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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대 세습' 북한에 햇볕정책은 타당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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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대 세습' 북한에 햇볕정책은 타당한가

[기고] 붕괴시킬 수 없다면 관리하라

44년 만에 열린 북한의 노동당 대표자회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셋째 아들 김정은이 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과 당 중앙위원으로 선출됐다. 당 중앙위 정치국과 비서국에 이름을 올리지는 못했지만, 노동당이 영도하는 북한에서 당의 군 통제기구인 중앙군사위원회에 김정일에 이어 2인자의 자리에 오름으로써 후계자의 위치를 공식화한 것으로 보인다.

현대사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김일성 일가의 3대 세습은 지난해 초부터 예상돼 오기는 했지만 많은 사람들에게 충격을 주고 있다. 세상 경험이 일천한 스물여섯의 새파란 젊은이가 김일성의 손자이자 김정일의 아들이라는 이유만으로 2300만 북한 주민들의 새로운 권력자로 부상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고 보니, 접촉을 통한 변화를 내세우며 남북관계 발전을 주장해왔던 햇볕정책 지지론자들의 입장이 상당히 곤란해진 게 사실이다. 퇴행적인 3대 세습의 모습을 보이는 북한 정권에게 변화를 기대하는 것이 과연 합당한 것인지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 때문이다.

보수 세력은 시대착오적인 3대 세습을 외면하는 진보는 진짜 진보가 아니라며 진보 측을 압박하고 있다. 그동안의 대북 지원이 핵개발과 3대 세습이라는 바람직하지 않은 결과로 나타났는데 계속해서 남북관계 개선을 주장하는 것이 타당성이 있느냐는 것이다.

햇볕정책을 지지하는 쪽은 '천천히 지켜보면서 유연하게 대응하자'는 신중론이나 '그래도 햇볕정책이 대안'이라는 주장 등을 펴고 있지만, 현대사회의 일반적 상식을 벗어난 북한의 권력세습 앞에서 남북관계 개선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전보다 외로워진 것만은 사실이다. 이를 '햇볕정책의 위기'라고 부른다면 너무 과도한 것일까?

필자는 지금의 시점에서 3대 세습 정권에 대한 포용정책이 과연 의미가 있는 것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회피할 수는 없다고 본다. 인민들이 굶주림의 위기에 내몰리고 있는 최악의 경제 상황에서도 김일성 일가의 권력 유지를 위해 스물여섯의 젊은이에게 권력을 물려주는 왕조적 전체주의 국가에게 근본적인 변화를 기대하는 것이 과연 타당성이 있느냐는 것이다.

햇볕정책을 지지하는 일각에서는 북한이 3대 세습을 안정화시키기 위해서는 지금의 경제적 난관을 극복하는 것이 필요하기 때문에 개혁·개방을 선택할 수밖에 없으리라고 전망한다. 3대 세습이 정권의 보수화로 연결되기 보다는 개혁·개방 정책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은 만큼, 북한의 이해관계를 활용해 햇볕정책을 지속적으로 추진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북한은 작금의 경제위기를 극복하고 3대 세습을 안정적으로 진행하기 위해 일정 정도 변화를 모색할 가능성이 높다. 개성공단이나 나선시 같은 특구를 확대해 해외 투자를 유치하고 내부 경제 체제를 일정 부분 정비해 계획과 시장의 공존 시스템을 확대시킬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김정일-김정은 정권의 개혁·개방이 중국, 베트남과 같은 수준의 과감한 개혁·개방까지 이를 수 있을 지에 대해서는 대단히 회의적이다.

중국과 베트남의 경우를 보면, '사회주의 이데올로기 고수'에서 '개혁 개방'으로의 근본적인 정책 전환은 개혁적 리더십의 등장과 함께 가능했다. 권력을 쥐게 된 새로운 지도자가 전임자의 과오를 비판하고 변화와 개혁을 선택하는 것이 정치적 이득이 된다는 판단을 하게 됐을 때, 과감한 정책의 전환이 가능했던 것이다. 덩샤오핑이 마오쩌둥의 후계자인 화궈펑을 비판하면서 권력을 쟁취한 뒤, 마오의 오류를 비판하면서 개혁 정책을 추진한 것이 좋은 예이다. 베트남의 응우옌 반 린도 전임 공산당 노선을 비판하면서 개혁을 추진하는 것이 지지세력 확산에 도움이 되었기 때문에 개혁 정책을 선택했다.

하지만, 김정은은 김일성과 김정일을 계승하는 데에서 정권의 정통성을 찾을 수밖에 없는 후계자이다. '수령에 대한 충실성'을 후계자의 주요 자질로 삼는 북한의 후계자론도 후계자론이지만, 할아버지와 아버지를 계승했다는 것 이외에는 스물여섯이라는 젊은 나이에 후계자가 된 이유를 설명할 근거가 별로 없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김정은이 김일성과 김정일의 노선을 비판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김일성과 김정일에 대한 비판은 자신의 존재 가치에 대한 부정으로 연결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김정은이 개혁을 추진하는 최선의 길은 김일성과 김정일의 권위를 훼손하지 않는 범위에서 유연성 있는 변화의 길을 모색하는 것일 텐데, 이같은 방식으로는 중국과 베트남에서 있었던 것과 같은 과감한 개혁과 개방은 이뤄지기 힘들 것이다.

결국, 김일성 일가의 기득권 유지를 위해 선택된 3대 세습 정권 하에서 북한 사회의 근본적인 변화는 기대하기 힘들다. 개혁적 리더십이 등장하지 않는 한 북한의 변화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 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5일 후계자인 김정은 당 중앙군사위 부위원장을 대동하고 당 창건 65주년을 기념해 미사일부대로 알려진 인민군 851부대를 방문, 군 부대 훈련을 참관한뒤 기념촬영하고 있다. 사진 왼쪽부터 김정은 당 중앙군사위 부위원장, 김영춘 국방위 부위원장 겸 인민무력부장, 리영호 당 정치국 상무위원 겸 군 총참모장, 김정일 국방위원장. ⓒ연합뉴스

그렇다면, 이제 햇볕정책은 폐기하고 부도덕한 3대 세습 정권에 대한 전면적인 압박으로 돌아서야 하는가?

만약 남한의 대북 압박으로 북한 정권이 몇 년 안에 붕괴될 수 있다면, 전면적인 대북 압박 정책도 한번 고려해볼만 하다. 북한 주민들의 고통이 좀 더 심해지긴 하겠지만, 머지않은 시기에 북한에서 새로운 리더십이 등장할 수만 있다면 다소간의 진통을 감내할 가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한국이 대북 압박을 가한다고 해서 북한 정권이 무너질 가능성은 거의 없다. 북한이 경제적으로 어렵다고 하지만 중국이 북한이 무너지지 않을 정도의 지원을 계속 하고 있고, 폭압적 통제기구들의 주민통제도 아직은 유효하게 작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 북한 내에 의미있는 반체제세력이 활동하고 있다는 정보도 아직 없다. 대단히 직설적으로 말하자면, 우리가 정보기관을 통해 김정일, 김정은의 생명에 위해를 가하는 공작을 실행하거나 북한 내 반체제 무장세력을 의도적으로 조직화하지 않는 한, 남한의 압박에 의한 북한 붕괴 시나리오가 현실화될 가능성은 높지 않다. 지금의 북한 체제에서의 변동은 북한 내부의 권력 균열에서 비롯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3대 세습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고 해서 대북 압박정책이 필요한지는 의문이다. 대북 압박을 통해 3대 세습 정권을 붕괴시킬 수 없다면, 일정 정도의 남북관계를 유지하면서 북한 내에 개혁적 리더십이 등장하기를 기다리는 것이 보다 현실적일 것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볼 때, 식량이나 보건·의료 지원, 소규모 교류 협력 사업 같은 일정 정도의 남북관계는 북한 내 상황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계속할 필요가 있다. 인도적 지원 등을 통한 지속적인 남북 접촉은 북한 주민들의 삶에 도움을 주고 북한 주민들의 마음을 얻는다는 차원에서 북한의 장기적인 개혁·개방에 중요한 기초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회간접자본 투자 등 전면적이고 대규모적인 대북 투자나 지원은 북한에 개혁적 리더십이 등장할 때까지는 자제할 필요가 있다. 왕조적 전체주의 정권에 대한 대규모적인 경제 지원은 3대 세습의 공고화에 기여해 장기적으로 북한의 개혁 개방에 오히려 해가 될 수도 있다.

3대 세습이 현실화되고 있는 지금 필자는 3대 세습 정권에 반대한다는 이유로 전면적인 대북 압박에 나서야 한다는데 반대한다. 일정 정도의 대북 지원을 포함한 남북관계 유지를 의미하는 것이 햇볕정책이라면, 햇볕정책은 여전히 효용성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필자는 남북관계 발전이 '무조건적 선'이라는 관점 아래 전면적인 대북 포용정책을 주장하는 데에도 동의하지 않는다. 햇볕정책의 기본 취지는 여전히 유효하지만 북한의 상황이 바뀌어가고 있는 만큼 그에 걸맞은 조정이 필요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햇볕정책에 대한 무조건적인 옹호나 반대를 떠나 대북정책에서 보다 현실적인 선택지를 찾아야 할 시점이다.

* 북한학 박사인 안정식 기자는 SBS에서 한반도 문제를 취재, 보도하고 있으며 북한포커스(www.e-nkfocus.co.kr)라는 홈페이지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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