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의 설명만 들어보면 3국의 의견이 완전 일치한 것 같지만, 사실과 좀 다른 것 같습니다. 의견이 완전히 일치 했다고 해석하기 어려운 대목이 있어요. 원자바오 총리의 말 때문인데, 그는 "회담을 위한 회담을 해서는 안 된다"고 하면서도 "본 지역의 평화를 위한 회담이 돼야 한다"고 토를 달았습니다.
중국의 기존 입장을 토대로 원 총리의 말을 해석하자면, 이명박 대통령의 말에 완전히 동의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평화를 위한 회담'을 하자는 건 이명박 정부에 대한 비판의 의미가 있는 거예요.
2009년 1월 출범한 오바마 미 행정부는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과 스티븐 보즈워스 대북정책 특별대표 등의 발언을 통해서 북한이 요구하는 한반도 평화협정 논의의 우선순위를 높여줄 의사가 있음을 지속적으로 밝혀 왔습니다. 북핵 문제를 해결하려면 북한이 군사·안보적 위기의식을 느끼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판단을 했기 때문이라고 봅니다만, 사실 부시 행정부 때부터도 그런 판단은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는 평화협정 논의 우선순위를 높여주는 전제하에 열리는 6자회담 재개에 미온적이었습니다. 아니 사실상 반대를 했습니다. 작년 7월 한미 정상회담 전후해서는 '그랜드 바겐'으로, 12월 이후에는 '선(先) 비핵화 후(後) 평화체제'로 순서를 잡았다가, 금년 3월 이후부터는 천안함 문제가 해결되기 전에는 6자회담을 재개할 수 없다는 입장을 견지하면서 6자회담 재개를 사실상 지연시켰어요.
따라서 원자바오 총리가 "평화를 위한 회담이 되어야 한다"고 한 건 이렇게 해석할 수 있습니다. "북한의 선(先) 비핵화나 요구하면서 세월이나 보내는 그러한 '회담을 위한 회담'이 돼서는 안 된다. 6자회담을 조속히 시작하고, 그 자리에서 평화협정을 본격적으로 논의해서 실질적인 비핵화와 평화체제를 이루도록 하자."
원 총리가 "회담을 위한 회담은 안 된다"는 이명박 대통령의 말을 그대로 받으면서도, 그걸 가지고 한국 정부를 비판하고 대안을 제시한 거라고 해석해야 할 것 같습니다. 6자회담을 지연시키는 정책을 한·중·일 정상회의에서 공인받으려다가 원자바오한테 저지당한 겁니다.
북한이나 쓰는 협상 전술을 쓰겠다는 건가?
이명박 정부가 6자회담 재개에 소극적이라는 사실은 다른 데서도 알 수 있습니다. 올 하반기에 들어서면서 미국은 6자회담 전에 남북관계 개선이 선행돼야한다는 메시지를 지속적으로 보냈습니다. 그 요구에 대해 북한은 이산가족 상봉 제안을 먼저 하면서 적극적으로 호응했지만, 이명박 정부는 이런저런 조건을 걸면서 남북관계 복원에 선뜻 나서지 않았어요. 그러니 6자회담 재개 문제도 진척될 리 없습니다.
이명박 정부 임기 후반부에 남북관계 개선 전망이 다소 있는지 판단하기 위해서, 나는 정부가 남북 적십자회담에 어떻게 대응하는지를 유심히 지켜봤습니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까...이명박 정부는 말로는 이산가족 상봉 사업을 앞으로 굉장히 적극적으로 추진할 것처럼 선전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이산가족 상봉을 통한 남북관계의 복원·개선에 별로 뜻이 없었습니다.
왜 그런 판단을 했는가 하면...정부는 이산가족 상봉은 순수한 인도주의적 사업이라고 자꾸 강조합니다. 그런 논리로 하면 북한이 이산가족 상봉에 호응하지 않으면 북한은 인도주의를 무시하는 나라가 됩니다. 그러나 그게 정말 인도주의적 호소로만 실현될 수 있는 건가?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 이산가족 상봉이 16회나 계속됐던 동력이 무엇이었는지 정말 모르는 건가? 이런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산가족 상봉은 솔직히 말해서 쌀 40~50만 톤과 비료 20~30만 톤이 갔기 때문에 계속됐던 겁니다. 북한은 그에 대한 보답으로, 혹은 그 다음해에도 지원을 보장받기 위해서 이산가족 상봉에 호응했습니다. 그 엄연한 현실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인도주의만 내거는 건 비현실적이에요.
그것 말고도 당국의 진정성을 의심할 수밖에 없는 대목이 있었습니다. 매월 1회 이산가족 상봉 사업을 하자는 겁니다. 겉으로 보기에 취지는 좋습니다. 그리고 남쪽의 행정 능력으로는 충분히 감당할 수 있어요. 행정망이 전산화됐기 때문에 사람을 찾는 심인(尋人)사업을 하는 게 쉽습니다. 사람 이름만 알면 찾을 수 있어요.
그러나 북한의 행정 능력으로는 그게 안 됩니다. 북한의 핵·미사일 수준은 상당히 높지만, 나머지 분야는 사실 우리의 1950~60년대 수준에 불과합니다. 이산가족 100명을 찾는데도 빨라야 한 달반 정도 걸립니다. 그래서 북쪽은 1년에 3~4회만 하자고 했는데, 그것도 저 사람들의 능력으로는 사실 버거워요. 그런 사정을 무시하면서 매월 1회 이산가족 상봉을 하자고 하면 진정성이 없는 겁니다. 제대로 걷기도 어려운 어린애한테 마라톤 하자고 하는 거나 비슷합니다. 북한의 낙후성이나 부각시키는 재료로는 쓸 수 있겠죠.
좋게 보자면 협상 전술 차원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겁니다. 처음에 어려운 요구를 한 다음에 차차 요구 수준을 낮춰가면서 우리의 목적을 달성하는 전술인데요...그러나 그런 짓은 북한이나 하는 겁니다. 협상 초기에 '강탈적 요구'를 하고 그 수준을 조금씩 낮추는 것...북한이나 하는 방식이지 우리의 방식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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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이산가족 상봉에서 국군포로 네 분이 나온 걸 가지고 정부가 국군포로·납북자 문제를 부각시키는 것도 우려되는 점이 있어요. 국군포로·납북자 문제는 북한을 압박할 수 있는 카드이긴 합니다. 그러나 북쪽에 국군포로가 대략 500명 정도 있고, 60년 가까운 세월이 흐르는 동안 손자까지 생겼을 터인즉, 직계가족만 해도 3000~5000명 정도 될 겁니다.
국군포로가 자진해서 혼자 내려오면 당연히 받아야겠지만, 당국이 나서서 그 분들을 다 모셔오려면 재북가족은 어떻게 할 건가요? 그 사람들이 다 내려온다면 그건 북한 사회의 해체를 의미합니다. 북한이 호응하고 협조하기 쉽지 않은 문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재남가족들한테 선심을 쓰는 것 같고 또 국민들의 기대를 부풀릴 순 있지만, 성과를 내기 쉽지 않은 일입니다.
우리가 자꾸 납북자와 국군포로 문제를 제기하면 북한은 기획 탈북 문제와 반공포로 문제를 가지고 대응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런 맥락을 알고 문제를 제기해야 하는 겁니다. 우리 국민들도 그걸 알아야 해요. 북한이 어떻게 나올지에 관해서 치밀하게 예측하고, 대책을 세워 놓고 일을 시작해야지 그냥 기대만 부풀리면 국민에 대한 일종의 속임수가 될 수 있어요.
금강산 관광 문제도 그렇습니다. 정부는 금강산 관광객 피격 사망 사건에 대한 진상규명, 재발방지 대책 마련, 신변 안전 강화라는 3대 선결조건이 해결되지 않으면 관광 재개를 위한 회담에 나갈 수 없다는 입장입니다. 그건 관광을 재개할 생각이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그건 진정성 있는 태도가 아닙니다.
진상규명을 위해서도 일단 만나서 북측의 얘기를 들어 봐야 할 것 아닙니까? 또 재발방지 대책에 대해서는 김정일 위원장이 작년 8월 현정은 현대아산 회장을 만나서 다시는 그런 불상사가 일어나지 않도록 하겠다고 했고 김양건 통일전선부장도 김대중 대통령 조문단으로 와서 그런 입장을 확인했습니다.
그래도 부족하다고 생각한다면 당국간 회담을 제안해서 만나가지고 남북 합의하에 재발 방지 대책을 만들어야 합니다. 신변 안전 보장 강화도 만나서 협상해야 하는 문제입니다. 그런데 그걸 회담 전에 보장하라고 요구하는 건 결국 금강산 관광 재개는 결코 안 하겠다는 겁니다.
이렇게 남쪽은 조건 타령만 하고 있어요. 천안함, 금강산 관광, 비핵화 의지에 대한 확인 등등 조건만 자꾸 내걸고 있어요. 이러다 보면 미국 중간선거와 G20 정상회의 후에 중국이나 미국이 아무리 움직이려고 해도 우리 때문에 6자회담이 열리지 못하는 불상사가 생길 겁니다.
이렇게 최근 남북간 쟁점에 대한 우리 정부의 입장을 보면 소위 '진의 협상'을 하려고 하는 게 아니에요. 그냥 협상하는 척만 하는 '의사(擬似. pseudo) 협상'을 하는 동안 북한이 항복해오기를 기다리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다면 이명박 정부 임기 내내 남북관계에 대해서는 기대할 게 없고, 6자회담도 결국 지지부진하다가 임기를 마무리 할 수밖에 없게 될 겁니다.
* '정세토크'는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김대중평화센터 부이사장, 한반도평화포럼 상임이사)이 한반도 문제에 관해 자신의 경험과 견해를 이야기하는 코너입니다. 격주로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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