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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생의 맛을 찾아주는 보물 창고, 통영 오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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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생의 맛을 찾아주는 보물 창고, 통영 오일장

[강제윤의 '통영은 맛있다'] <19>

상추는 천금을 주고 사는 천금채(千金菜)였다!

할머니는 텃밭에서 소중히 키운 상추를 뜯어 나왔다. 또 한 할머니는 쑥이랑 시금치를 들고 나왔다. 진달래꽃을 따서 나온 할머니도 계시다. 봄날 통영 오일장은 귀한 것들만 숨겼다가 펼쳐놓은 보물 시장 같다. 흔하게 먹다 보니 우리는 상추가 얼마나 귀한 채소인지를 잘 알지 못한다. 하지만 그 옛날 상추는 무엇보다 귀한 채소였다.

후대에 실학의 선구자로 추앙받은 이수광(李睟光, 1563~1628)은 백과사전의 효시 격인 저서 <지봉유설(芝峯類說)>에서 "상추가 고구려 특산물이었는데 수나라 사람들이 종자를 구하기 위해 많은 돈을 들였기에 천금채라 했다"고 전한다. 지금은 흔하디흔한 상추가 천금을 주고 사 먹던 천금채(千金菜)였다는 사실을 누가 짐작이나 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수경 재배나 온상이 아니라 한데서 파릇하게 자라는 상추를 뜯어다 쌈을 싸 먹어본 사람은 안다. 상추가 어째서 천금채인가를. 야생의 맛을 잃어버린 시대. 통영 오일장은 그 야생의 맛을 되찾을 수 있게 해주는 맛의 보고다.

▲ 오일장에 나오신 할머니의 웃음이 꽃보다 더 환하다. ⓒ강제윤

3년째 통영에 살면서 나는 통영의 사계절 오일장을 모두 체험했다. 그중 무엇보다 잊을 수 없는 것은 겨울 오일장에 나왔던 노지 상추였다. 남녘 섬에 살던 시절 겨울 눈밭 속에서도 파릇파릇한 상추의 맛을 결코 잊을 수 없었다. 그 여리고 연한 잎의 상추가 겨울 눈보라 속에서도 얼지 않고 견딘다는 것은 기적 같은 일이었다. 그것은 남도 들녘의 채소들이 겨울을 나기 위해 스스로 몸 안의 모든 수분을 다 빼버리기에 가능한 일이다. 겨울 시금치나 월동 배추는 얼마나 달고 고소한가.

하지만 그 어떤 채소보다 연한 잎의 상추가 노지에서 월동하기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러니 겨울 들판에서 뜯어온 상추는 천금을 주고도 사기 어려운 보배다. 그 상추를 겨울 통영 오일장에서 다시 만났을 때의 기쁨은 말로 표현하기 어렵다. 할머니가 겨울 노지 텃밭에서 뜯어온 상추. 나는 주저 없이 상추를 한 움큼 샀었다. 그때의 생각만으로도 입안에 상추향이 퍼진다. 온상이나 수경 재배하는 상추 따위와는 감히 비교도 할 수 없는 달고 고소하고 진한 맛. 직접 먹어보지 않고서는 감히 짐작조차 할 수 없는 극상의 맛이다.

오일장의 야채는 약초다!

오일장에 나온 나물은 그대로 약초다. ⓒ강제윤

통영의 오일장은 '2.7'장이다. 매달 2일, 12일, 22일, 7일, 17일, 27일이면 어김없이 중앙시장 주변 도로에 장이 선다. 장날이면 장돌뱅이들이 난전을 펼치기도 하지만 오일장의 하이라이트는 누가 뭐래도 할머니들이 한 줌씩 들고 나오는 각종 먹거리다. 직접 재배한 곡물이나 채소들, 그중에서도 산과 들과 바다에서 뜯어온 나물들은 현대식 마트에서는 결코 살 수 없는 진짜 살아 있는 먹거리다. 사람이 섭취하는 식품의 영양이 균형을 잃으면 면역력이 떨어진다. 봄날, 오일장에 나온 쑥과 달래, 냉이, 방풍, 두릅, 더덕 등 야생의 나물이나 텃밭에서 기른 상추, 시금치 같은 야채, 약초들은 면역력을 높이는데 최고의 식재료다.

일본 홋카이도 중앙농협 시험장이 삿포로 시내 슈퍼에서 판매되는 채소 11종을 조사한 결과, 시금치의 경우 본래 영양분보다 비타민C와 철분이 8분의 1이나 떨어진 채 판매되고 있었다. 다른 채소도 비슷했다. 속성재배나 화학 비료의 과다 사용이 원인이었다. 이런 영양가 없는 식재료는 배불리 먹어도 영양 결핍이 일어나기 마련이다. 요즘 아이들이 덩치는 큰데 체력이나 면역력은 떨어지는 이유는, 그런 영양가가 적은 식품들을 섭취하기 때문이라 한다. 무조건 채소만 많이 먹는다고 좋은 것이 아니다. 생명력 있는 진짜 야채를 먹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오일장은 영양의 보고다. 할머니들이 들고 나온 야채들은 모두 약초다!

오일장의 또 다른 주역, 장돌뱅이들

▲통영 오일장은 값도 싸고 물건도 다양해서 인기가 많다.. ⓒ강제윤

지난 22일에도 중앙시장 일대에 오일장이 섰다. 오일장의 분위기를 한껏 띄우는 이들은 이곳저곳 장날만을 찾아다니는 장돌뱅이들이다. 그들이 가져오는 물건은 어느 장에나 흔한 것들이지만, 상설 시장보다 가격이 싸서 인기가 높다.

동피랑에서 태평동 길로 내려서면 도로 양쪽에 장꾼들이 물건을 펼쳐놓고 호객하는 소리가 요란하다. 크고 작은 항아리를 잔뜩 싣고 온 옹기장수도 판을 벌였다. 이불장수들도 트럭을 몰고 왔다. 사람들이 가장 많이 몰리는 곳이 바로 이 옷 장사들의 난전이다. 교자상을 들고 온 상장수들도 상다리를 폈다. 양파를 한가득 싣고 온 야채장사는 자리를 잡지 못해 길 중간에 차를 세웠는데, 주차 단속원은 어서 자리를 떠나라고 성화다. "어서 이동하이소." 질서는 잡아야 하고 먹고는 살아야 하고! 사는 일이란 늘 이토록 어수선한 난장판이다.

용남면에 사는 할머니는 겨우내 보관했던 가을걷이 곡식들을 들고 나왔다. 조, 수수, 찹쌀, 녹두, 대두콩 등 곡물의 알이 야물다. 묵나물, 감, 배, 산초 씨앗도 나왔고 국산 석류도 나왔다. 좁은 골목 한편에는 약초만 잔뜩 싸온 할머니가 약재상을 펼쳤다. 헛개나무 열매 씨, 인진쑥, 익모초, 칡, 암에 좋다는 망개나무 뿌리, 느릅나무 껍질 등. 그런데 생강이나 강황처럼 생긴 저건 무슨 약초일까. "할머니 저 약초는 무언가요?" "야시보시라카요." 야시보시가 뭐지? 또 물어봐도 그저 야시보시라고만 하신다.

장꾼들은 충무김밥이나 밥을 배달시켜 앉은자리에서 점심을 해결하며 자리를 지킨다. 사과 한 바구니에 5000원. 마트나 재래시장의 절반값이다. 충무데파트 앞에는 싱싱한 고등어도 잔뜩 쌓였다. "싱싱한 고등어요. 횟감용 고등어." 싱싱하지만, 횟감이야 되겠는가. 워낙 빨리 상하는 성질 탓에 죽은 고등어는 횟감으로 쓸 수 없다. 그만큼 싱싱하다는 뜻이다. 씨알 굵은 고등어가 세 마리 만 원. 요즈음 고등어 값이 비싸서 저 정도 크기면 마리당 5000원쯤 하는데 오일장이 싸기는 싸다.

오일장에 그 귀한 돌돔도 나왔다. 값도 말할 수 없이 싸다. ⓒ강제윤

잃어버린 효심을 되살려주는 오일장


중앙시장 입구 대로변에는 주로 통영 지역 농어촌에 사는 할머니들이 자리를 잡고 앉았다. 쑥 한 광주리, 방풍나물 한 광주리, 머위나물 한 소쿠리, 쪽파 두 단, 청각 말린 것 조금. 조금씩 들고 나온 저걸 다 팔아도 차비나 나오시겠나. 할머니들은 물건을 사가라고 크게 청하지도 않고 가만히 앉아만 계신다. 할머니들이 해변에서 직접 따온 미역이랑 톳, 봄이 제철인 우럭 조개도 많이 나왔다.

장날마다 반찬거리를 만들어 팔러 오는 아주머니는 오늘도 된장이랑 장아찌를 잔뜩 싸서 왔다. 찍어 먹어보니 된장이 잘 익었다. 멸치와 새우를 갈아 넣어 담근 된장이라 바로 끓이기만 하면 된단다. 된장이 다 떨어졌는데 그냥 지나칠 수 없다. 만 원어치를 사니 한 봉지 가득하다. 고들빼기김치도 맛깔스럽고 땅두릅나물, 고추, 양파, 장아찌도 맛있다. 머위대도 데쳐서 장아찌를 담아왔다. 갈치젓갈이랑 돌게장을 담아온 할머니도 계시다. 오일장은 토속 음식들이 맥이 끊기지 않고 전통을 이어가게 해주는 전통문화의 전시장이기도 하다.


▲장에서 만나는 노인들은 모두 우리 어머니고 할머니들이시다. ⓒ강제윤

좁은 시장통으로 김밥만 한가득 싣고 다니며 파는 김밥장수도 장날의 명물이다. 세 덩어리 2000원, 아주 싼값에 장꾼들 뱃속을 든든히 채워준다. 한 할머니는 장어와 꼼장어만 한 상자 가득 손질해 나오셨다. 할아버지가 밤새 통발로 잡아온 꼼장어를 새벽같이 손질해서 내오신 거다. 굵은 장어들도 시중가의 절반 이하다. 버스정류장 의자 앞에 앉아 마늘을 파는 할머니는 곱게 차려입고 머리에 비녀도 꽂으셨다. 마늘 한 묶음이 1만3000원, 그토록 헐한 값에도 누가 좀체 사가지 않는다.

멸치를 가지고 나오신 할머니의 난전. 굵은 참멸치가 한 상자에 1만1000원이다. 건어물 가게에 가면 3만 원은 족히 넘을 좋은 멸치다. 두 상자를 사서 인천 사는 어머니에게 보냈다. 길을 건너면 바로 중앙우체국이다. 청마가 매일 연서를 보내던 우체국에서 나는 멸치 상자를 택배로 부쳤다. 오일장은 물건만 파는 곳이 아니다. 잃어버린 효심도 되살려주는 곳이다! 장도 구경하고 작은 효도도 했다. 얼마나 귀한 장날인가.

□ <섬학교> 4월 답사 안내
강제윤 시인이 이끄는 인문학습원 <섬학교>가 4월 답사를 떠납니다.
4월 답사지는 <자산어보>와 홍어의 고장 흑산도입니다.
관심 있는 분은 여기로 ☞ "흑산도, 그 깊고 푸른 물빛 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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