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주간지 <주르날 드 디망쉬>가 이런 내용을 담은 원자력안전방사선방호연구소(IRSN)의 기밀 보고서를 지난 10일 폭로했다. 프랑스는 현재 58기의 핵발전소를 가동 중인 핵발전소 대국이다.
피해 규모 최소 7600억 유로에서 최대 5조8000억 유로
이 잡지에 따르면, IRSN은 2007년 프랑스 북중부 당피에르에 위치한 핵발전소 1기를 대상으로 사고 발생 시 가상 피해 비용을 추산했다. 그 결과 경제 피해를 수습하는 데 드는 비용의 규모는 최소 7600억 유로(1083조 원)에서 최대 5조8000억 유로(8265조 원)까지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보고서는 심지어 "도시 지역에서 이런 사고가 발생하면 피해 규모는 훨씬 클 것"이라고 예측했다.
잡지는 "후쿠시마 사고 이후 프랑스 내에서 핵발전소에 대한 불안감이 커지고 있는 상황에서 이런 보고서가 발견됐다"고 밝혔다. 특히 기밀 보고서가 세간에 폭로되기 3주 전에 IRSN이 "프랑스에서 핵발전소 사고가 일어날 경우 4300억 유로(613조 원)의 사고 수습 비용이 발생할 것"이라고 발표한 바 있어서 문제가 됐다. 의도적으로 핵발전소 사고 비용을 축소해 발표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것이다.
이런 의혹 제기에 각각 다른 두 개의 보고서를 작성한 IRSN의 경제학자 패트릭 모말은 "두 개의 보고서가 각각 다른 상황을 가정하고 작성됐기 때문에 수치의 차이가 발생했다"고 해명했다. 최근의 보고서는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를 바탕으로 작성됐고 2007년의 보고서는 체르노빌 사고를 바탕으로 가상 피해 비용을 추산한 결과라는 것이다.
그러나 모말은 결국 "최근 발표한 보고서에서는 수출과 관광 사업에서 받는 타격을 계산하지 않았다"며 "이를 합하면 핵발전소 사고가 발생했을 때의 실제 피해액은 약 1조 유로로 추산된다"고 인정했다.
5조8000억 유로는 핵발전소 사고가 발생했을 때 피해를 겪게 될 프랑스 인접 국가 주민들의 건강 피해, 환경 피해 등을 모두 추산한 사회적 비용이다. 핵발전소 사고의 영향권인 8만7000제곱킬로미터 내에 거주하는 주민 500만 명의 대피 비용, 방사능 오염 폐기물 처리 비용, 토양 오염 제거 비용만 계산해도 4750억 유로에 달한다.
▲ 신고리 1호기(오른쪽), 2호기(왼쪽). ⓒ연합뉴스 |
"한국에서 핵발전소 사고 나면 경제 붕괴"
특히 보고서는 핵발전소 사고는 불가항력적인 요인에 따라 결과가 달라진다고 지적했다. 보고서는 "피해 규모는 오염의 차이로 인해 달라지는데 이 오염도는 날씨가 좌우한다"고 밝혔다. 날씨가 좋지 않아 바람이 오염 지역으로 직접적으로 불게 되면 최악의 상황이 펼쳐진다는 것.
바람은 핵발전소 사고에 큰 영향을 끼친다. 후쿠시마 사고에서는 바람이 방사성 물질 80퍼센트의 방향을 바다 쪽으로 돌려 일본을 도왔다. 그러나 체르노빌의 사고의 경우 바람이 상황을 더욱 악화시킨 탓에 사람들은 황급히 러시아와 벨라루스로 대피해야 했다. 이에 비교적 바람이 적은 당피에르 지역과 달리 바람이 많이 부는 핵발전소 지역을 대상으로 조사했다면 5조8000억 유로보다 더 큰 규모의 사고 수습 비용이 나왔을 것이란 비판도 나왔다.
이와 관련해 기후변화행동연구소 김미형 객원연구위원은 "후쿠시마 원자로의 폐기와 해체, 핵폐기물 처리에는 40년 이상의 시간과 천문학적인 비용이 소요될 것"이라며 "한국에서 체르노빌이나 후쿠시마 규모의 핵발전소 사고가 발생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지겠는가"라고 우려했다.
그는 "지난해 현대경제연구원은 고리 핵발전소에서 후쿠시마 규모의 사고가 발생하면 반경 30킬로미터 이내에 거주하는 주민 320만 명이 피해를 겪으며 전체 국토 면적의 11.6퍼센트가 제염 대상 지역이 된다는 보고서를 발표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런 상황이 오면 우리나라 경제가 송두리째 붕괴할 정도로 천문학적인 수준의 경제적 피해가 발생하게 된다"고 경고했다.
한편, 국제 환경 단체 그린피스는 델핀 바토 프랑스 환경 장관에게 문제가 된 기밀 보고서 전문을 공개하라고 요구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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