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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레스타인 페이퍼' 폭풍, 중동 평화협상 뒤흔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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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레스타인 페이퍼' 폭풍, 중동 평화협상 뒤흔들어

협상대표들 '투항적' 협상에 아랍권 분노

팔레스타인 자치기구(PA) 고위 관계자들이 이스라엘과의 평화협상에서 팔레스타인인들의 뜻과 배치되는 대폭적인 양보안을 제시했다는 사실이 속속 드러나면서 아랍권이 들썩이고 있다.

아랍권 위성방송 <알자지라>와 영국 일간 <가디언>은 1999년부터 2010년까지 양측의 협상 내용을 담은 비밀문서 수천 건을 확보해 23일 일부를 공개한데 이어 24일에도 충격적인 사실을 보도했다.

600만 난민 중 1만 명만 수용?

이날 공개된 문서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부분은 팔레스타인 협상 대표들이 1948년 이스라엘 건국 당시 해외로 쫓겨난 팔레스타인 난민 500~600만 명 중 1만 명만 돌아오는 것도 수용할 수 있다고 비밀리에 밝혔다는 내용이다.

팔레스타인 난민들의 이른바 '귀환권' 문제는 동예루살렘 지위 및 팔레스타인 땅 내에 있는 이스라엘인들의 정착촌 문제와 더불어 양측이 첨예하게 맞서는 부분이다. 이스라엘은 난민들이 귀환해 원래 살던 땅(현 이스라엘 영토)에 돌아오는 것에 반대한다. 이스라엘을 '순수 유대 국가'로 만들겠다는 구상이 차질을 빚기 때문이다.

반면 팔레스타인인들은 고향에서 추방된 난민들에게 고향으로 돌아갈 권리가 있다고 주장해 왔다. 자치정부(PA)도 공식적으로는 같은 입장이었다. 하지만 PA 지도부가 실제 협상에서는 1만 명만 수용할 수 있다고 말한 사실이 드러남으로써 주민들을 기만했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1만 명 수용'보다 적은 숫자를 말할 때도 있었다. 2009년 3월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의 마무드 압바스 수반은 사적인 자리에서 난민들이 한꺼번에 돌아오는 것에 반대한다면서 "500만 혹은 100만이 돌아와도 이스라엘은 끝나기 때문에 그걸 요구하는 것은 논리적으로 맞지 않다"며 양보 의사를 피력한 것으로 확인됐다.

압바스 수반은 또 이스라엘이 5년에 걸쳐 난민 5000명을 받아들인다는 제안에 찬성했다고도 말했다. 이스라엘은 그 후 수용 가능한 난민 수를 2만5000까지 확대한 것으로 또 다른 문서에서 나타났다.

사에브 에레카트 팔레스타인 협상 대표는 2009년 2월 조치 미첼 미국 중동특사와 만난 자리에서 "난민 문제에 관한 논의는 합의점에 이르렀다"고 말했다. 그는 또 2010년 1월 이스라엘에 난민의 "상징적인 숫자"만 귀국해도 좋다는 제안을 하기도 했다. <가디언>은 어떤 문건에서는 매년 1만 명씩 10년 동안 10만 명만 이스라엘이 수용한다는 합의도 있었다고 전했다.

▲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서 열린 반 이스라엘 시위 장면 ⓒ뉴시스

'순수 유대 국가' 요구에도 '백기'

협상에 나섰던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 관계자들이 이스라엘을 순수 유대 국가로 만들어야 한다는 요구를 수용했다는 사실도 비난의 대상이 되고 있다.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이 각각 나라를 세울 경우 이스라엘을 유대 국가로 만든다는 것은 이스라엘 땅에 살고 있는 130만 팔레스타인인들을 쫓아내겠다는 의미다. 이에 따라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는 이스라엘이 특정한 종족적·종교적 성격을 띠는 국가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같은 공식 입장은 실제 협상 테이블에서 자취를 감췄다. 에레카트 대표는 이스라엘 협상단을 만난 자리에서 "당신의 나라를 유대 국가라고 부르고 싶으면 그렇게 해도 된다. 문제될 게 없다"고 말했다고 <가디언>은 전했다.

또한 이스라엘은 이스라엘에 사는 아랍인들의 거주지와 요르단강 서안(웨스트뱅크) 점령지에 있는 유대인 정착촌을 맞교환하자고 제의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에 대해서는 팔레스타인 측이 거부했다.

<가디언>은 이 외에도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 등 미국 측 당국자들이 압바스 수반과 살람 파야드 총리가 아닌 팔레스타인 협상단은 인정할 수 없고, 다른 사람들이 나온다면 PA에 대한 자금 지원을 끊겠다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미국과 이스라엘에 '고분고분'한 압바스 수반만을 상대하겠다는 뜻이다.

한편 부시 미 행정부 당시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은 2008년 팔레스타인 난민들을 칠레, 아르헨티나 등 남미 국가에 정착시키자는 안을 제시한 것으로 드러났다.

<알자지라>와 <가디언>이 공개한 문서에 따르면 이스라엘 측은 한 치도 양보할 수 없다는 고집스런 태도를 보였고, 미국은 이스라엘의 입장만을 일방적으로 두둔했다. 그러나 아랍권 민심은 굴욕적이고 투항적인 태도를 보인 팔레스타인 협상 대표들을 더 강하게 비난하는 분위기다.

이에 위기감을 느낀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는 공개된 문서는 대중들을 오도하기 위한 '프로파간다'라고 비난했다. 압바스 수반은 모종의 음모가 있다고 말했고, 에르카트 대표는 "거짓말 투성이"라고 비난했다.

그러나 PLO의 고위급 소식통들은 이번에 공개된 문서가 진짜임을 확인했다고 <가디언>은 보도했다.

이런 가운데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를 지지하는 주민들은 23일 웨스트뱅크에 있는 <알자지라> 방송국 사무실에 몰려가 집기를 부수는 등 난동을 부렸다고 이스라엘 일간 <하레츠> 등 현지 언론이 24일 전했다. 250여명에 이르는 젊은이들은 "알자지라는 스파이"라는 구호를 외쳤고 이스라엘 국기 위에 '알자지라'라고 쓴 뒤 불태우기도 했다.

미국은 이번 일로 평화협상에 난관이 예상되지만 양측과 계속 접촉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필립 크롤리 미 국무부 공보담당 차관은 문건 공개에 대해 "중동 상황을 더욱 어렵게 만든다는 것을 부인하지 않겠다"며 "이번 문제가 큰 도전이 되겠지만 우리의 전체 목적을 변화시키진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문건 공개로 평화협상 재개는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의 중동 전문가인 하임 말카는 "(유화적이라는 비판을 받아온) 압바스 수반이 협상력뿐 아니라 정치적으로도 공격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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