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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톤·마키아벨리가 21세기에 살아남으려면…

[프레시안 books] 존 듀이의 <철학의 재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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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자 이유선이 지적하고 있듯이 한국에서 이루어지는 존 듀이(1859~1952년)에 관한 연구는 "대부분 그의 교육관과 관련한 것들"이고 역자가 <철학의 재구성>(아카넷 펴냄)을 번역한 근본적인 이유는 바로 이 점에 관련되어 있다.

역자는 "어떤 전문적이고 사변적인 철학보다 우리에게 실천적인 지혜를 갖게 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인 듀이의 철학을 재구성하고자 하며, 이렇게 듀이의 "철학이 오늘날의 상황에서 적절히 재구성될 때 우리는 철학이 가진 현실적인 힘이 어떤 것이 될 수 있을지 마음속에 그려볼 수 있게 될" 것이라고 본다. 역자의 궁극적인 의도는 한국에서의 철학의 재구성이며, 그러한 의도의 실현을 위해 그는 듀이의 철학을 재구성하려 하며, 그러한 재구성을 위해 이 책, <철학의 재구성>을 번역한 것이다.

독자는 이 책의 내용을 충실히 따라가는 것-물론 이것이 없다면 여타의 어떤 것도 가능하지 않겠지만-보다는 듀이가 철학의 재구성을 시도하게 된 시대적, 학문적 배경과 그러한 배경에 직면하여 그가 새롭게 구축하는 학문 방법론, 학문 영역의 재범주화 및 과제 설정의 방식을 눈여겨보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이 책에서 가장 주목해야 하는 부분은 역자의 지적처럼 "전통적인 종교적, 도덕적, 형이상학적 가치관과 과학기술의 발달이 야기한 새로운 가치관을 중재하기 위해서" 듀이가 시도한 방법과 그 내용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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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철학의 재구성>(존 듀이 지음, 이유선 옮김, 아카넷 펴냄). ⓒ아카넷
이 책은 출간(1919년) 25년 후에 쓰인 서문에 이어서 당대에 이르기까지 철학이 이루어 낸 성과와 방법론에 대한 반성을 담은 다섯 개 장, 그리고 그러한 반성을 바탕으로 논리학, 도덕, 사회 철학의 재구성을 적극적으로 논의하는 세 개의 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서문에서 듀이는 책 제목에 관하여 언급한다. 그에 따르면 "오늘날에는 철학의 재구성(Reconstruction of Philosophy)이라는 제목이 철학 내부의 재구성(Reconstruction in Philosophy)이라는 제목보다 더 적합하다." 철학 '내부의' 재구성은 철학이 외부의 사정을 고려하지 않은 상태에서 이루어지는 재구성이라면 철학'의' 재구성은 "언제나 진행되고 있으면서 때때로 인류의 역사에 있어서 위기와 전환점을 만들기도 하는, 인간의 삶에 있어서의 변화"에 따라 이루어지는 것이다. 듀이는 자신의 시대가 변화의 국면에 처해있고 그에 따라 철학은 그에 상응하여 다시 구축되어야 한다고 보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듀이의 관점은 철학의 기원에 관한 그의 시각에 근거를 두고 있다. 그는 "각각의 철학의 과제, 문제, 주제들은 주어진 형태의 철학이 발생하는 공동체 내의 스트레스와 긴장으로부터 발생한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가 목격한 이 "변화"가 무엇인지 살펴보아야 한다. 듀이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재구성을 시도하려 할 때 "재구성에 대한 요청은 재구성이 일어나야 하는 배경에 대한 매우 비판적인 관심이 없이는 이루어질 수 없"기 때문이다.

듀이는 "지난 수백 년간 이루어진 '과학 혁명', '산업 혁명', '정치 혁명'에 대한 논의에서 드러나듯이, 과거의 시스템"과는 달라진 세계에서 사람들이 살아가게 되었다고 한다. 세계는 달라졌는데, "이전의 시스템은 자신의 학설이 형성된 시기의 자연 세계에 대한 전(前) 과학적 관점, 산업에 대한 전(前) 기술적 상태, 그리고 전(前) 민주주의적 정치 상태"를 반영하고 있다면 이 학설은 반드시 재구성되어야 한다.

여기서 듀이가 설정하고 있는 일종의 대립 구도가 명료해지는데, 그것은 '전(前) 과학적, 전(前) 산업적, 전(前) 민주주의적 상태'와 '과학적, 산업적, 민주주의적 상태'의 대립이며, 이제 사람들은 이러한 대립 구도를 해소하고 시대에 합당한 철학을 새롭게 구축해야 할 것이다.

다른 무엇보다도 듀이가 되풀이해서 지적하는 것은 과학의 성과이다. 따라서 새로운 방법과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 또한 그 성과에 기반을 두어야만 한다. 이는 "매우 짧은 시간 동안 상당한 정도로 삶의 물리적인 조건과 생리학적인 조건을 변혁시킨 관찰과 실험과 반성적 추론이라는 위대하고 끊임없이 성장하는 방법"을 철학에 전면적으로 도입하여야 함을 의미하며, 이를 토대로 "전체론적인 철학 체계"를 구축해야 할 것이거니와, 특히 "인간적이고 도덕적인 주제와 관련된 어떤 탐구에 대해서도, 물리적인 세계에 대한 이해를 오늘날의 수준에 이르게 한 것과 같은 종류의 방법(관찰, 가설로서의 이론, 그리고 실험적 테스트라는 방법)을 도입"해야 하는 것이다.

우리는 듀이의 이러한 시도를 한마디로 과학적 방법에 근거한 철학 전 영역의 재구축으로 규정할 수 있을 것이며, 이는 구체적으로 다음과 같은 방법으로 이루어질 것이다. 먼저 "몇 세기 전 근대 과학이 등장하기 이전에 확립되었던 모든 제도를 교란시키는 문제"들을 고찰하고 과학이 낳아놓은 인간 조건의 변화와 그에 상응하는 철학적 숙고를 수행한다.

그런 다음 "도덕적인 것과 물리적인 것 사이에 만들어진 근본적인 분리를 설명해주는 문화적 조건의 반영"으로서의 근대적 이분법을 근원적으로 반성하고 새로운 도덕 철학과 사회 철학의 구축으로까지 나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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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은 영원불변하는 진리를 탐구하는 학문이 아니라 시대의 변화에 따른 시대의 요청을 받아들여 항상 스스로를 재구성해야 하는 학문이다. 이처럼 철학의 본질을 현실의 삶에서 찾는다면 시대의 요청에 맞지 않는 낡은 물음들은 사라져야 하는 것이 된다. 불변의 진리는 있을 수 없고 시대의 "이야기"가 철학을 만들어내므로 새로운 이야기가 만들어지는 상황에서는 새로운 철학이 등장해야만 한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이러한 이야기를 이해고 등장의 시점을 알아차릴 수 있겠는가? 우리는 "철학사를 고립된 것으로서가 아니라 문명과 문화의 발달에 있어서의 한 장으로 연구"해야 하며, "철학의 이야기를 인류학, 원시적인 삶, 종교, 문학, 사회 제도의 역사에 대한 연구와 연관"짓도록 해야 한다. 다시 말해서 지성사적 탐구만이 시대의 이야기를 듣고 새로운 철학의 등장을 가능케 하는 것이다.

이러한 시각에 바탕을 두고 듀이는 전통적인 논리학을 비판하여 그것을 새로운 학문 방법론으로 재구성하며, 근대 과학의 발전 이후 철학자들이 몰두해온 "품위 없는 유물론으로부터 삶을 구원하는 일"에 매달리기 보다는 오히려 "과학 발전의 원이 마무리될" 수 있게 하라고 촉구하기도 한다.

듀이의 시도들은 경험 개념의 재규정에서 집약적으로 나타난다. 주지하듯이 근대 철학은 경험과 이성을 대립 구도 속에서 파악하며 경험은 일반성과 규칙성을 낳아놓을 수 없는, 진리의 완전한 산출 근거로서의 자격을 가지지 못한 것으로 간주한다. 그러나 듀이에 따르면 "경험의 참된 '재료'는 행위, 습관, 적극적인 작용, 어떤 일을 하고 어떤 일을 겪는 것의 연관 등의 적응 과정, 즉 감각에 의해 움직이는 협동 작용으로 인식된다. 경험은 그 자체 안에 연관과 조직화의 원리를 가지고 있다." 이렇게 본다면 경험은 "우리를 과거로부터 해방하는 힘으로 작동"하고 "과거의 실패를 딛고 더 나은 미래를 (…) 만들기 위한 도구"(역자 해제)인 것이다.

앞서 말했듯이 이 책의 5장까지는 재구성이 요구된 상황과 재구성의 방법 등이 서술되고 그에 이어서 6장부터 듀이는 철학이 "하고자 하기만 하면, 이런 부정적인(소극적인) 일보다 나은 어떤 일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보이는 것", 즉 철학의 적극적 과제를 제시하고 있거니와, 그것은 '논리적 재구성', '도덕적 개념에 있어서의 재구성', '사회 철학에 영향을 주는 재구성'이다.

우리가 도덕적 판단을 내리는 것은 영원불변한 도덕 법칙에 따르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우리는 명백한 행위에 앞서 판단과 선택을 해야만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상황의 상세한 구조를 관찰하고, 그 다양한 요소들을 분석하고, 모호한 것을 명확하게 하고, 더 눈에 띄는 생생한 특징들을 좀 낮춰서 보고, 스스로 드러나는 다양한 행위 양식들의 결과들을 추적하고, 채택으로 이어지는 예상되거나 가정된 결과가 실제 결과와 일치할 때까지는 이러한 결정을 가설적이고 잠정적인 것으로 보는 일이 필요하다."

재규정된 경험 개념을 바탕으로 이루어지는 이러한 탐구를 수행해나간다면 우리의 도덕적 판단과 행위는 끊임없는 시행착오 속에서 스스로 수정해 나가는 일종의 '실천적 지혜'가 될 것이다. 마찬가지로 사회 철학의 재구성도 "제도, 개성, 국가, 자유, 법, 질서, 진보 등등에 관한 일반 개념의 정련이 아니라, 특별한 상황의 재구성에 관련된 방법에 대한 물음"을 통해서 이루어져야 할 것이거니와 이것 역시 근본적으로는 새롭게 정립된 경험 개념에 근거한다.

4

우리가 오늘날 고전으로 간주하여 읽는 사회 철학 텍스트들, 이를테면 플라톤의 <국가>나 마키아벨리의 <군주론> 등은 과학기술이 인간의 삶에 깊숙이 파고들지 않았던 소박한 시대에 산출된 것들이다. 그 텍스트들이 복잡다기한 인간의 내면을 치밀하게 탐구하고 있다고는 하나, 현대 사회의 삶 속에서 다면으로 분리된 인간의 자아를 반영하고 있지 못하며, 여러 측면에서 파악해야만 하는 사회의 모습을 이해하기 위한 전범으로서는 충분하지 못한 것 또한 사실이다. 그런 까닭에 역자의 지적처럼 "철학이 현실적인 삶의 문제와 유리됨으로써 대중적인 경멸의 대상이 되거나 근거 없는 경외의 대상이 되고 있는 오늘날"에 듀이의 시도는 하나의 의미 있는 출발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오늘날 한국에서 어떤 방식으로 듀이의 재구성을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앞서 지적된 여러 가지 논점들을 충실히 소화하는 것이 당연히 필요할 것이나 그에 앞서는 일종의 선결 과제는 없는가도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겠는데, 여기서 우리는 듀이의 강연이 행해졌던 1919년의 일본 상황을 떠올려 볼 수 있겠다.

듀이는 1919년 2월 일본에 도착하여 1919년 4월까지 체류하였으며, 1919년 2월 25일부터 3월 21일까지 도쿄제국대학에서 '철학의 재구성'에 관하여 강연하였다. 일본에서는 왜 듀이를 초청하였는가? 그의 강연을 통해서 일본의 지식인과 대중들이 얻고자하였던 것은 무엇이며, 과연 그들은 일본 사회에서 무엇을 성취하였는가?

우리는 후자의 물음에 대해서는 정확한 대답을 할 수 없고 전자의 물음에 대해서는 당시의 일본이 이른바 '다이쇼 데모크라시(대정(大正) democracy)의 시대였다는 것, 그 분위기가 듀이의 철학에 관한 관심을 불러 일으켰고 서구적인 시도를 해보려 하지 않았을까 하는 짐작을 할 뿐이다. 제1차 세계 대전이 끝나고 1919년 1월에 파리평화회의가 시작되었으며, 1918년 일본에서는 최초의 정당 내각이 성립함으로써 이 시대가 열렸다.

이때 전 세계적으로는 군주제에 대한 불신이 번져가고 있었고, 일본 국내에서는 천황제에 대한 대중의 무관심이 증가하고 있었으며, 사회 정치 제도에 대한 공공연한 비판이 늘어나면서 국가를 개혁하려는 요구도 등장하였다. 또 군주가 친히 다스린다는 관념이 약화되면서 메이지(明治) 천황 이후 새롭게 확립되어 온 천황제 자체에 대한 회의도 강해지고 있었다. 다시 말해서 본격적인 근대 민주주의 국가로의 발전을 다양한 통로로 모색하던 시기였던 것이다.

불행하게도 다이쇼 데모크라시는 10년 정도 지속되었을 뿐이다. 다이쇼 천황의 사망에 이어서 1928년에 히로히토가 쇼와(昭和) 천황으로 즉위하면서 분위기는 경색되었고, 1929년 세계 대공황의 여파로 경기가 침체되면서 일본제국은 본격적으로 천황제 파시즘의 길로 나아갔다.

이러한 경과를 보면서 우리는 막연하게나마 하나의 사상이 현실에서 관철되려면 그 사상의 수입과 번역-일본은 '번역 대국'이다!-, 철저한 학습만으로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 수 있으며, 그러한 관철을 수행하기 위해 정치적, 학문적 자유가 온전히 구현되어야 함을 생각하게 된다. 21세기 한국에서 관조적 형이상학이 아닌 실천적 철학이 재구성되고 실현되기 위한 조건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① 내용의 측면에서 보면 기존의 것을 다시 짜맞추는 재구성보다는 새롭게 기초를 다지고 그 위에 새로운 것을 세워 올리는 재구축이라 하는 것이 더 적절할 것이다.

② 이 서문은 1948년에 작성된 것인데, 역자에 따르면 "원래의 원고들에 담겨있는 참신하고 독특한 그의 생각들을, 서구의 문명사 전반을 조망하는 더 큰 틀에서 바라볼 수 있게 돕는 중요한 글"이다.

③ 역자는 듀이의 이러한 지적을 근거로 한국어판 제목을 원제를 따르지 않고 '철학의 재구성'이라 하였음을 역주에서 밝히고 있다. 덧붙이자면 역자의 충실하고 풍부한 역주는 이 책을 읽는 데 큰 도움이 된다.

④ 이는 역자가 듀이의 학문 체계를 가리킬 때 사용하는 술어인데 명료한 설명이 더 필요할 듯도 하다.

⑤ 그가 93세를 살기는 했으나 이 해는 60세 되던 해이므로 '철학의 재구성'은 그의 원숙한 사상을 펼쳐보인 것으로 간주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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