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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이 무너진다고? 그렇다면 더더욱 포용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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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이 무너진다고? 그렇다면 더더욱 포용해야지

[기고] MB, '아버지 부시'처럼 할 수 없나

요즘 한반도 관련 전문가들의 최대 관심사항은 남북대화가 과연 이루어질 것인가이다. 보수성향의 전문가들은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 도발에 대한 북한의 책임 있는 조치와 추가도발 방지 확약, 비핵화에 대한 가시적인 조치가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이는 북의 진정성 있는 태도가 우선이라는 정부의 일관된 주장과 궤를 같이한다.

이에 반해 진보진영의 주장은 북의 진정성을 확인하기 위해서라도 조건 없이 대화의 장으로 나가라는 것이다. 그것이 이명박 정부가 추구하는 실용외교에 부합한다는 것이다. 북한 역시 지난 14일 조국평화통일위원회 대변인을 통해 "일단 대화에 나와 모든 문제를 다 탁상 위에 올려놓고 논의해 보자는 것"이라며 적극적인 대화 의지를 나타냈다.

이렇듯 단시일 내에 남과 북, 보수와 진보 진영간 인식의 차를 좁히기가 쉽지 않음을 전제로, 필자는 정부에게 인식의 전환을 꾀할 것을 주문한다. 엄밀히 말하면 이는 인식의 전환이 아니며, 오히려 이명박 정부의 기존 대북원칙을 강화하고 확장 시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를테면, 이명박 정부가 '선량한 호스피스 자원봉사자'가 될 수는 없는가이다.

이명박 대통령과 외교·안보 참모들은 그동안 북한 정권의 붕괴가 임박했음을 암시하는 거의 종교적 신념에 가까운 발언들을 애써 감추려하지 않았다. 천영우 외교안보수석이 14일 미국 공영방송과 가진 회견에서 이를 다시 입증했다. 정권 핵심부의 이러한 인식은 과거 정부의 정책을 '퍼주기식 햇볕정책'이라며 반감을 가지고 보수의 가치를 내걸고 출범한 정권으로서 택할 수 있는 '반작용(reactionary)'이었다. 진보진영은 그것이 진정 보수인가라고 물었지만 자신들 역시 깊은 성찰 없이 거칠게만 대응해 왔다.

하지만 영리한 보수와 진보라면 정책결정자들의 확신에 찬 김정일 정권 붕괴의 근거에 대해 철지난 이념적 공방만큼은 피했어야 옳았다. 대신, 이명박 정부로 하여금 '임종을 암둔 김정일 정권'에 대해 인본주의적 자비로운 태도와 이에 적절한 예를 갖출 것을 요구하는 것이 진보·보수 모두의 가치에 부합되기 때문이다. 구소련 붕괴 전 아버지 부시 대통령이 그렇게 했다.

로버트 게이츠 미 국방장관이 쓴 회고록에 따르면, 곧 무너지는 소련을 보면서도 부시는 어떠한 승리의 기쁨도 내비치지 않았다. 급박한 순간에도 일체의 위협과 자신감도 드러내지 않았다. 대신에 대통령으로서 냉정함만 유지했다.

소련이 무너지기 2년 전 부시의 소련 정책은 한마디로 말해 포용이었다. 긴박한 상황이 자칫 예측을 불허하는 위험한 국면으로 치달을 수 있었음에도, 결과적으로 예상보다 덜 위험한 경로를 통해 역사에 남는 혁명적인 사건으로 안착시켰다. 이는 중앙정보국(CIA) 국장을 지낸 부시의 노련한 판단력과 절제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 이명박 대통령과 아버지 부시 전 미국 대통령 ⓒ뉴시스

이명박 대통령 역시 못할 이유는 없다. 마지막 가는 길이라도 편하라고 따뜻한 위로와 마음을 전하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이는 일찍이 맹자가 어짐의 극치라 했던 측은지심(惻隱之心)과도 일맥상통한다.

장기간 누적된 경제적 피폐로 실낱같은 희망도 보이지 않는 김 씨 일가 체제를 보면서 북한을 진심으로 감싸 안는 '원초적인 진정성'을 보여주는 것이 중장기 남북관계에서도 바람직하다. 따뜻한 보수, 실용주의 정신은 배척이 아니라 껴안고 함께 가는 것이다. 더군다나 이 대통령은 장삼이사(張三李四)가 아는 독실한 기독교 장로가 아닌가.

그렇다고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이 대화에 나서라는 말이 아니다. 순서가 다소 엇갈리기는 하지만 우선은 남과 북이 만나 천안함 침몰, 연평도 폭격 등에 의견을 교환하라는 것이다. 이왕 늦어진 사과는 그때 받아도 문제없다. 회담을 갖고서도 유감표명이나 재발방지 등을 도출하지 못하는 무능함이 더 심각한 문제이지 사과의 선후(先後) 관계는 아무리 생각해도 비핵화라는 본질과는 무관하기 때문이다.

북한 비핵화를 포함한 근본적인 한반도 문제가 여전히 미국, 중국 등 주변 강대국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풀렸다가 다시 조여지는 비상식적인 구조가 어느새 상식이 됐다. 상황에 따라 예외와 원칙을 교묘하게 뒤섞는 강대국들의 편리한 처신에서 우리가 얻을 것은 많지 않다. 강대국들의 이중 잣대의 불공정성을 극복하기 위해서라도 남과 북은 서로 반 보씩 양보해서 대화를 재개하는 일이다. 미국과 중국에 떠밀려 가는 대화의 모양새는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어쨌든 남북 대화의 필요성은 움트기 시작했다. 더군다나 북한이 대화에 더욱 조급해하는 분위기여서 이 대통령의 북한에 대한 태도도 예전보다 훨씬 누그러졌을 것이다. 현실적으로 대북한 체제가 안정을 유지하고 궁핍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당장이라도 실천 가능한 '레서피'(recipe)를 제공해 줄 수 있는 국가는 한국뿐이다.

물론 북한과의 대화는 김정일 정권의 불확실성을 제거하기 위해서도 불가피하다. 따라서 북한은 회담에서 천안함, 연평도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음을 사전에 명확하게 보여주고, 이명박 정부는 유연한 태도로 화답하면 되는 것이다. 제대로 된 정권이라면 모름지기 그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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