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 13일자 <동아일보> 역시 개성 자남산에서의 비밀접촉은 사실이고, 이 자리에서 한국은 천안함 사건에 대한 사과와 비핵화를 요구했고 북한은 '햇볕정책'으로의 복귀를 요구했다고 전했다.
천안함 사건의 여파가 점차 사라지고 있고, 북한과 중국, 중국과 미국의 움직임이 변화를 보이고 있는 시점에서 나온 보도여서 쉽게 지나치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과거 임태희 당시 노동부 장관에 의해 수행된 남북의 비밀 접촉이 사실로 확인된 것에 비추어보면, 장성택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이 참석했다는 것에는 의심이 들지만, 이번의 비밀접촉도 사실일 가능성이 있다 하겠다.
그것은 이후의 상황 변화에 따른 심정적 추론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즉, 북중 정상회담 이후, 미국에서 점차 대화파의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남북관계 개선에 대한 요구가 커가고 있고, 우다웨이(武大偉) 중국 한반도 담당대사의 움직임이 빨라지는가 하면, 스티븐 보즈워스 미 대북특사가 한중일을 방문하여 6자회담과 관련해서 관련국들과 의견 교환이 이루어지는 등 천안함 이후의 출구전략이 서서히 가시화되고 있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또한, 남북간에도 북한에 대한 정부 차원의 수해 지원이 이루어지고, 대승호 송환, 이산가족 상봉 제안과 적십자 회담 및 군사 실무회담의 개최 등 북한의 대남 대화 제의와 우리 정부의 호응이 이루어지고 있다.
이러한 흐름은 분명 천안함 이후의 흐름과는 구분된다 하겠다. 물론, 현재의 흐름이 근본적인 정책의 변화로 이어질 것인지는 지켜보아야 하겠지만, 분명 천안함 사건의 국면의 지나가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하겠다.
▲ 중국을 방문한 스티븐 보즈워스 미국 국무부 대북정책 특별대표가 6자회담 재개는 북한의 태도에 달려 있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 |
최근 들어 나타나고 있는 변화의 조짐은 몇 가지 점에서 쉽게 넘어가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미국이 간접적인 화법을 동원해서 남북관계의 개선을 점차 강하게 요구하고 있고, 중국과 러시아 역시 마찬가지 입장을 보이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 역시 '남북관계에 대한 정상화'를 언급하면서, 대북 인도적 지원에 대한 전향적인 입장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변화의 조짐은 '천안함 여파'가 점차 사그라들면서, '남북관계 개선 - 북미접촉 - 6자회담 재개'의 일정이 시작될 수도 있음을 의미한다. 또한, 올해 발표되는 국방백서에는 북한=주적을 명기하지 않기도 했다고 하니, 남북의 군사적 긴장의 요인의 하나가 일단 제거되는 셈이다. 그러나 여전히 우리 정부가 보여주는 태도는 그 진정성을 의심할 만한 여러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우선, 남북간의 비밀접촉이 사실이든 아니든 그것이 언론을 통해 그 내용까지 유출되고 있다. 지난 2009년 당시 임태희 노동부 장관에 의해 진행되었던 남북간의 정상회담을 위한 비밀접촉이 언론을 통해 공개되면서, 결국은 정부 내 강온 갈등이 불거지고 그로 인해 아무런 성과도 없이 종결되고 말았던 것에 비추어보면 지금의 상황도 그와 유사하다고 하겠다. 이는 비밀접촉의 유무와 상관없이 우리 정부 내 혼란과 대북정책을 둘러싼 정부내 갈등이 또 다시 남북관계 개선을 파탄낼 수도 있음을 의미한다.
둘째, 정부의 대북 인도적 지원에 대한 전향적인 입장에도 불구하고 고위 당국자들의 발언은 이와는 다르게 나타나고 있다. 하나씩 짚어보자면, 김태효 청와대 전략비서관은 '대규모 대북 인도적 지원은 천안함 사과가 전제되어야 한'고 발언했다. 이어 김무성 한나라당 원내대표는 '북한의 군량미가 100만톤'이라고 발언하였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아마도 북한에 대한 인도적 지원에 대한 혼란과 정부의 입장이 정리되지 않았음을 말해주는 것이 아닐까? 아니면 지원 재개를 주장하는 측과 이에 반대하는 측과의 갈등이 표면화되고 있는 것이 아닐까? 김태효 비서관의 발언이 주로는 '천안함 사건'에 따른 '5.24 조치'의 유효성을 말하는 것이라면, 김무성 대표의 발언은 지원된 쌀의 '군량미로의 전환'이라는 부정적 인식을 표현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여기에 현인택 통일부장관까지도 군량미 비축을 근거로 대규모 지원은 어렵다고 밝히면서, 과거 식량 지원의 분배 투명성까지 문제삼고 있다. 왜 하필 이 시점에서 이러한 발언들이 강조되어 언론에 의해 조명되는 것일까? 또 다시 정부 내 권력 갈등이 표면화되고 있는 것을 아닐까?
셋째, 대통령은 러시아 방문에서 '제2의 개성공단'을 희망한다고 발언했다. 그런데, 이것이 진정성을 가지기 위해서는 현재 진행되고 있는 개성공단의 활성화를 위한 대책이 먼저 나와야 하지 않을까? 지금 하고 있는 것도 제대로 못하면서, 미래에 추진해야 할 일을 대책없이 밝히는 것은 분명 앞뒤가 맞지 않는 것이라 하겠다. 현재 아사 상태에 빠져있는 개성공단에 대한 대책을 먼저 밝히고, 전반적인 남북 경협의 청사진을 제시하는 것이 우선이라 하겠다.
그러나 문제는 이러한 정부 고위 인사들의 발언이 혼란을 일으키고 있다는 것 혹은 현재의 분위기에 제동을 걸려는 것이라는 평가가 아니라 도대체 이러한 현상이 왜 벌어지고 있는가에 있다. 남북관계는 여러 전문적인 영역이 종합되는 것이긴 하지만, 가장 핵심적으로는 철학적 비전과 확고한 원칙이 전제되어야 한다. 결론적으로 정부의 대북 정책을 결정짓고, 이를 실행에 옮기는 데서 대통령의 남북관계에 대한 철학과 비전이 확고해야 한다는 것이다.
최근에 불거지는 이러한 불협화음은 결국 대통령의 남북관계에 대한 태도가 확고하지 못한 것에 근본 이유가 있을 것이다. 아니 원래의 확고한 태도 - 지금까지의 대북정책에서 보여주었듯이 - 가 상황변화에 따라 유연하게 적용되어야 할 시기에 그러한 유연성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는 데서 오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만약 이것이 아니라면 대통령의 리더십이 제대로 발휘되지 않고 있다고 밖에는 달리 평가하기 어렵다.
앞으로 대북 인도적 지원을 할 것인가? 할 것이라면 어떻게, 어느 정도의 규모로 할 것인가가에 대한 정부 내의 입장이 정리되고, 이것이 대통령의 리더십에 의해 확고한 정책으로 구체화되지 못한다면, 이러한 혼란은 계속될 것이다.
대북 인도적 지원이야 비밀접촉을 통해 진행되는 것이 아닌 만큼 혼란은 그저 하나의 논쟁으로 그칠 수 있지만, 만약 남북이 현재의 경색국면을 전환하기 위해 비밀접촉을 진행하고 그에 따라 하나하나의 행동이 요구될 때, 지금과 같은 고위 소식통이란 이름의 언론 유출이 있게 된다면, 그 결과는 빤하다고 볼 수 있다.
또한, 고위 당국자들의 입에서 무엇이 진심인지 의심스러운 상반된 발언이 나온다면 이 역시 대북 정책의 진정성을 갖지 못할 것이다. 비밀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정부의 확고한 의지와 내부의 일관된 정책 방향이 중요한 것이다. 그런 점에서 무엇보다 정부 내에서의 입장 정리가 중요하다 하겠다.
그리고 그것은 멀리 정상회담까지 내다보는 남북관계의 개선을 추진할 것인가? 그렇지 않으면 지금의 대북 정책을 지속할 것인가? 그리고 정해진 입장에 따라 정부가 일사분란한 행동을 보여줄 수 있을 것인가? 문제는 바로 여기에 있다. 진정 변화를 바란다면, '선택의 기로'에서 제대로 된 정책과 리더십을 보여주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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