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폴 크루그먼 프린스턴대 교수와 로버트 라이시 같은 진보진영의 저명한 논객들은 "올해 미국 경제는 여전히 지지부진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누구의 예상이 맞는 것일까?
사정을 알고보면 이것은 누구의 예상이 맞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경제가 잘 나가고 있다는 것을 어떤 기준으로 판단하느냐의 문제다. 오닐은 GDP 성장률에 주목한 것이고, 크루그먼과 라이시는 실업률을 중시한 것이다.
미국은 현재 10%에 가까운 고실업률에 시달리고 있다. 크루그먼 교수는 지난 2일 <뉴욕타임스> 칼럼에서 "2.5%가 넘는 성장률에서는 성장률이 1% 포인트 증가할 때마다 실업률이 1%씩 감소한다"면서 "올해 미국 경제가 4% 성장한다고 해도 실업률은 9%대에 머물 것"이라고 지적했다.
▲ 2011년 미국의 경제성장률이 4%에 육박할 것이라는 예상이 나왔지만, 실업률은 9%대에 머물 것이라는 전망에 빛을 잃고 있다. ⓒ로이터=뉴시스 |
특히 라이시는 자신의 블로그에 쓴 'Economic Prediction for 2011: Profits for Wall St, More Pain for Main St'라는 글을 통해 이런 관점의 차이를 잘 보여주었다.
이 글에 따르면, 대기업과 월스트리트의 이익이라는 기준에서 보면 2011년 미국의 경제는 좋을 것이다. 하지만 일반 미국인 노동자들의 기준에서 보면 결코 좋지 않다.
미국의 경제는 이른바 '빅 머니 경제'와 '일반 노동자 가정 경제'로 양분돼 있으며, 그 간극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기업의 이익은 증시의 상승세가 보여주듯 증가할 것이다. 하지만 일반 노동자들의 임금은 오르지 않고, 실업률은 여전히 높고, 주택시장 회복은 정체되고, 소비자 신뢰지수는 여전히 위축될 것이다.
기업의 이익과 일자리의 연결고리가 갈수록 엷어질 것이다. 그 이유는 미국의 대기업은 갈수록 미국의 내수와 노동자에 대한 의존도가 낮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대기업의 이익의 상당부분은 중국, 인도 등 급성장하는 신흥국들의 소비 증가와 미국 노동자의 인건비 축소에서 나온다.
전통적인 경제시스템이라면 기업의 이익 증가는 고용증대로 이어진다. 하지만 미국 경제는 이제 그런 시스템이 아니다. 지난해 연말 크리스마스 대목 경기는 착시현상일 뿐이다. 유통판매자가 최대한 이윤을 낮춰 대대적인 할인가로 박리다매에 나섰던 것이었을 뿐이다.
대부분의 미국인들은 돈이 없다. 그들은 여전히 많은 부채에 시달리고 있으며, 집을 담보로 대출을 받을 수도 없고, 은퇴 이후를 대비해 저축을 시작해야 할 형편이다.
"다우지수 상승세, 해외 판매 증가와 연관"
뉴욕증시의 다우존스 지수가 상승세를 보이는 것은 해외 판매와 관련된 것이다. 제너럴모터스(GM)는 현재 미국에서보다 중국에서 더 많은 자동차를 생산하고 있으며, 전체 판매량의 3분의 2가 해외에서 이뤄지고 있다.
GM 측은 조만간 GM이 생산하는 자동차의 절반 정도가 시간당 임금이 15달러도 안되는 해외에서 만들어질 것이라고 자랑했다. 월마트도 미국에서는 영업이 잘 되지 않고 있지만, 해외에서 활동하는 월마트인터내셔널은 번창하고 있으며, 미국 밖에서는 대대적인 고용 창출을 하고 있다.
제너럴일렉트릭(GE)은 미국 노동자의 인건비는 줄이고 있지만, 브라질에서는 4억 달러를 투자해 1000명의 현지인들을 고용하고, 중국에도 30억 달러를 투자할 계획이다.
'주식회사 미국'은 V자형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투자자와 대부분의 저축을 주식과 채권으로 갖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굉장한 희소식이다. 주가와 보수가 연계된 대기업 임원들과 월스트리트 중개인들에게도 희소식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미국 노동자들은 L자형 침체에 빠져있다. 실물경제와 중소기업들에게는 나쁜 소식이다. 주택가격과 판매도 좋아질 리 없다는 소식으로 저축이라고는 집밖에 없는 모든 사람들에게도 나쁜 소식이다.
주요 대도시 지역들의 주택가격은 3개월 연속 하락세를 보였다. 주택시장은 더블딥에 빠졌으며, 내년까지 주택가격 하락세가 이어질 것이다. 실업사태가 지속되고 있어서 주택대출금을 상환할 수 없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라이시는 "그러니 미국의 실업률은 나아질 수 없다. 올해도 미국의 공식 실업률은 9%대에 머물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어 라이시는 "언젠가 미국이 두 경제로 나뉘어진 현상이 너무나 극심해서 더 이상 무시할 수 없는 순간이 올 것"이라면서 "분열된 미국을 다시 잇기 위한 새로운 진보 운동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왜 힘없는 사람들이 고통의 대가를 치러야 하나"
진보진영에서 존경받는 경제학자 조지프 스티글리츠 콜롬비아대 교수도 3일(현지시간) 신년 칼럼(Common Sense, Not Austerity, in 2011)을 통해 미국의 실업사태에 대해 우려했다.
칼럼에 따르면, 미국과 유럽에서 10% 안팎에 달하는 실업사태가 여전하다. 미국에서는 이미 주택 10%가 압류 처분되었으며, 압류 건수도 증가 추세에 있다. 문제는 새해에도 이들 정부가 잘못된 대응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스티글리츠 교수는 "경제위기를 초래한 것은 민간부문의 실패와 방종이었는데, 그 대응이 공공 부문의 긴축을 요구하는 것이라니!"라고 개탄하면서 "그 결과로 경제회복이 둔화되고 실업률이 용인할 수 있는 수준으로 떨어지는 기간이 더 길어질 것이 거의 틀림없다"고 경고했다.
나아가 그는 미국의 공화당과 상당수의 보수적인 민주당 의원들에 대해 비판을 가했다. 그는 "고통과 고난을 감수하라는 설교가 정치인들 사이에 유행이 되었다"면서 "틀림없이 그것은 고통의 칼끝을 쥐고 있는 사람들이 가난한 사람들과, 후손처럼 목소리를 내기 힘든 사람들이기 때문"이라고 질타했다.
그는 "경제가 살아나려면 누군가는 어느 정도 고통을 감수해야 한다:면서 "하지만 갈수록 왜곡되는 소득분배를 보면 고통을 감수해야 할 사람이 누구인지 분명하다"고 지적했다.
칼럼에 따르면, 미국의 모든 소득 중 4분의 1 가량은 상위 1%가 차지하고, 대부분의 미국인 소득은 12년 전보다 더 감소했다. 이른바 '대안정기(Great Moderation.1982~2007년)'로 불렸지만, 실상은 '최악의 거품경제(Mother of All Bubbles)'였던 이 기간에 대부분의 미국인들은 그 과실을 분배받지 못했던 것이다.
스티글리츠 교수는 "무고한 희생자들과, 거짓 번영에서 얻은 것이 없는 사람들보고 돈을 더 내라고 해야 하는가?"라면서 긴축 정책이 위선적인 정치인들의 주장이라고 비판했다.
스티글리츠는 위기를 초래한 책임을 져야할 사람과 위기 이전에 대부분의 이익을 누린 사람들이 고통을 감수하는 방식에서 위기 극복의 해결책이 있다고 강조했다. 스티글리츠 교수의 주장은 이렇다.
"아르헨티나의 사례에서 교훈 얻어야"
위기 이전에 과대 평가되기는 했지만 인적 자원과 물적 자산 자체는 그대로 있다. 위기로 인해 이 자원들이 위기 이전보다 더 활용되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이 자원들을 제대로 활용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
그 방법은 '채무재조정'이다. 주택소유자들의 부채와 일부 정부들의 부채를 탕감해줘야 한다는 것이다. 돈이 없어 빚을 갚지 못하는 상황이기 때문에 어차피 완전한 자금 회수는 어렵다. 이 처방을 미루면 불필요한 손실이 커질 뿐이다.
1992~2002년 남미의 아르헨티나가 겪은 악몽이 반복되길 바라지는 않을 것이다. 당시 아르헨티나는 IMF 구제금융을 받을 정도의 경제위기 속에 긴축까지 하다가 실업률과 빈곤율이 급증하고 경기침체에 시달렸다.
이후 채무 재조정과 통화가치 절하를 병행하는 정책으로 이례적으로 높은 성장을 달성해냈다. 2003~2007년 사이 연평균 성장률이 9%에 달했다.
그 결과 아르헨티나의 국민소득은 최악의 경제침체였던 2002년과 대비해 두 배가 되었고, 위기 이전 최고 수준보다 75% 이상 증가했다.아르헨티나의 빈곤율도 위기가 정점이었던 때보다 4분의 3 가량 감소했으며, 글로벌 위기 때도 미국보다 잘 해냈다.
스티글리츠는 "이제 우리를 혼란에 빠트리고는, 긴축과 채무재조정 연기를 요구하는 이른바 금융 마법사들의 주장에 귀를 기울이지 말고, 평범한 상식을 따르자"고 말했다.
그는 "고통을 감수해야 한다면, 위기를 초래한 책임자와 거품 경제에서 대부분의 이득을 가져간 사람들이 앞장 서서 고통을 느껴야 한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