알-자지라>가 시위대에 동조하는 보도를 하고 있다며 지속적으로 탄압해왔다. 많은 이집트인들은 시위 초기 정부가 인터넷과 휴대전화를 차단했을 때도 <알-자지라>의 생방송을 보고 거리로 나왔다고 말했다.
친정부 언론들이 무바라크를 무조건 옹호하자 내부의 불만도 터져 나왔다. 무바라크 사임 하루 전 <알-아흐람>의 기자와 편집자들은 시위대를 부정적으로만 그리고 있는 편집국장의 해임을 요구했다. 그들은 <알-아흐람> 1면에 대국민 사과 성명을 실을 것을 요구하기도 했다.
이집트의 독립 언론인인 히샴 카삼은 <AP> 통신에 언론들의 갑작스런 태도 변화는 생존을 위한 몸부림이라면서도 "(그러나) 그들은 서서히 몰락하고 있다. 1년 쯤 뒤면 무너질 것이다. 모두 끝났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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