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의 <슈피겔> 인터넷판은 19일(현지시각) "빅토르 오르반 헝가리 총리가 유럽 정치에서 '왕따'가 되고 있다"며 "이날 열린 유럽 의회에서 의원들은 새 미디어법과 관련해 오르반 총리를 강하게 비난했다"고 보도했다.
새해부터 시행 중인 헝가리의 새 미디어법은 국가기구인 미디어위원회가 '균형을 잃거나 도덕적이지 않은' 보도를 했다고 판단하면 해당 신문, 방송, 인터넷 매체 등은 최고 2억 포린트(약 11억 원)의 벌금형을 선고받을 수 있다는 내용이다.
또 미디어위원회가 문서들을 열람하고 국가 안보와 관련된 사안의 경우 취재원 공개를 강요할 수 있도록 해 국가에 의한 언론 통제의 우려를 낳고 있다.
<슈피겔>에 따르면 오르반 총리는 이날 오전 10시 36분경 유럽 의회에서 연설을 시작했지만 미처 인사말을 마치기도 전에 예지 부제크 의장이 그의 연설을 중단시키고 나섰다. 의회 내 녹색당 소속 의원들이 일제히 자신들의 입에 테이프를 붙이며 '검열'이라고 쓰여진 피켓을 들고 시위를 시작했기 때문. 이는 헝가리의 새 미디어법에 대한 항의의 뜻이라고 신문은 전했다.
▲ 유럽 의회 내 녹색당 등 진보적 그룹 소속 의원들이 지난 19일 유럽의회에서 빅토르 오르반 헝가리 총리의 연설 도중 이 나라의 새 미디어법이 언론 자유를 침해한다며 항의 시위를 벌이고 있다. ⓒ뉴시스 |
사실 이날의 항의 시위는 미리 예고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앞서 독일 출신의 자유민주당(FDP) 알렉산더 그라프 람스도르프 의원은 헝가리 정부에 "권위주의적 부패"의 위험을 경고했다. 유럽 의회 내 사회주의 계열을 이끄는 마틴 슐츠 의원은 이 나라가 EU의장국을 맡을 자격이 없다고 비난했다. 녹색당의 다니엘 콘-벤디트 의원도 "(헝가리는) 공산주의식 감시‧독재 체제의 전철을 밟고 있다"고 비판했다.
오르반 총리는 그러나 이런 시위는 헝가리 의회에서도 많이 겪어본 것이라며 자신의 나라가 유럽의 스타일에 뒤처지지 않고 있다는 면에서 "기뻤다"고 비꼬듯이 말했다. 그는 대범하게(?) "고향에 있는 것 같군요"(I feel at home)라고 덧붙였다.
시위로 중단된 연설을 재개한 오르반 총리는 연설 도중 미디어법은 "국내적 사안"이라며 이는 EU와는 상관없는 문제라고 주장했다. 그는 "만약 헝가리의 미디어법과 EU의장국 문제를 연계시킨다면, 나도 싸울 준비가 돼 있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그러나 외교적 결례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는다는 듯, 오르반 총리의 뒤를 이어 연설한 주제 마누엘 바로수 EU집행위원장도 헝가리의 미디어법에 대해 비판적 언급을 해 눈길을 끌었다. EU의 행정수반 격인 바로수 위원장은 EU 집행위원회가 헝가리의 미디어법이 EU헌장을 위반하고 있는지 여부를 조사 중이라며 "언론의 자유는 신성한 원칙"이라고 강조했다.
바로수 위원장의 연설 후에도 슐츠 의원 등은 언론의 자유를 옹호하며 오르반 총리에 대한 비판을 멈추지 않았다. 이들은 헝가리 정부가 EU집행위원회의 심의 결과를 기다리지 말고 즉각 새 미디어법을 폐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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