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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접대 처벌, 왜 '대가성'이 증명돼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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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접대 처벌, 왜 '대가성'이 증명돼야 하나?

[기고] '떡'을 잘게 썰면 '떡'이 아닌가

건설업자 윤 씨로부터 성접대를 받았다는 고위층 인사들의 실명(實名)과 동영상이 돌아다니면서 급기야 김학의 법무부 차관 내정자가 사퇴를 하고, 사건은 일파만파 퍼져가고 있다. 스탠리 큐브릭(Stanley Kubrick) 감독의 영화 <아이즈 와이드 셧>에서의 상류 섹스파티처럼 가면을 쓰고 술에 취해 집단 정사를 했다고 한다. 정말 '눈이 번쩍할'(Eyes Wide Shut) 노릇이다.

윤 씨는 '골프장 인허가' 등 건설업계의 '수주 브로커'로 활동했고, 그 와중에 21번이나 입건되었지만 단 한 차례도 기소되지 않았다고 한다. 향응의 제공과 성행위도 '뇌물'에 해당되기 때문에, 뇌물죄로 수사가 시작될 것이다. 그런데 정작 성접대와 직무의 '대가성 증명'이 쉽지 않아 처벌되기 어려우리라는 기사가 심심찮게 떠돈다.

▲ 고위층 성접대 의혹을 수사 중인 경찰이 확보한 동영상의 촬영 장소로, 건설업자 윤 모 씨의 별장(강원도 원주시 부론면 소재) 이다. 2분 가량의 동영상을 봤다는 A 씨는 <연합뉴스>와의 전화통화에서 "영상에 나온 곳은 원주에 있는 윤 씨 별장 2층의 바와 가라오케를 겸한 방"이라며 "이 별장을 몇차례 가봐서 내부를 안다"고 밝혔다. ⓒ연합뉴스

뇌물죄에 왜 '대가성 증명'이 필요한가?

형법 제129조제1항은 "공무원 또는 중재인이 그 직무에 관하여 뇌물을 수수, 요구 또는 약속한 때에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년 이하의 자격정지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통설과 판례는 뇌물을 '직무에 관한 부당한 이익'으로 보아, 뇌물과 직무 사이에 대가관계가 필요하다고 해석한다. 그 이유는 형법이 '그 직무에 관하여'라고 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분명 성접대를 받은 고위공무원의 비호를 받아 불법적 로비로 이득을 취했고, 피해자들의 민원으로 입건이 되었다가 고위층의 도움으로 무혐의가 된 것일 텐데도, 그 성접대와 직무행위의 직접적 인과관계를 증명하지 못하면 무죄가 된다. 이러한 논리 전개와 결론이 과연 정의로운가?

비슷한 사례가 있다. 변호사가 여검사에게 벤츠 S350L 자동차와 540만 원짜리 샤넬 백, 신용카드 등을 제공하고, 검사가 그 변호사의 사건을 담당하는 동료 검사에게 청탁을 한 사건이다. 1심에서 징역 3년형이 선고되었다가 항소심에서 무죄가 선고되었다.

그 변호사와 여검사는 불륜관계였다. 그래서 항소심은 '벤츠를 사랑의 정표'로 보아 대가관계가 없다고 판시했다. 덧붙여 벤츠와 샤넬 백을 준 시점 보다 한참 후에 청탁을 했다는 정황도 그 논거로 제시했다.

'무죄 판결'이라는 결과는 보편적인 정의 관념을 가진 많은 국민들에게 치명적인 '정신적 외상'(精神的 外傷)을 입혔다. 그리고 '사랑의 정표'라는 문구는 '트라우마'(Trauma)를 '블랙 코미디'(Black Comedy)로 승화(?)시켰다.

떡을 잘게 썰었다고 떡이 아닌가?

어떤 그룹 회장의 비서실장이 이런 귀띔을 했다. 그 회장님이 수완이 아주 좋다면서, 명절, 생일, 기념일에 항상 미리미리 손을 쓴다는 것이다. 이른바 '떡을 잘게 썰어 체하지 않게 먹인다'는 것이다. 그래서 정작 청탁을 해야 할 때에 따로 뇌물을 주지 않고, 주더라도 '적은 돈'으로 끝낸다고 한다.

몇 년 전 세상을 시끄럽게 했던 '삼성 떡값'도 같은 부류이다. 그 떡값에 직접 상응하는 직무행위를 곧바로 증명하기란 쉽지 않다. 그런데 떡을 잘게 썰었다고 '떡'이 아닌가?

도대체 그 이전에 아무런 관계도 없다가 바로 청탁할 시점에 뇌물이 건네지는 경우가 있을까? 혈연, 지연, 학연 등 인연을 중시하는 우리 사회의 정서 상, 그 공무원에게 아무나 말을 꺼낼 수 있는 게 아니다. 청탁을 위해서는 끈끈한 친분관계가 꽤 긴 시간 동안 지속되어야만 한다. 그런데 재산상 이익의 수수(收受)와 청탁(請託) 사이에 시간적 간극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청탁 시점에 특별한 수수가 없다고 해서 청탁 시점 이전의 금전 수수를 뇌물로 보지 않는 것이 타당한가?

형법 상 뇌물죄를 개정해야 한다

위와 같은 법률 해석은 결국 형법 제129조제1항이 '직무에 관하여'라고 한정하였기 때문이다. 결국 형법의 문언을 그대로 해석하면, 직무와 관련이 없는 '처벌되지 않는 뇌물', 즉 '허용(許容)되는 떡값'이 인정될 수 있다.

그런데 공무원들은 직무와 관련이 없으면 과연 떡값을 받아도 되는가? 도대체 아무런 반사이익도 기대하지 않고서, 공무원에게 돈이나 재산상 이익을 단순한 호의로 그냥 주는 사람이 있을까?

형법은 '극단적인 예외상황'을 '원칙적 규정'으로 전도(顚倒)시켰다. 또한 '허용되는 떡값'이라는 예외는 '댐을 무너뜨리는 구멍'이자, '빵을 부식시키는 곰팡이'다.

요컨대 직무관련성과 상관없이 공무원이 뇌물을 받으면 뇌물죄로 처벌하고, '직무관련성'은 형(刑)을 가중하는 '가중적 구성요건'으로 개정해야 한다. 그리고 그 거래가 정상적인 거래관계라거나 예외적인 호의관계였다는 사실을 피의자들로 하여금 증명케 해야 한다.

법은 그 자체로 '보수'도 '진보'도 아닌 '당대(當代)의 균형점(均衡點)'이다. 법이 그러한 균형에 서 있다고 하더라도 그 집행이 정의롭지 못할 때 부조리가 발생한다. 나아가 한 사회의 부조리는 '정의롭지 못한 법집행'뿐 아니라 '정의롭지 않은 법률'에 의해서도 이루어진다. '정의롭지 않은 법률'은 어떤 선량한 지배자라 하더라도 그를 타락시킬 수 있다. 결국 사회의 진보는 '정의로운 법'을 만들어가는 과정이자, 정의로운 법을 '정의롭게 집행'하는 절차이다.

공무원은 어떤 이유로도 매수되어서는 안 된다. 그리고 이것은 다툼의 여지 없는 '확정적인 정의(正義)'이다. 그러므로 어떠한 예외 없이 뇌물을 받은 공무원은 뇌물죄로 처벌되어야 한다. 거기다 직무관련성이 드러나면 그 형(刑)을 가중하는 것이다. 그래야만 지금의 부패를 폐절(廢絶)시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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