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핵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6자회담의 긍정적 사태 진전은 없어 보인다. 북미대화를 위한 환경 개선 역시 아직은 무망해 보인다. 북한의 대승호 송환과 이산가족 상봉 제의, 남측의 수해 지원과 이산가족 상봉 수용으로 남북관계에 일시적인 숨통이 트였다고 하나 이 역시 국면 관리용의 전술적 변화일 뿐 남북 모두 관계 정상화를 위한 전면적 태도 변화는 애초부터 생각하지 않았다.
남측은 시종일관 금강산 관광 재개에 생각이 없고 오랜만에 열린 남북 군사 실무회담은 입씨름만 하다 끝났다. 남북 대결, 미중 갈등에 더해 중일관계마저 최근 영토 분쟁으로 악화되었고 환율 전쟁의 시작으로 각국의 복잡한 이해관계가 얽혀 있다. 동북아와 한반도는 아직도 갈등중이고 대결중이고 분쟁중이다.
▲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과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은 만남을 위한 세 번째 시도를 할 것인가 ⓒ프레시안 |
협상 거부는 득이 아니라 독(毒)
최근 조성된 한반도 정세의 교착에는 과거와 다른 점이 있다. 한국과 미국 어느 곳도 북한에 대해, 북한과의 협상에 대해 관심조차를 잃어버린 느낌이란 것이다. 이제 한국과 미국에는 북한에 대한 관심도 흥미도 없어 보인다. 북이 남측에 회담을 제의하면 마지못해 고민하는 심드렁한 통일부 분위기가 그렇다. 6자회담 재개를 강조하는 중국과 북한의 제의를 그냥 듣기만 하는 미국의 분위기도 그렇다.
북한의 버릇을 고쳐놓겠다며 북이 굴복할 때까지 전략적 인내를 강조하고 있는 이명박 정부로서는 북한과의 복잡하고 어려운 회담이나 협상 보다 기다림을 통해 북의 급변사태를 기대하는 게 훨씬 낫다는 입장인 듯하다.
왜곡된 대북 인식과 근본주의적 대북 입장, 자의적 정세 판단에 토대하고 있는 이명박 정부야 더 이상 기대할 것도 없이 그런 것으로 치부할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미국이다. 한반도 정세를 관리하고 북핵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미국이 북한을 수수방관하는 것은 이해하기 힘들다.
부시 행정부가 6년여 동안 선(先) 핵 포기를 주장하며 북한과의 대화를 일절 거부했던 전략이 결국은 북의 핵 능력 강화와 핵실험 강행으로 귀결되면서 미국의 북핵 정책은 완전히 실패하고 말았고, 2006년 중간선거에서 패배하고 나서야 대북 양자협상으로 전략을 수정했다. 북한과의 만남을 미루고 협상을 거부하는 원칙이 미국에는 득이 아니라 독임을 지난 경험을 통해 잘 알고 있을 터이다.
그럼에도 미국이 이명박 정부에 동조하고 편승함으로써 북한과의 협상을 주저한다면 결국은 한반도 정세를 악화시키고 북핵 문제를 악화시키는데 기여할 뿐, 결코 미국의 바람대로 되지 않음을 명심해야 한다. 이명박 정부의 기대처럼 조만간 북이 붕괴할 것이라는 급변사태 대망론에 빠져 있지 않다면 오바마 행정부의 대북 무관심은 정말 위험한 전략이고 아까운 시간낭비임을 명심해야 한다.
상견례와 재회의 불발
오바마 행정부 들어 북한과 미국은 두 차례의 협상 기회가 있었다. 오바마 대통령 취임 직후 서로 기대했던 첫 만남은 최악의 불편한 상견례로 끝나고 말았다. 부시에 진절머리가 난 김정일 위원장은 오바마 대통령과의 진지한 협상에 큰 기대를 걸을 만 했다. 당선자 시절 오바마 캠프가 밝힌 '강인하고 직접적 외교'(tough and direct diplomacy) 기조 역시 김정일 위원장으로서는 북미 직접 대화의 기대를 높였다.
기대에 들뜬 김정일 위원장은 오바마 행정부가 출범하자마자 미사일 발사 방침을 공언했고 이를 통해 미국 신정부의 대북 입장을 가늠해보려 했다. 주권국가의 평화로운 우주 이용 권리를 인정해주는 오바마 행정부의 변화된 모습을 기대했지만 초기의 애매한 입장과 달리 오바마 행정부는 이미 핵실험을 강행한 북한의 장거리 로켓 발사가 유엔 결의 위반이라며 반대했다.
오바마 행정부로서는 출범 이후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등 산적한 외교 현안을 먼저 들여다 본 뒤에야 북핵 문제 해결에 나설 수 있었고, 이에 반해 2008년 한번 쓰러졌던 김정일 위원장은 하루 빨리 미국과 담판을 짓고 싶은 욕심이 앞섰다. 결국 북한은 미사일 발사를 밀어붙였고 미국은 유엔을 통해 북을 비난하는 의장성명을 내고야 말았다.
이에 북한은 6자회담 결렬을 선언하며 2차 핵실험으로 맞섰고 미국 역시 유엔 안보리 결의 1874호의 강화된 대북 제재를 통과시키고 말았다. 북한과 미국은 당분간 마주 앉을 수 없는 강 대 강의 대결을 주고받은 셈이다. 오바마 행정부 이후 첫 협상 기회는 상호 이해 결여와 기대의 불일치로 오히려 상대방을 부정적으로 보게 만든 최악의 상견례로 귀결되고 만 것이다.
두 번째 협상 기회는 2009년 하반기에 찾아왔다. 서로의 마음을 잘못 읽은 북한과 미국은 이제라도 상대방을 제대로 이해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고 다시 만나야 할 기회를 찾고 있었다. 그 해 여름 미국인 여기자 석방을 위해 클린턴 전 대통령이 평양을 방문해 김정일 위원장을 면담했고 북한과 미국의 협상 가능성을 조율했다.
6자회담 거부를 선언한 북에 대해 '선(先) 6자회담 복귀'를 요구했던 오바마 행정부는 이른바 '포괄적 패키지'를 내세우면서 6자회담 복귀 이전이라도 북한과 양자협상을 할 것임을 공표했다. 오바마 행정부와 북한과의 공식 양자 협상이 무르익게 된 것이다.
때맞춰 북한은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의 방북과 개성공단 직원 석방, 이산가족 상봉과 연안호 송환 및 군사분계선 통행 제한 철폐 등 남쪽에 대해 잇따른 유화 조치를 내놓았다. 미사일 발사와 대북 제재로 상대방을 불신하고 의심했던 북한과 미국이 이제 본격적으로 마주 앉아 양자협상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러나 두 번째 기회는 의외의 복병을 만나게 되었다. 6자회담 이전 북미 양자협상 방침을 밝힌 오바마 행정부에 대해 이명박 대통령은 이른바 '그랜드 바겐'을 제기하면서 북한과의 협상 자체를 반대하고 나섰다. 북이 핵무기와 핵물질을 내놓는 진정성 있는 실천을 하기 전에는 협상 자체를 해서는 안 된다는 전형적인 발목잡기였다. 결국 북미 양자협상의 동력은 약화되었고 보즈워스 대표의 방북은 2009년 연말에 겨우 성사되었다.
한미동맹에 무게중심이 실리면서 미국의 대북 협상 의지는 약화될 수밖에 없었다. 비핵화와 평화체제 논의를 병행하자는 북한의 요구에 대해 오바마 행정부는 쉽사리 받을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었다. 이미 이명박 정부의 대북 강경 정책에 힘을 실어준 오바마 행정부로서는 북한과의 생산적인 협상보다는 북한의 선제적인 양보와 조건 없는 6자회담 복귀를 원칙으로 되뇌며 협상 요구를 뭉갤 수밖에 없었다.
두 번의 협상 기회를 놓친 북한과 미국은 급기야 2010년 천안함 사태 이후 다시 만날 수 있는 기회조차 거론하기 힘든 상황이 되어 버렸다. 북한은 처음부터 천안함 사태가 자신의 도발이 아니라고 강조했고, 북한 소행으로 결론지은 이명박 정부의 판단을 미국은 시종일관 지지했다. 그것도 모자라 한·미는 합동 대잠훈련을 했고 북은 방중 세달 만에 또다시 중국을 찾아 강고한 북중연대를 과시했다.
뒤늦게 중국이 천안함 출구 모색과 6자회담 재개를 위해 뛰고 있지만 여전히 전망은 불투명하다. 우다웨이와 보즈워스가 외교적 노력을 하고 캠벨이 '남북관계의 화해'를 조건으로 요구함에도 불구하고 천안함 국면 해소와 6자회담 재개는 이명박 정부의 완고한 입장으로 인해 쉽지 않아 보인다.
이명박 정부는 북한의 선 굴복과 선행 동 없이 먼저 대화의 손을 내밀고 싶은 생각이 전혀 없다. 6자회담 재개를 위해 움직일 생각도 의지도 필요성도 없다. 그저 한미 공조의 대북압박에 올인하면서 북의 완전 굴복을 얻어내거나 그게 아니라면 무한정의 기다림의 전략으로 북의 급변사태만을 학수고대할 뿐이다.
북한 역시 2009년 하반기 마지막 기대를 갖고 이명박 정부와 관계 개선을 시도했지만 금강산 관광 재개마저 거부한 남측의 완고함을 확인하고 불필요한 기대를 접어야 했다. 지금은 북한도 남북관계 개선을 통해 북미협상을 진전시키는 즉 서울을 거쳐 워싱턴을 갈 생각도 의지도 없는 셈이다.
진지한 세 번째 만남 준비해야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 시기 한반도 정세를 변화시킬 수 있는 유일한 돌파구는 북미 협상일 수밖에 없다. 남북관계의 전면 중단과 완전 파탄 상황에서 상대방에 대한 극도의 불신과 혐오만 존재하는 남북관계로는 더 이상 한반도 정세 변화를 기대하기 힘들다. 두 번 실패한 북미 협상을 다시 모색함으로써 교착 국면을 돌파하는 것 외에 방법이 없다.
그래도 북한과 미국은 상대방과의 협상 필요성을 가지고 있다. 두 번 모두 실패했지만 오해와 상황 요인의 탓이 컸다. 미국은 미국대로 북한은 북한대로 지금과 같은 협상 부재의 국면이 무한정 지속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최근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이 대북정책을 평가하기 위해 외부 인사를 포함한 고위 정책 자문회의를 열고 새로운 정책 옵션을 논의한 것은 여전히 성공적인 북미 협상을 고민하고 있음을 짐작케 한다. 캠벨 차관보가 남북관계 개선을 6자회담 재개의 전제로 암시하는 발언을 하는 것도 북한과의 협상 의지가 아직 존재함을 의미한다.
북한 역시 6자회담 국면으로의 전환을 강조하면서 이를 위한 남북관계 개선 제스처를 취하고 있다. 전술적 차원에서 남북관계를 일정하게 관리하는 최근의 양상은 이명박 정부와의 관계 개선 의지가 아니라 미국과의 협상 재개를 위한 분위기 조성용의 성격이 강하다.
다가오는 11월 중간선거에서 북핵 문제가 핵심 쟁점은 되진 않겠지만 북미 협상 의교착과 북한의 핵능력 강화를 수수방관만 하는 것은 결코 오바마 행정부의 외교 성적에 플러스가 되지 못한다. 북한 역시 후계체제 구축을 안착시키고 대내적 통합과 단속을 위해서는 미국과의 극한적 대결보다는 북미 협상 진전을 통한 우호적 대외 환경 조성이 전략적으로 필요하다.
이제 북한과 미국은 세 번째 협상을 진지하게 모색하고 시도해야 한다. 미국은 더 이상 천안함 문제를 협상 재개의 전제로 환원시키는 비현실적 입장을 고수해선 안 된다. 북한이 주장하는 평화체제 논의는 이미 2005년 9.19 공동성명에 명시되어 있고 심지어 부시 행정부 시절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과 그의 자문관인 필립 젤리코 교수의 보고서에도 나와 있다.
비핵화와 평화체제 논의를 병행해야 하는 것은 현실적 방식의 어려움이 있을 뿐 그 자체의 당위성에 대해서는 미국도 동의해야 하고 동의해 왔다. 6자회담 이전이라도 북한과 양자 협상을 하겠다는 지난 해 미국무부의 방침은 여전히 유효하다. 미국과의 협상을 희망하고 있는 북한에 미국이 대화의 맞장구를 쳐야 한다.
첫 번째 상견례가 실패하고 두 번째 재회도 불발했으니 이젠 진지한 세 번째 만남을 준비해야 한다. 미국과 북한 모두 오바마 행정부 들어 연거푸 실패한 두 번의 협상 기회를 거울삼아 이번엔 성공적인 만남이 되기를 바란다. 그것만이 지금 한반도 정세의 유의미한 변화를 추동하는 유일한 계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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