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이사장은 "지금 남북관계는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위기 상황에 놓여 있다"며 "올해 들어 많은 젊은이들이 희생됐고 아들을 잃은 부모들이 땅을 치며 통곡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국민들이 불안해하고 있고 우리가 가장 경계하고 염려했던 일들이 현실로 닥치고 말았다"며 "어쩌다가 이 지경이 됐나"하고 탄식했다. 이 이사장은 지난해의 6.15 남북공동선언 9주년 기념식 연설이 "남편의 생애 마지막 연설이 됐다"며 잠시 말을 잇지 못하기도 했다.
이날 행사에는 이 이사장과 김 전 대통령의 차남 홍업씨가 참석했고 행사위원장을 맡은 백낙환 인제대 백병원 이사장이 개회사를 했다. 한스 울리히 자히트 주한 독일 대사와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은 '독일 통일 20년과 한반도 평화통일'이란 주제로 특별강연을 했고 이어 만찬 순서에서 참석자들의 건배사가 이어졌다.
▲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이 2000년 12월 10일 노벨평화상 상장과 메달을 전달받고 있다. ⓒ연합뉴스 |
이 자리에는 민주당 손학규 대표와 박지원 원내대표, 정세균, 박주선 최고위원, 한명숙 전 총리, 장상 전 총리, 권노갑 전 의원 등 민주당 인사들과 과거 정부 관계인사, 자히트 대사, 배우 문성근 씨 등 900여 명이 참석했다. 참석자들은 '햇볕정책이 연평도 사태와 북핵 상황 악화를 불러왔다'는 여권의 주장에 적극 반박하며 "햇볕정책을 지키자"고 외치기도 했다.
김 전 대통령의 수상 10주년 기념행사는 이곳 서울과 독일 베를린에서 동시에 열린다. 주최측은 이는 지난 2000년 김 전 대통령의 '베를린선언'을 기념하는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다. 베를린 자유대학에서 열리는 이 행사에는 임동원 전 통일부 장관이 참석해 8일과 9일 이틀에 걸쳐 두 번의 강연을 한다.
정세현 "독일 콜 총리 '화룡점정', MB 그려놓은 용 그림도 찢어…'강풍정책'"
김대중 정부에서 통일부 장관을 지낸 정세현 김대중평화센터 부이사장은 '독일 통일 과정의 시사점과 교훈'이라는 주제의 이날 강연에서 "한국과 독일은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정책을 추진했지만 독일은 성공한 반면 우리는 분단 65년의 페이지를 넘기고 있다"며 "동급생이 선생님이 된 격"이라고 비유했다.
▲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 ⓒ프레시안(최형락) |
정 전 장관은 "동방정책의 성공과 관련하여 주목할 것은 양독간 왕래·교류·협력 규모가 방대했다는 사실"이라며 "각종 형태로 20년 동안 연 평균 32억 달러 상당의 재화가 동독으로 지원됐다"는 데에 주목했다. 그는 "우리의 경우 독일의 8분의 1에 지나지 않는 연 평균 4억 달러 수준의 대북지원과 경협을 '퍼주기'라고 비난하는 옹졸한 모습을 보였"다고 지적했다.
그는 "매년 200억 달러 어치 음식물 쓰레기를 배출하면서도 북녘에 대한 인도적 지원마저 이명박 정부에서는 갖가지 이유로 완전 중단"되었다며 "이는 이명박 정부가 즐겨 쓰는 '국격'에 안 어울리는 일"이라고 꼬집었다.
그 외에 그는 "'헬싱키 프로세스'가 진행됨으로써 통일에 반대하는 국제적 분위기가 줄어든 것은 독일에게는 행운, 축복이었고 우리에게 부러운 일"이라는 점도 언급했다. 그러나 그는 그러한 국제정치적 환경의 상이함도 문제지만 "더 큰 벽은 국내에 있었다"며 "냉전의식 때문에 햇볕정책에 불만을 가지고 있던 야당과 보수층"을 비판하기도 했다. 이들에게는 "미국이 주도하여 열린 6자회담까지도 비판과 거부의 대상이 되었다"는 것이다.
정부에 대한 비판도 이어졌다. 그는 "야당 시절 동방정책을 다소 비판했던 독일 기독교민주당도 막상 집권한 후에는 13년 동안 추진되어온 동방정책을 그대로 계승하여 집권 7년 만에 통일을 완성했다"며 "동방정책이 그려놓은 용에 눈동자를 찍는 '화룡점정'의 쾌거를 이룩한 것이 독일 기민당이었다면, 이명박 정부는 그려놓은 용 그림을 찢어놓았다"고 정부를 비판했다.
그는 "이명박 정부가 10년 동안 추진되어온 햇볕정책을 통째로 부정하고 역주행하더니 남북관계는 경색되고 악화되었다"며 "남북관계에서 불행한 사건들이 연달아 일어나는 현실 앞에서 안으로는 새삼 정치지도자의 통찰력과 식견의 중요성에 대해 실감하게 되고, 밖으로는 독일을 부러워하게 된다"고 뼈 있는 말을 건넸다.
독일 통일 과정에서 한국이 반면교사로 삼을 점으로 △경제원리를 무시한 화폐통합, △반환원칙에 의한 재산권 처리, △서독 법·제도의 성급한 동독 적용 등을 꼽기도 했다. 그는 "이전 정부의 정책이라 해서 햇볕정책을 전면 부정하고 '강풍정책'을 추진하면서, 사실상 북한붕괴를 전제로 막대한 통일비용을 추산해 놓고 통일세 담론을 선도하고 있는 이명박 정부야말로 독일사례에서 많은 것을 배워야 한다"는 말로 강연을 끝맺었다.
자히트 독일 대사 "한국, 통일 이루는 날 DJ기억할 것"
정 전 장관에 앞서 강연을 가진 한스 울리히 자히트 주한 독일 대사는 "외교적 발언이나 원고를 그대로 읽는 강연은 하고 싶지 않다"며 준비했던 원고를 치우고 "독일인의 한 사람으로서 존경하는 김 전 대통령에 대한 얘기를 하겠다"고 말해 눈길을 끌었다.
▲ 한스 울리히 자히트 주한 독일대사 ⓒ연합뉴스 |
김 전 대통령이 유명한 이유로 "독일과 같은 분단국가의 지도자라는 점 뿐 아니라 민주주의와 자유, 평화의 가치를 실천했다는 점"을 꼽은 자히트 대사는 "한반도의 통일은 햇볕정책으로 이뤄질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통일에 대한 논의는 국내의 반발(dispute)을 불러올 수 있다"며 "이런 사정은 독일도 마찬가지였다"고 지난 날의 독일 상황을 언급했다. 그는 "당시의 기민당 정권은 보수정권이었지만 동방정책을 추진했고 보수정당들도 이를 지지했다"며 "이는 독일의 국익을 위한 최선의 방안이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결국 독일 통일의 날이 왔을 때 전날까지만 해도 서로 매우 비판적이었던 정치 지도자들도 모두 함께 모여 기뻐했다"고 통일 당시의 감동을 전한 후 "언젠가 북으로 백두에서 남으로 한라까지 한국이 통일되는 날, 그 순간 인간성, 평화, 통일을 사랑했던 모든 사람들은 '김대중'을 기억할 것을 나는 확신한다"고 말했다.
그는 "김 전 대통령의 햇볕정책과 노벨평화상 수상은 오늘날까지도 여전히 논쟁적(controversial)"이지만 "평화와 인권에 대한 접근은 언제나 국내의 반발을 이겨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언젠가 사람들은 햇볕정책은 통일을 위해 필수 불가결한(essential) 것이었음을 깨닫게 될 것"이라며 "(한국은) 김 전 대통령이 걸어간 길을 따라가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김 전 대통령은 평화와 인권을 위한 길에서 선구자였고 비전이 있는 사람(man of vision)"이었다며 김 전 대통령을 추모했다.
참석자들 건배사 '각양각색' △ 손학규 민주당 대표는 이날 "4대강 사업 예산을 삭감하지 못하고 아랍에미리트(UAE) 파병 등 이명박 정부의 날치기를 막아내지 못했다"며 "국민들에게 석고대죄하는 심정"이라고 말했다. 손 대표는 "이명박 정부의 오만과 독산이 도를 지나쳤다"며 "독재의 길로 가고 있다"고 주장하고 "우리 모두 김 전 대통령을 생각하면서 민주주의를 제대로 지켜야겠다고 다짐한다"고 말했다. 손 대표는 "얼마 전 취지는 다른 데 있었지만 이명박 대통령이 바른 말을 한마디 했다"며 이 대통령이 '북한 사회가 변했다'는 발언을 언급했다. 손 대표는 이어 "그런데 이 대통령은 북한사회가 변한 것이 김 전 대통령의 햇볕정책의 결과인 걸 알고나 있는지 모르겠다"고 지적하며 "햇볕정책이 꾸준히 북한을 변화시켜 왔듯, 더 변화해서 화해협력이 통일의 바탕이 되도록 발전시켜야 했을 것을 이명박 정부가 막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연평도 사태로 (남북관계가) 긴장 대결 분위기로 치닫고 있지만 이 사태는 압박 제재 대결정책에서 나왔다는 것을 이명박 정부는 깨달아야 할 것"이라며 "김 전 대통령은 안보와 평화는 하나라는 것, 전쟁의 길이 아니라 평화의 길로 나가야 우리가 살 수 있다는 것, 평화가 경제라는 것을 가르쳤다"고 말했다. 그는 "김 전 대통령이 가르쳐준 민주주의와 평화를 위하여"라며 건배를 제안했다. △ 김원기 전 국회의장은 "아직 3년이 되지 않았지만 이명박 정권에 의해 오랜 세월 쌓았던 민주주의의 토대와 김 전 대통령이 이룩한 남북 평화의 기틀이 크게 손상을 입고 역사가 후퇴하고 있다"며 정부를 비판하고 "(상황이) 얼마나 더 악화될지 모르는 형편이라 참으로 마음 아프다"고 덧붙였다. 김 전 의장은 "이명박 정권이 항상 안보를 부르짖었지만 이번 연평도 사태에서 본 것은 그렇게 안보를 부르짖던 정권에 의해 대한민국 국방력이 전 세계의 조롱거리가 된 것"이라고 말하고 "한반도의 평화와 민주주의를 위하여"라는 건배사를 제의했다. △ 한명숙 전 총리는 "김 전 대통령이 가시니까 결국 전쟁이 나네요"라며 입을 열었다. 한 전 총리는 "남북이 큰 상처를 입었는데 그것이 햇볕정책 때문이라니 기가 막힌다"며 "햇볕정책을 포기했기 때문에 (이런 사태가) 일어난 것이 아닌가"하고 말해 참석자들의 박수를 받았다. 그는 "햇볕정책을 지키자"라는 말로 건배를 제의했다. 장상 전 총리는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나쁘게 변했다"며 "역사의 방향을 꿰뚫어보는, 국민이 마음놓고 신뢰할 수 있는 지도자를 그리워한다"고 말했다. 장 전 총리는 "그리워"라는 건배사를 제안하며 "제가 '그립다 말을 할까 하니'하고 말하면 '그리워!'로 답해 달라"고 말했다. △ 박영숙 한국여성재단 고문은 "민주정부 10년 동안 전쟁의 위협을 받지 않는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어 주신 것을 다시 한 번 김 전 대통령께 감사드린다"며 "전쟁의 위협을 받고 있는 요즘 김 전 대통령의 존재가 더욱 그립다"고 말했다. 권노갑 전 의원은 "햇볕정책을 위하여"라는 말로, 배우 문성근 씨는 "2012년 민주 진보 정부 수립을 위하여"라는 말로 건배를 제안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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