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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 없는 반항' 제임스 딘을 원하나?

[김재명의 월드 포커스] 한반도 전쟁의 승자는 없다

새해를 맞으며 다시 지구촌 평화의 꿈을 그려본다. 특히 남북 합쳐 7500만 명이 두 발을 딛고 사는 한반도의 평화를 생각해본다. 지난 2010년은 천안함 침몰 사건과 연평도 포격전으로 한반도의 긴장 상황이 전보다 훨씬 높아졌던 해였다. 안타깝게도 2011년 새해 들어와서도 남북한의 대결 국면이 누구러질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제임스 딘의 '치킨 게임'

이즈음 한반도 상황을 돌아보면 미국 헐리우드의 '영원한 젊은이' 제임스 딘이 주역을 맡았던 영화 '이유 없는 반항'(1955년)에 나오는 자동차 게임이 떠오른다. 그 영화에선 1950년대에 미국 젊은이들 사이에서 유행병처럼 번졌던 위험한 자동차 놀이가 나온다. 이름 하여 '치킨 게임'(chicken game)이다.

이 게임의 규칙은 단순하고 짜릿하지만 치명적이다. 바로 앞에서 마주 달려오는 자동차를 향해 전속력으로 나아가다가, 충돌 바로 직전에 누가 먼저 자동차 핸들을 꺾느냐로 겁쟁이(chicken)를 가려내는 게임이다. 먼저 핸들을 틀면, 그는 '치킨'으로 손가락질 받는다. 이 '치킨 게임'에서 이기려고 버티다간 자동차 정면 충돌로 양쪽 다 죽거나, 다행히 목숨을 건졌다 해도 일생을 불구로 살아야 한다. 한반도의 남북 지도자들이 그런 상황을 연출해선 안 될 일이다.

미 국제정치학자 케네스 왈츠는 전쟁이 우리 인간에게 아무 도움이 안 된다는 뜻에서 "전쟁에서 누가 이겼느냐고 묻는 것은 샌프란시스코 지진에서 누가 이겼느냐고 묻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전쟁에서 승리란 없으며, 전승국이라 해도 여러 상처(인명과 재산 피해, 환경파괴)를 입기 마련이다. 왈츠는 "그래도 지진과 전쟁은 다르다"고 지적한다. 자연재해인 지진은 우리 인간이 어찌 해볼 수가 없더라도, 전쟁만큼은 인간의 지혜로 막을 수가 있다는 시각에서다.
▲ 한반도 상황이 1950년대 미국에서 유행했던 자동차 치킨 게임을 닮아가고 있다. 치킨 게임은 치명적인 결과를 낳을 뿐 승자는 없다. ⓒ프레시안 자료사진

21세기로 이어지는 폭력의 세기

돌이켜 보면, 우리 인류사는 평화의 역사이기보다는 전쟁사다. 역사책을 들여다보면 "역사는 곧 피의 역사이자 전쟁사"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고대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 그리고 황하강 유역 등에서 문명사회를 이루기 시작한 이래로 전쟁은 그치지 않았다. 특히 20세기는 '폭력의 세기'라 일컬어진다. 과학기술 문명의 발달로 말미암아 수많은 대량살상무기들이 만들어져 숱한 희생자를 낳았다.

전쟁 연구자들의 집계에 따르면, 20세기 100년 동안 최소 1억 명에서 1억8000명 쯤이 죽었다. 제1차 세계대전(1500만 명)과 제2차 세계대전(5000만 명)을 비롯해 크고 작은 전쟁들을 벌인 결과다.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21세기에도 1년에 1000명 이상의 사망자를 낳은 전쟁이 해마다 15개 넘게 벌어진다(2009년 17개, 2008년 16개, 2007년 14개, 2006년 17개, 2005년 17개, 2004년 19개). 훗날 역사가들은 21세기도 폭력의 세기로 일컬을 가능성이 크다.

전쟁이 외교보다 더 큰 이익?

그렇다면 전쟁은 왜 일어나는 것일까. 미국의 정치학자 로버트 리버(조지타운대 교수)는 "전쟁이 왜 일어났는가의 설명은 지금까지 일어난 전쟁의 수만큼 많다"고 했다. 그런데 그 많은 전쟁들을 가만히 살펴보면, "전쟁이 외교보다 더 큰 이익을 가져다준다"는 정치-군사 지도자들의 그릇된 판단과 욕심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게 된다.

2003년 전쟁에 관한 국제법을 어기고 이라크를 침공했던 미국의 지도자들이 좋은 보기다. 그들은 "사담 후세인의 독재에 지친 이라크 민중들이 바드다드로 진격해 들어오는 미군 탱크에게 장미꽃을 던질 것"이란 잘못된 기대감에서 전후 이라크 안정계획을 치밀하게 세우지 않았다. 그런 결정적인 오판은 더 많은 사상자와 전쟁비용 부담으로 이어졌고, 6년 넘게 '이라크 수렁'에 빠져 허우적대야 했다.

일반적으로 한 국가의 정치-군사 지도자들이 내린 정치적 판단(정책)은 그런 판단이 내려진 시점에서 국가이익을 극대화하는 가장 합리적 결정이라고 여겨진다. 정치-군사 지도자들이 전쟁을 벌이기로 결정할 때도 "전쟁이 외교보다 이익"이라는 판단 아래 전쟁을 벌인다. 문제는 마음으로는 전쟁을 바라지도 않는데도 끝내 전쟁으로 치닫는 경우다.

나선이론과 억지이론

이와 관련해 미 정치학자 로버트 저비스(콜롬비아대 교수)는 나선이론(spiral theory)과 억지이론(deterrence theory)이란 서로 다른 잣대로 전쟁이 터지는 이유를 풀이한다.

첫째, 나선이론은 A국과 B국의 갈등이 외교나 협상으로 풀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여러 정치적인 이유로 상대국의 위협과 적대감을 부풀림으로써 끝내 전쟁이 터지는 경우를 가리킨다. A국은 B국이 굴복하리라 기대하면서 공격적인 입장을 나타내지만, 그것이 오히려 B국의 반발을 불러일으키고, 결과적으로 위기가 높아지고 전쟁 양상으로 치닫는다는 것이 나선이론의 뼈대다.

유럽 강국들이 서로 패를 갈라 싸운 제1차 세계대전의 발발 원인은 나선이론으로 풀이된다. 1차대전 초기에 독일황제(Kaiser), 러시아 황제(Czar), 오스트리아 황제(Emperor) 모두 "이번 전쟁이 지난날처럼 제한전쟁으로 빨리 끝나리라"라고 오판했다.

그러나 실제로 전쟁은 4년을 끌면서 25개국이 참전해 총력전을 폈고, 지구전과 참호전 끝에 사망자만도 1500만 명에 이르렀다. 만일 1차대전 당시의 정치-군사 지도자들이 전쟁의 참혹한 결과를 미리 내다볼 수 있었다면, 어떤 형태로든 전쟁을 피하려들거나 평화조약을 맺으려 노력했을 것이다.

둘째, 억지이론은 A국이 침략적인 B국을 유화정책으로 어르고 달래서 전쟁이 일어나는 것을 막으려 들 경우, B국은 더 많은 양보를 얻어낼 요량으로 더욱 공격적이 되고, 막판에는 "더 이상 양보하지 않겠다"는 A국의 경고를 무시해 전쟁에 이르게 된다고 설명한다.

영국의 챔벌린 총리가 날로 발전하는 독일의 공업력에 힘입어 군사력을 키워간 나치 독일에 유화정책을 펴다 끝내는 전쟁으로 이어졌던 제2차 세계대전의 경우가 바로 이러하다. 챔벌린 총리를 비롯한 유화론자들은 히틀러를 달램으로써 유럽의 평화를 이어갈 수 있으리라 여겼다. 챔벌린은 히틀러에게 "당신은 지금 무엇을 바라느냐"고 대놓고 물어볼 정도였다.

저비스 교수는 "(챔벌린 총리가) 전쟁이 아니고는 히틀러의 야망을 저지할 수 없다는 사실을 제대로 간파하지 못했다"고 비판한다. 그는 영국과 프랑스가 (독일군의 군사력이 더 커지기 앞서) 선제공격으로 예방전쟁을 벌였더라면, 보다 신속하고 쉽게 독일군을 격파할 수 있었으리라 믿는다. 그럴 경우 프랑스 파리가 4년 넘게 독일군에게 점령당하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한반도의 치킨게임 막아야

나선모델이든 억지이론이든, 둘 다 전쟁을 벌일까 말까 저울질하는 국가 지도자들의 의지(어떤 목적을 이루기 위해 어느 정도의 비용과 위험을 받아들일 것인가)와 더불어 전쟁으로의 충동을 누르는 것이 중요해진다.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깝다는 말이 있듯이, 국제법을 어기고 전쟁을 벌이려는 유혹은 강하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전쟁은 갈등을 푸는 최후의 수단이 돼야 한다. 갈등을 풀고 평화를 심으려는 노력은 참을성을 요구한다. 어떤 이유로든 전쟁은 피해야 한다. 분명한 사실은 한반도에서 전쟁이 다시 터진다면, 지난 60년 동안 전쟁무기의 살상력이 훨씬 높아진 만큼 6.25 한국전쟁 때보다 훨씬 큰 인명피해를 낳을 것이다.

결론은 단순명쾌하다. 미국의 겁 없는 젊은이들이 벌이던 자동차 치킨게임이 한반도에서 일어나선 안 된다. 치킨 게임은 치명적인 결과를 낳을 뿐 승자는 없다. 미국 젊은이들의 치킨게임을 닮아가는 한반도 상황을 막으려면 이 땅의 시민들이 더욱 똘똘 뭉쳐 반전평화를 외쳐야 할 것이다.

* 참여연대가 발행하는 월간지 <참여사회> 최근호에 실린 글을 수정 보완했습니다.
* 필자 이메일 kimsphoto@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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